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수요일
네 번째 파리. 4년 만에 파리에 와서 사흘간 머무른 뒤, 유럽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나는 이번 여행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일단은 ‘추억 여행’으로 이름을 붙여놨지만 사실 내 안에는 그리 간단한 여행이 될 리가 없다는 기이한 예감이 가득했다. 파리에서 머무를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내게 생겨날 수 있는 변수들을 아무리 상상해 봐도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도 또다시 어마어마한 일들이 몰아닥칠 것만 같았다. 그건 바로 이곳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파리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총 세 번 파리에 길거나 짧게 오면서 그 전과 후가 같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어떤 방식으로든 파리는 내 인생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게 하며, 그 과정 속에서 때론 몸부림칠 정도의 고통과 불안을 안겨줬지만 그만큼 차고 넘치는 자유와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파리. 애증의 파리가 이번에는 내게 어떤 감정 덩어리를 던져주게 될까?
전날 밤 마치 유학생 시절처럼 피자헛에서 야식을 시켜 먹고 잠이 든 뒤 아침 일곱 시경 눈을 떴다. 핸드폰을 열어 메일함에 들어가 보니 스카이다이빙 업체에서 보내준 영상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다시 봐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영상을 보고 보고 또 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열 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어내면서 오늘 하루 무얼 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스위스에서는 '스카이 다이빙을 하겠다', '눈 덮인 산을 보겠다', '치즈 퐁듀를 먹겠다' 정도의 엉성한 계획은 있었지만 파리에서는 이조차도 정해두지 않고 무작정 훌쩍 날아온 상태였다. 그저 이번에는 팍팍한 유학생이 아닌 즐거운 여행자 모드로 파리의 곳곳을 누비며, 회색빛이 되어버린 파리에서의 기억에 다시 본연의 색채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일단 채비부터 하고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메트로 역을 향해 걸어가며 파리에 오지 못한 4년 동안 가장 그리웠던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는데 뜬금없이 파리에서 매일 아침 먹던 집 앞 무화과 빵이 생각났다. 7구 Duroc역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Le pattiserie cyril lignac의 Le petit pain au figue. 3~4년 전 어학원에 가던 길에 배가 출출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파티서리에서 1유로짜리 빵을 집었는데 그 작은 빵 안에 옹골차게 들어선 무화과 절임이 너무 맛있어서 일주일에 너 다섯 번은 사 먹었던 빵. 특히 금전적으로 빠듯한 생활을 할 때는 빵 하나로 아점을 해결하더라도 뜯어먹은 그 한 조각이 너무나 맛있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빵. 그 빵으로 파리에서의 첫날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와 티켓 발권을 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유학시절 사용하던 내 사진이 박혀있는 나비고 교통카드를 꺼내 충전을 시도해 봤다. 삐빅 실패.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다시 그 카드를 들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문의를 해보니 2019년이 마지막 사용이라 정지가 되어 있지만 Renouveller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답변을 들었다. 1분 정도 기다린 뒤 역무원으로부터 돌려받은 나비고 카드를 개찰구 보라색 버튼에 갖다 대자 노란색 통과 불빛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와 열차를 기다리는데 파란 바탕에 하얀색으로 쓰인 역 이름도 남아있는 대기 시간이 띄워진 주황색 전광판도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의 목소리도 모든 것이 너무나도 그대로였다. 그 순간 초록색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힘차게 들어왔다. 수동으로 손잡이를 올리자 문이 드륵 하고 열렸다. 손으로 의자를 내려 자리에 착석하니 문이 쾅 닫혔다. 이내 들리는 ‘삐-‘하는 출발 신호음. 그 순간 신호음의 데시벨을 타고 내 기억이 4년 전으로 옮겨져 갔다.
검은색 포터 백팩을 메고 발랄한 비니를 쓴 채 집에서 나와 아침 일찍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어학원에 늦지 않기 위해 마구 뛰어서는 열차를 잡아탔던 2019년의 나. 학원이 끝나고는 모노프리나 까르푸 익스프레스에 들러 샌드위치나 냉동피자에 3~4유로짜리 보르도 와인을 한 병 사 와서는 스탠드를 켜놓고 한밤중까지 공부하다 잠들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지하철의 신호음을 타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된 생활 속에서도 눈이 내내 반짝이던 생기가 가득 넘치는 그때의 내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내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웠으면서도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열차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덜컹이는 지하철 밖으로 파리의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녹색 라인의 6호선에서 노란색 라인 10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La Motte Picquet Grenelle역에서 내려 환승 구간을 지나는데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아보니 4년 전에도 바로 이 역에서 The Girl from ipanema라는 노래를 불러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던 커다란 덩치의 아마추어가수가 그 자리에서 다른 재즈곡을 부르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나 하나일 뿐 모든 것이 이토록 그대로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맙게 느껴졌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세 정거장쯤 더 지나 Duroc역에 내렸다. 역 밖으로 나오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역시나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 구글맵을 켜지 않고 기억의 지도를 따라갔다.
2분 정도 걸어가니 익숙한 그 빵집이 보였다. 문을 끼익 열고 들어가 가게 안을 쭉 둘러보았는데 4년 전 먹던 무화과 빵은 보이지 않았다. 맙소사..! 점원에게 물어봤더니 그 빵은 인기가 많아 오전 중에 이미 다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종류의 치즈와 참깨가 콕콕 박힌 커다란 빵을 하나 집어 가게에서 나왔다.
다음 행선지를 고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찌 됐든 에펠탑은 한번 봐야만 하는 노릇이었다. 에펠탑을 볼 수 있는 곳들이 몇 군데 스쳐 지나갔는데 방금 산 빵을 뜯어먹으며 조용히 에펠탑을 만끽하기엔 마르스공원만 한 곳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것은 내 옷차림일 뿐이었다. 스위스에서 거의 두툼한 패딩만 입고 다녔다 보니 파리에 와서는 그래도 왠지 얇은 차림으로 다니고 싶었는데 일기예보도 제대로 보지 않고 핸드메이드 코트에 살색 스타킹만 신고 나왔더니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온몸이 오들오들거렸다. 이곳 역시 스위스보다 덜 추울 뿐 영하 3~5도 내외의 한겨울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차림으로 빵을 먹겠다고 공원에 나오다니..! 그래도 이왕 나온 거 나름의 낭만을 느껴보고자 꽁꽁 언 손으로 세사미 빵을 뜯어 입안에 욱여넣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둘러매고 다가온 그는 내게 여행 중인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2년 전부터 ‘파리의 4계절’이라는 주제로 사진 책을 만드는 중인데 혹시 내 사진을 몇 장 찍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내게 그저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다시 헤드폰을 쓰고 빵을 뜯어먹으며 공원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었다. 책이 완성되면 꼭 보내주겠다는 포토그래퍼에게 이메일을 알려주고 자리를 떠났다.
에펠탑 다음으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센 강이었지만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빵도 미처 다 소화시키지 못한 내게 다음 행선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따뜻한 실내에서 몸을 녹여야 했다. 그래도 바로 카페에 가기보다는 오랜만에 전시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오르세로 향했다. 파리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미술관들이 많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림이 가득한 곳은 역시나 오르세만 한 곳이 없을 것 같았다.
티켓 발권을 하고 들어가자마자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 5층으로 향했다. 모든 그림에 공평한 마음을 나눠주려 해도 시선이 가고 멈춰 서게 되는 그림은 역시나 비슷했다. 시슬레의 눈 덮인 풍경화와 헨리 아드몬드 크로스가 점묘법으로 만들어낸 파스텔톤 바다 그림 앞에서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이번에는 폴 시냑의 그림에도 시선이 오래갔다. 마네의 발칙한 그림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왔고, 사람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림의 탁월함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모네의 그림들 앞에서는 매번 당황스러울 정도로 좋은 감정을 얻었다. 까미유 피사로와 시슬레의 그림은 백날 보여줘도 절대 구분 못할 거 같은데 왜 나는 매번 시슬레에만 마음이 끌리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멘델스존의 음악이 끌리지 않는 것처럼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지 않는 르누아르의 그림은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의 결과는 여전히 코드가 맞지 않았다. 사람이든 그림이든 너무도 밝고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이는 것 앞에서 나는 깊은 끌림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똑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더라도 고뇌 속에서 피어난 꽃이 온실 속의 화초보다 내게는 훨씬 큰 감동을 주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르누아르의 작품 앞에서 한참 머무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르누아르의 그림 앞을 스르르 걸어가는데 둘셋씩 손을 잡고 등장한 한 무리의 프랑스 유치원 생들이 르누아르의 그림 앞에 쪼그려 앉았다.
견학을 온 듯 보이는 아가들은 선생님이 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인상파의 특징을 설명하며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서 아름다운 빛이 도드라진 부분이 어디인지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여인의 모자 위, 나뭇잎 위 등 이곳저곳을 마구 가리켰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우면서 또 굉장히 부러웠다. 그림 제작연도와 화가의 업적을 달달 외워 객관식으로 맞춰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자란 아이들과, 수많은 작품을 직접 접하고 느끼면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스며들게 되는 이곳 프랑스에서 자란 아이들이 예술에 대해 갖는 마음가짐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도 확연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아가들 옆에 쪼그려 앉아서 계속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널찍한 미술관의 그림들을 마저 더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한 시간 남짓 더 구경을 하다가 미술관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Les Deux Musee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밖에서 보이던 외관보다 내부 인테리어가 훨씬 고풍스럽고 멋진 곳이었다.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두고 혼자 셀카봉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아있던 한 노부인이 “Vous etes Emily in Paris?(너 에밀리 인 파리니?)"라고 말을 붙였다.
※Emily in Paris: 미국인인 에밀리가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겪는 우여곡절과 로맨스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
고개를 돌아보니 초록색 베레모를 쓴 무지막지하게 멋진 스타일의 프랑스인 할머니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웬 동양인 젊은 여자애가 와서 어수룩한 프랑스어로 주문을 하더니 돌연 셀카봉을 올려두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는 게 얼마나 귀여워 보였을까.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던 중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녀의 남편도 돌아왔다.
두 사람의 이름은 캐서린과 브루노, 참으로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부부였다. 나의 프랑스어에 대해 그들이 칭찬을 해주자 "아직 많이 부족한데, 프랑스어를 잊지 않기 위해 한국에 돌아가서도 출퇴근길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었다"라고 대답하자 그들 역시 나를 굉장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한참 동안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캐서린은 내게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싶다며 자신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이들은 내일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도 전시를 볼 겸 방문할 예정인데 같이 가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그 유쾌한 제안을 흔쾌하게 수락했다.
즐겁고 따스했던 캐서린·브루노와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예정된 저녁 식사 자리를 위해 해산물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동행은 여행 카페에서 구했는데 그간 유럽에 올 때마다 온갖 로맨스에 휘말려 속 시끄러운 일이 많았던 터라 이번에는 낯선 이성과의 만남은 오히려 최대한 배제하고도 싶었지만 내 사진을 올려두지도 않았는데 연락온 사람들이 어김없이 모두 이성이었다.
'뭐 식사쯤이야 누구와도 상관없지' 싶은 마음으로 가장 먼저 연락온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가게에 먼저 도착해 오분 가량 기다리니 패딩 차림의 한 남성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딱 봐도 한국인인 오늘의 내 일행. 평소에는 낯을 꽤 가리는 편이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마음도 행동도 말랑말랑 해지는 나는 그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아도 사회경험이 굉장히 많은 것이 느껴졌던 그는 음식 주문에 있어서도 베테랑이었다. 식사메뉴를 고르는데 매번 애를 먹는 나로서는 굉장히 다행인 일이었다. 곧이어 나온 푸짐한 해산물 플래터와 화이트 와인 한 병.
“굴은 이렇게 레몬을 먼저 살짝 뿌린 다음에 칼집으로 관자 부분을 잘라내서 양파식초 살짝 뿌리고 후룩하고 마시면 돼요”
음식 하나하나를 그가 알려준 방법대로 따라먹으니 그야말로 맛이 기가 막혔다. 와 이거 식사메이트 하나 제대로 골랐는걸. 보통 여행을 할 때 맛집을 찾아 졸졸 쫓아다니는 식도락 여행가 타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있어서 먹는 즐거움을 늘려주는 사람은 참 귀한 동행인 듯 싶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와인이 한두 잔 들어가며 대화는 한층 더 즐거워졌다.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여행 중에 겪었던 일들,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 스위스에서의 스카이다이빙과 방금 만난 프랑스인 노부부까지. 일상의 스트레스가 아닌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만으로 대화를 가득 채우며 여행자들의 특권을 한껏 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남녀가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와인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만남은 어쩔 수 없이 로맨스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싶었었다. 술을 적당히 사리며 마신 나와 달리 빠르게 부어마신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느낀 이성적인 호감을 점점 가감 없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파리라 하더라도 내 타입이 아닌 이성에게 홀라당 넘어가버릴 정도의 맹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호감 표현이 강렬해질수록 내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타이밍에 적당히 선을 긋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너무 부담스럽게 했던 것 같다며 다음날 낮에 커피라도 한 잔 하면 안 되겠냐고 그가 물어왔지만 나는 오늘의 만남을 좋게 기억하기 위해서는 둘 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웃으며 인사했다.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달리는 차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과 카페테리아의 붉은 천막, 그 아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멋쟁이 파리지엥들, 깊은 밤이 되어도 저물지 않는 파리의 낭만은 여전히 내 마음을 부풀게 할 만큼 기분 좋게 넘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