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코더곰쌤 Nov 29. 2024

런던의 마음 치유 상담소

상처받은 사람들은 위한 위로

"어서오세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안식처, 이곳은 런던의 작은 심리상담소입니다."


<런던의 마음치유 상담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먼저 표지를 보았습니다. 붉은 벽돌로 예쁘게 지어진 건물, 연두색 소파와 회색 강아지가 함께 있는 상담실 건물을 보니  Cozy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실제로 이 책을 지은 저자 분은 영국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시는 분이에요. 책의 원제는 Your pocket Therapist라고 하네요. 오호, '주머니 심리상담가'라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가상의 환자를 허구로 만들어서 심리학적 개념을 설명하는데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니 이건 내 이야기네' 싶은 부분들이 엄청 많이 나와요.  


-자기비판: 나는 왜 나에게 유독 가혹할까?


p.153 흥미로운 사실은 이 그룹 치료에 속한 사람 중에 보살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간호사나 치료사, 교사도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도 많았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도저히 그와 같은 연민을 쏟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배려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내면의 비판자가 엄청 가동하는 사람의 에피소드, 이건 제 이야기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도 교사가 된 동기를 본인의 해결 안된 어린시절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직을 그냥 돈 버는 직업으로 택한 것이 아니고 직업을 통해 인생2회차를 살고 싶기에 무진장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특징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아주고,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겁니다.


p.170  쉰 아홉살의 피오나는 어린 피오나를 대신해 화를 냈다. 그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를 향해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치며 어린 피오나를 구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조금씩 자신을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재양육'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소통하며 그 시점에 필요했지만 충족되지 못했던 걸 주는 것이다. (중략)부모 역시 한 때는 어린아이였음을 기억하라. 그들을 향해 분노나 죄책감을 가지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피오나가 그랬듯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자기 잘못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면 자신에게 퍼붓던 아픈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집단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같은 학년 선생님 4명이 짝을 지어 성격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털어 놓기 시작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 때 우리를 담당하시던 상담사 선생님이 너무나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원래 내담자 앞에서 이런 말 안 하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우울증 환자였어요.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자살시도까지 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수 많은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좋아지지 않았는데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계기가 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셨대요. 그런데 언제나 바쁘고 일로 만족을 느끼려고 해도 속에서 느껴지는 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으셨다나봐요.  급기야 우울증이 심해졌고 병원이나 심리상담도 받아도 그닥 좋아지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생각한 적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이 분의 삶이 변화된 계기가 찾아와요.  '내가 정말 힘든 어린시절을 살아냈구나.'라는 자각이 그 첫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상담 선생님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이었고, 어머니는 폐쇄병동에서 입원해 가끔만 집에 오는 환자였다고 해요. 당연히 선생님 자매는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상태로 자라야했고, 다른 모든 집도 이런 줄 알았다고 합니다. 20대가 되어서야 우리 집의 모습이 다른 집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고, 그 동안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에 몰두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려고 애쓴 본인의 모습이 참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졌대요. 신기하게도 우울증이 나아졌고, 심리학을 공부하여 대학원도 갔고 이렇게 심리상담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우리 모두 펑펑 울고 박수를 쳤습니다.


내 안에도 분명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나도 충분히 힘들만 했네!'라고 스스로를 부둥부둥해줬어요. 그리고 저의 멘탈도 훨씬 나아졌습니다. 이건 보편성을 지닌 이야기가 맞더라구요. 이 책에 나오는 피오나 에피소드에서 왜 저는 그 상담사 선생님이 떠올랐을까요?


우리는 가면을 벗고 기꺼이 취약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치유가 바로 거기서 시작되니까요.


p.159 "드디어 해냈어요." 피오나는 이렇게 말하며 휴지에 코를 풀더니 아무렇게나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나에게 아주 잘해줬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내 마음에 남은 단 하나의 단어는 '재양육'이라는 키워드였어요.  상담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갑옷 속에 꽁꽁 숨겨놓은 어린 아이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p.168  내 안의 비판자를 잠재우는 법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과 찬사를 퍼부어도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지 못하면 체망 사이로 빠져나가듯 사라지고 만다. 즉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외부의 인정이 아무리 많아도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 문제가 자기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성격은 출생 후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그 때 프로그래밍 된 스스로의 정신적 루틴이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지요.  정말 중요한 건 그 무의식적인 작동 패턴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자각이 참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 문장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Break free from old patterns and transform your life'


혼자서는 자기 자신의 감정적인 문제를 잘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수 십개의 갑옷을 입고 핵심 문제를 꽁꽁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니까요. 상담실을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진짜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똑같은 삶을 체바퀴 돌듯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본인주변의 가족들은 정작 고통을 당하고 있고, 사실 본인 스스로가 제일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알잖아요?


오래된 불안, 자기 비판과 작별하고 무의식 속에 숨겨진 진짜 아픔을 깨닫고 치유하려면 일단 '취약한 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그 아픔을 공감해주고 내가 나를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 과정이 선행되어야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이 책을 우리 나라로 번역해서 계약하겠다고 마음먹은 편집자님이 마음이 움직인 계기가 이 책이 '소설처럼 술술 잘 읽혀서'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이 뭔지 정말 알겠더라구요. 내가 나의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감정을 찾아 느껴 보는 것, 그리고 현재 나의 삶에 있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가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치료의 첫 출발이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걸 이 책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오는 날의 학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