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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코더곰쌤 Nov 10. 2024

리코더를 배우기까지 3스탭

정든 학교를 떠나 이동하는 시기가 왔다. 전보 서류를 작성하느라 분주한 요즘 우리 교과실 선생님 중 한 분이 헤어지기 서운하다면서 말을 건다.


"다음 학교에서도 음악 전담 하게 되시면 좋겠어요. 선생님 언제나 리코더 연습하시는 것 보니까 하나에 몰입하는 모습이 좋아보이고 참 부럽더라구요. 리코더는 언제부터 하신거에요?"


이 학교 와서 한참 코로나로 원격수업 하던 시절 시작했으니 햇수로 4년 정도 되었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는 얼굴이다.


"대박, 진짜요? 난 또 리코더 10년 넘게 배우신 줄 알았죠! "


아이고, 말이라도 고맙다. 십년이면 이 실력이면 안 되죠. 하긴 전공생 꼬마들의 실력은 초등학교 3-4학년도 이미 넘사벽이다. 비교불가로 잘한다. 실력은 따라갈 수 없지만 좋아하는 걸로 따지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애호가로 살게 된 요즘이다. 지난 4년간 리코더는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이 작은 악기가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코로나 시절 교원학습공동체 예산을 써야 하는데 모일 수가 없으니 물건이나 사자 하여 우리 부장님께서 '야마하 알토 리코더'를 전교에 돌리셨다. 그래서 악기가 생겼다. 1단계 클리어. 원격수업을 위해 각 교실에 실물화상기가 보급되었다. 2단계 클리어.


처음 보는 악기의 운지법도 몰랐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며 더듬더듬 도레미파를 익혔다. 와, 알토 리코더의 소리는 소프라노와 확실히 달랐다. 소프라노가 깽깽이 바이올린 소리라면 알토는 비올라나 첼로의 소리가 났다. 이게 참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4년 전 유튜브에서 접한 기묘한 영상 하나가 나를 바꿨다. 클래식 레퍼토리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공군군악대의 연주였다, '리코더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문화 충격이 왔다. 리코더의 종류는 내가 아는 소프라노 하나가 아니었다. 알토, 테너,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네 소프라노까지 무궁무진했다. 다양한 리코더끼리 함께 합주도 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악기였다. 리코더의 매력을 알고 나니 나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레슨 선생님을 찾아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했다. 3단계 클리어.


그 때 알았다. 이 리코더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뼈대있는 악기라는 것을. 바하와 헨델의 시절이 리코더에게는 전성기의 시절이었다.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로 리코더를 자신의 작품에서 메인 악기로 사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리코더도 소나타가 있다는 걸 알고나니 리코더가 다르게 보였다. 멋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이 악기가 고맙고 소중했다. 우주의 온 기운이 내가 리코더를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준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끝난 지금은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대면 수업으로 리코더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리코더라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내가 이 나이에 바이올린을 처음 배워서 바흐나 헨델의 곡을 연주하려면 낑낑대는 초보의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리코더는 한 두달만에도 가능하다. 리코더를 불면 5분 안에 엔돌핀이 나온다. 이렇게 확실한 행복의 비법이 없다.


연습을 한다는 것은 이완의 경험이고 집중과 몰입을 체험하는 일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지금보다는 나아진다는 교훈을 리코더에서 배운다. 이번 학교에서 생활한 지난 5년 가운데 내게 있어 최대의 수혜주 베스트는 바로 '리코더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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