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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든 자리', 이혼의 '난 자리'

빈자리가 느껴지는 순간

by 밍작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속담은 그럴싸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난 자리'가 만들어내는 감정은 사람이 처음 왔을 때 느끼는 게 아니라, 왔다 가야만 느끼는 감정이기에, 그 시점이 이별 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라서 누군가 내 인생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감정은 희미해져서 그 기쁨이 잊히고, 나가고 나서야 느끼는 씁쓸함이 짙게 남기 마련이.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과의 '든 자리'였던 결혼. 결혼 후에는 기대하는 것만큼 설레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처음 해보는 결혼인지라, 어떻게 생활해야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말해야 그 사람이 기분이 좋을 것인지 몰라서 항상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생활했다. 그런 조심스러움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며 6년여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나니, 느껴지는 이혼의 '난 자리'는 결혼의 '든 자리'보다 크게 느껴지곤 한다.


퇴근하고 매일 불 꺼진 집에서 불을 켤 때, 요리를 잘 못하는 내가 요리가 아닌 조리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할 때, 조리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헛헛함 때문에 생전 해보지 않던 음식에 사치를 부릴 때, 더 이상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지 못할 때, 어딘가 가고 싶지만 혼자 가기는 애매할 때 등등.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고통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부대끼며 살면서 누렸던 평범한 것들이 '난 자리'가 되어서 감정을 애매하게 만들곤 한다. 물론 후회는 아니다. 그냥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난 자리'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 이상 부부싸움을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인생에서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가끔 싸움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꼈었는데 더 이상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난 자리'의 감정 중 하나이다.(적당한 싸움은 나의 정신을 살아나게 하기도 하니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렇게 난 자리는 느껴질 수밖에 없고, 난 자리의 빈 공간을 그대로 비워두고 사는 건 현생에서도 마음속에서도 힘든 일이기에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 직장에서도 난 자리를 그냥 두고 업무조정을 하지 않으면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난 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혼했지만 제대로 돌아가는 인생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 난 자리를 채워야만 한다.


이 '난 자리'는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와 보내는 시간들이 있어야 채워짐이 느껴지니까.


가장 좋은 건, 그 '난 자리'를 대신할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함께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난 자리'를 만들면 다시 이를 반복할까 봐 이 자리를 채우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순식간에 채우기는 꽤나 어렵다.


회사에서는 이 난 자리(공석)를 가장 고생하지 않으면서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적절한 업무분장?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일을 못한다고, 여력이 있는 부서에서 대신 맡아달라고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한동안 살았었다. '가족'이라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행위는 내 인생에 더 이상 '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연애를 하는 것, 그리고 또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꽤나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사랑의 부질없음을 느껴서일까. 그렇게 사랑하고 나름 희생도 했지만 그 결과는 생각지 못한 쓴맛이라 그런 걸까. 그냥 혼자 잘 먹고 잘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쉽지 않았다. 많은 이혼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하지만, 꽤나 외향적이고 감성적인 ENFP 성격인 나에겐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어려서부터 내 주위에는 항상 누군가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하고 그 희생에 인정을 받는 그 느낌을 참 좋아했던 나에게 '독고다이'인생을 사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 이혼의 '난 자리'는 다른 곳으로 던져버리지 못하고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내 삶은 사실 잘 돌아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때로는 고민되고

때로는 삐걱거리며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이렇게 가끔 느껴지는 감정들이 바로 드러나는 '난 자리'의 흔적이다.


작년 사무실에 공석이 있을 때,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워서 제 역할을 해줬으면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다른 직원들이 덜 힘들 테니까. 결국 연말에 누군가가 오게 되었지만 생각지 못한 갈등으로 인해 사무실 분위기가 생각만큼 좋지만은 않다.


이혼하고 난 후의 빈자리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전 사람에게,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실망했기에 선뜻 누굴 채우지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닐까. 가벼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채우고 싶지만, 누군가를 옆에 두면 또 결혼 욕심이 날까 봐. 한 번 해봐서 더 잘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의 행복이 씁쓸함이 되는 과정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양육이든 비양육이든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이성에게 채워지는 사랑과 아이에게 주고받는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아이가 언젠가 독립하고 나면, 그다음에 느껴지는 외로움의 강도는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너무 늦어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 테고.


결혼의 든 자리.

이혼의 난 자리.


인생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고통과 권태의 시계추 같은 이 '든 자리'와 '난 자리'. 든 자리의 설렘과 난 자리의 고통 사이에 또 한 번 뛰어들까 고민하고 있는 애매함.


그래도 뛰어들어야겠지.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우리는 사람이고, 우리네 사람은 결국 고통과 권태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삶의 모습이고, 고통은 이겨내야 하고 권태롭지 않기 위해 도전하는 삶은 당연한 거니까.


부디 다음번에는 고통이 덜 하기를,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건 사랑이지만,

이혼 후에서야 알게 된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랑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함께 할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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