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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4. 2021

나는 루이비통이다.

나를 알아가는 에세이 글감 주제: 나는 000이다.

“환자분 성함이?”

“김 00이요.”

“아. 루이비통이시네요.”

“네?! 네.”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손이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보통은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면 미안한 마음에 급히 용건만 보고 지나친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궁금하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내 성정이 오늘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든다.  


“왜 루이비통이에요?”

“아 흔하다고요. 이름이. 루이비통도 흔하잖아요. 3초 백이라고 불리고.”

“아~”

별 시답지 않은 이유에 ‘피식’ 웃었다. 어이없기도 했다.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지도 않는데 루이비통이라니... 한편으로는 분주하고 바빠 유머조차 잃었을 그녀의 삶에 그렇게라도 유머를 불어넣은 듯해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흔한 이름이 참 싫기도 했는데 나름 명품백이라니 기분이 좋았다. 사람 마음이란 참..


그렇다. 내 이름은 참 흔하다. 그녀가 굳이 그렇게 콕 집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이름이 흔하다는 걸 안다. 길을 걷다가도 “00아.” 하고 누군가 부르면 길가던 몇 사람이 뒤를 돌아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1학년 입학식 날에는 같은 이름의 아이들이 많았기에 한참을 돌고 돌아 반을 찾기도 했다. 또한 흔한 이름 때문에 나만의 고유함을 알리기 위해 굉장히 애써 나를 소개해야 했다. 심지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00 이가 많았다. 아니, 학생들이 많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아니고 대학원을 와서 조차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다니. 교수님은 여러 명의 “00”이가 헷갈리다며 각자 호(號)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흔한 이름에 나름의 고초(?)도 많이 겪었다. 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편의 하나밖에 없는 전 여자 친구도 이름도 00이라는 사실.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어떤 이유였든 난 같은 이름의 존재가 많은 게 한 때 너무 싫었고 피곤했다.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흔한 이름을 지으셨는지 원망이 되기도 했다.     


살다 보니 흔한 이름 덕분에 덕을 본 적도 있다. 몇 년 전 아주 유명했던 베스트셀러 책 제목. 나중에는 영화까지 나왔던 책 제목도 내 이름과 같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00 이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개봉하는 첫날, 영화관에 갔다. 제일 좋아하던 배우, 공유가 “아~”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니 얼마나 좋던지. 영화가 나온 이후에는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나를 소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제 이름은 몇 년 전 아주 유명했던 영화 제목입니다. 뭘까요?”

다들 온갖 추측을 난무하며 대답하다 피식 웃는다. 그러면 첫 만남인데도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단, 덧붙여야 할 게 있다. 앞에 82년은 절대 아니라고.      


지하철을 탔다. 그녀의 말처럼 수많은 루이비통이 자리에 앉아있다. 이제는 3초 백이 아니라 흔한 백.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명품 가방이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모양만 같다면 가짜도 괜찮을 텐데.... 웬만한 직장인들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싼 가방이지만 다들 진짜를 갖고 싶어 한다. 짝퉁이 아닌 진퉁은 장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빚어가며 힘들게 만든 가방이니까 그 빛도 생김새도 엄연히 다르리라. 그래서 명품 루이비통은 같은 모델이어도 땀의 크기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00”이어도 이름만 같은 “00”일뿐 무늬, 모양, 살아온 삶, 인생.. 모든 것이 다 다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루이비통은 제품마다 사람의 주민번호와 같은 TC코드가 부여되는 것처럼 같은 00이어도 주민번호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릴 때처럼 애써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이가 먹으면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가 없어져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굳이 나를 애써 알리지 않아도 진짜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같은 이름 가진 00이라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나"를 떠올렸을 땐, 내가 고유하게 지닌 정서적 색채와 기억들도 함께 떠올리겠지.



 흔한 내 이름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왔다. 이 이름과 함께 산 나의 세월은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으로 누군가의 삶에 오래도록 함께 한 세월과 비슷할 듯싶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네임을 인정받은 고급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나 또한 명품처럼 나를 아는 사람들과 오랜 기간 동안 지고지순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또한 명품은 대체로 오래도록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중후한 멋이 있어 중년층 이상이 좋아하기도 한단다. 나 또한 이제는 중년을 지나는 나이답게 중후한 멋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이름 루이비통 답게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하고 고급스러워지면 좋겠다.       

                                  

(그나저나 어제 이 글 올리고 갑자기 조회수는 엄청난데..

 ♡는 ... ㅠ.ㅠ  루이비통이 아니라 루이비텅텅텅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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