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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선생과 우주> 매운맛 형광색 동화

이 책 안 읽은 사람 없게 해주세요.

by 리코더곰쌤

숨도 안 쉬고 읽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구성이었고 허를 찌르는 치밀함이 거의 추리소설급이었다.

주제도 이야기 전개 방식도 참신하고 독특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문학 부분 원톱이었다. 그런데 동화다. 심지어 작가님의 첫 동화란다. 오마이갓!

동화라고 다 핑크색, 하늘색, 파스텔 톤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렇게 총천연색 형광톤 매운맛이다. 야광색이다.

'아니, 작가님이 첫 번째로 쓴 작품이라고?' 여기서 벌써 첫 번째 쇼크가 왔다. 그런데 문학 전공자도 방송작가도 아닌 일반인이라는 거다. 허얼.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이 모두 스승이고 교과서였다는 작가의 말이 두 번째 충격이었다.

며칠 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함께 했던 시간 자체가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도 눈인사만 했던 사이라 얼굴도 목소리도 낯설었다. 핸드폰 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던 우리가 만나게 된 건 공통의 관심사 동화 때문이다. 쌤의 지인이 내 친구라 완전 소개팅하듯 만난 거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런데 일단 말을 하다 보니 6시간이 지나 있었다.

우리는 한나절 동안 서로가 재미있게 읽은 책, 살아가는 이야기, 동화 배우며 힘들었던 점을 나누었다. 그러다 이 책이 생각났다. 내가 제일 처음 우리 쌤께 추천드렸던 작품이 바로 이거였다. 기록을 안 남겼더니 제목도 가물가물.

"'고타선생과 우주'가 맞아요. 쌤이 만약 글을 쓴다면 이 책 같은 동화를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얼른 폰을 들어 내 블로그에 검색어를 넣어 보았는데 역시나 안 나온다. 일기장을 뒤지니 나오네. 작년 여름에 읽었구나.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가물거리니 원. 그래서 블로그 답글도 찾아봤더니 나온다. 고타가 고리타분의 줄임말이었구나.

천재 작가의 탄생이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보는 심정이 이런 것인가. 팬텀씽어의 화학전공자 강형호 님 를 보고 놀랐던 심사위원의 표정이 기억난다. 수많은 노력형 문학 전공자, 예술 전공자들이 이런 천재를 보며 좌절하지 않을까.


아, 난 그동안 요령만 피우고 살았네. 돌이켜보니 나는 동화 러버가 아니었다. 어찌어찌 국어 교과서에 있는 조각 글만 읽고, 학급문고의 온책읽기 도서만 몇 권 읽고 동화 작법을 배우면 나도 동화쯤은 쓸 줄 알았다. 깨몽! 아이고, 평소에 동네 산도 안 다니면서 에베레스트 등반하는 꼴이다. 아니지, 패키지여행은 할 수 있지. 그래서 이 책을 운명처럼 만났으니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깃발 여행에서도 최애 장소는 생기고 추억도 남는 법. 동화 쓰기를 배우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동화 안의 나만의 취향을 쌓아 나간 거다. 결국은 애정의 세기와 우직함이 필요하다. 사랑하니까 지속할 수 있는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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