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업무, ‘전업아빠’의 시작
[불안한 나의 심장, 그리고 불타는 나의 심장]
육아휴직의 첫날,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건지 모르겠다. 일종의 휴가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동시에 불안감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지금은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육아휴직=쉰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될까? 지금 한창 일할 때인데…”라는 죄책감 같은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24년 2월,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첫째 아들은 25개월에 접어들었고, 둘째의 출산은 두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어쩌면 잠깐이나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아침에 느껴지는 기분은 참 묘했다.
아내는 아직 출산 전 휴가를 사용하기 전이라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아들의 어린이집 등원을 책임졌다. 육아휴직 전날, 호기롭게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놨지만,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동네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들을 하원시키고 나서는 언어가 아직 터지지 않은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서 자주 쓰던 말, ‘즉응태세 유지’가 몸에 배어서인지 긴장을 풀기가 쉽지 않았다. 약 10년 넘게 교대근무를 이어오던 삶에서 갑자기 ‘휴직’이라는 새로운 상태로 전환된 것이 낯설기도 했다. 휴가 중에도 업무 전화를 받으면 긴장했던 내가 이런 상황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했던 심장은 한 달쯤 지나면서 점점 안정되었고, 나에게 새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과의 새로운 일상
교대근무를 하며 아들과 나름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지만,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아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아이의 변화를 눈앞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아들은 “우와~”나 “무우(물)” 정도의 단어만 겨우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언어 검사를 받았더니 표현 언어는 12개월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수용 언어는 26~30개월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36개월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치료 개입이 빠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병원 등록까지 고려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들과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단어 몇 개를 내뱉더니, 갑자기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말을 한 번에 문장으로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믿지 않았던 나로서는 충격과 감동이었다. “언어는 단계적으로 발달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깨고, 아들의 언어 폭발기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아들의 변화는 나의 마음도 변화시켰다.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나는 어느새 아들과 함께할 것들을 계획하며 설레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하원 후에는 아들과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놀이방, 자연 체험, 아니면 동네 산책이라도. 아빠의 이런 노력이 통한 걸까? 하루하루 변화하는 아들의 모습은 내게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