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부리 가면 뒤의 눈물

한의학, 그거 미신 아닌가요?

by 명썜

어느 시대에나, 사랑하는 이의 숨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식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이 내리길 빌었던 어머니. 아내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산 넘고 들을 헤매어 풀뿌리를 캐왔던 아버지. 그들에게 의학이란 실험실의 비커도, 학회의 논문도 아니었습니다. 내 가족이 내일 아침 눈을 뜨게 해 달라는,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인류의 의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자가, 다시는 같은 무력함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며 기록을 남긴 것. 그 기록이 한 줄, 두 줄 쌓여 한 권이 되고, 한 세대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건네지며, 수천 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것이 바로 의학입니다.


한의학도 그 거대한 인류사의 한 갈래입니다.




중세 유럽, 흑사병이 대륙을 집어삼키던 시대를 떠올려 봅니다.

새의 부리를 닮은 기괴한 가면을 쓰고, 온몸을 검은 로브로 감싼 채 죽음의 거리를 누비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그들을 '흑사병 의사(Plague Doctor)'라고 기록합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무지했습니다. 부리 끝에 채워 넣은 허브 향은 세균을 막지 못했고, 두꺼운 로브조차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완전히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기괴한 차림을 보며 미개한 의학의 상징이라 조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가면 뒤에서 다른 것을 봅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도망칠 때, 그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환자의 곁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조여 오는 공포보다, 눈앞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방법이 틀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시간을 건너 지금 이 시대로 와서, 자신들의 방식이 해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면 절망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울기보다,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흑사병으로 죽는 아이들이 없는가?"


"그렇다"는 대답을 듣는 순간,


그들은 무시무시한 부리 가면 뒤에서 환하게 미소 지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의학적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존속,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수천 년 전, 이름 모를 선조들이 산과 들을 헤매며 풀뿌리를 씹고, 돌침을 다듬어 아픈 이의 살갗에 대었던 그 행위. 현대 과학의 잣대로 보면 거칠고 투박해 보일지 모릅니다. 때로는 틀린 길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비과학이 아닙니다.


내 어머니의 기침을 멈추게 해 줄 풀이 어디 있을까. 내 아들의 열을 내려줄 돌이 어디 있을까. 그 절실함이 한 세대, 두 세대, 수십 세대에 걸쳐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기록입니다. 미신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생명이 그 안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인류가 생명을 붙잡기 위해 치러낸 투쟁의 역사이며, 가족을 향한 사랑이 구슬처럼 엮여 만들어진 하나의 인간 찬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간 그 명맥이 이어진 것입니다.




과학이 위대한 이유가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는 자기 수정의 용기라면, 한의학은 사뭇 달랐습니다. 수천 년의 관찰 데이터가 쌓여 있으면서도, 그것을 현대의 언어로 검증하고 다듬는 작업은 더디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틀린 것과, 데이터를 기술하는 언어가 낡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수천 년간 임상에서 반복 관찰된 현상들 — 특정 혈자리를 자극하면 특정 증상이 완화된다는 기록, 특정 체질에 특정 음식이 맞지 않는다는 기록. 이것들은 언어가 음양오행이라서 기피되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번역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마치 한 권의 책에 원문과 번역을 나란히 싣듯이.


한의학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번역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왜 현대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는가.


한의학이 다루는 현상은 넓고 깊습니다. 하나의 학문으로는 담을 수 없습니다.


손끝으로 읽어내는 맥의 비밀은 파동역학이 가장 잘 풀어줍니다.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하는 화병의 메커니즘은 신경내분비학이 설명합니다.

같은 감기에 정반대의 약을 주는 이유는 면역학의 렌즈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매핵기의 답답함은 조직역학으로, 한약을 달이면 색이 변하는 현상은 나노화학으로 이어집니다.


이 시리즈는 그런 시도입니다. 한의학의 각 현상에 가장 잘 맞는 과학의 렌즈를 골라 대는 것. 물리학이 될 수도, 뇌과학이 될 수도, 면역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학문이냐가 아니라, 그 설명이 얼마나 정직하고 유사한 구조성이 보이느냐 입니다.


시대마다 천재는 존재했습니다. 한의학이 수천 년간 살아남은 것은 그 천재들이 인체의 현상을 정밀하게 포착해 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대에는 주어진 언어가 음양오행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아직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고, 과학의 언어에 매료된 사람입니다.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기에, 양쪽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던져볼 수 있는 학문적 과감함이 있다고 믿습니다. 한의학을 의심하는 2030 세대가 원하는 것은, 교과서의 정답이 아니라, 나와 눈높이가 비슷한 누군가가 직접 발로 뛰며 탐험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명가가 아니라 탐험가의 자세를 취합니다. 한의학과 현대 과학이라는 두 세계 사이를, 서툴지만 안내해 보려 합니다.


이 글들은 한의사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한의학을 의심하는 2030 과학 세대를 위한 글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쓸 것입니다.


학생이기에 던져볼 수 있는 학문적 과감함을, 한의계의 선배님들과 과학계의 선생님들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혹여 미래의 어떤 천재가 이 글을 집어 들고 비웃더라도, 그 비웃음이 한의학이라는 세계로 뛰어드는 첫걸음이 된다면, 충분합니다.


이 글이 미래의 천재들에게 닿아, 그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불꽃이 되기를 바라며

호기심 많은 탐험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