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은 어려웠다.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변호사시험(이하 '변시')에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상대적으로 항상 모의고사에서 안정권인 성적을 받아왔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시는 어려웠다. 나는 사시와 비교한다 하더라도 변시가 무조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합격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변시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1. 합격률에 해당하는 상위 50% 안에 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로스쿨을 다니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보통 사람들이 아닌 집단에 포함되어 있고 이 보통이 아닌 공부머신들 사이에서 적어도 상위 50%안에 들려면, 보통 수준 이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시험기간에만 대충 열심히(?) 공부를 해도 어느 정도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로스쿨에서는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시험이 만만했던 적이 없고 공부를 안하거나 대충하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입학할 때만 해도 나는 로스쿨도 대학원이니, 대학에서 한 것처럼만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이 다 날고 기는 사람들이다보니, 그 중 반수안에 드는 것도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한 일이었다. 난 그걸 간과했었다.
2. 사법시험에 견주어도 절대 쉬운 시험이 아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놓치는 부분인데, 변시는 사법시험과 비교했을 때도 절대 쉬운 시험이 아니라고 나는 정말 힘주어 외치고 싶다.
오히려 사법시험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시험이었다면 변시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머리도 좋아야 고득점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말하고 싶다(물론 합격률 자체는 변시가 훨씬 높으니, 합격하기 더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고득점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사법시험은 교과서 이곳 저곳에 말도 안되게 숨어 있는 도대체 왜 알아야하는지 모르겠는 내용들을 달달달달 외워야 맞출 수 있는 객관식 시험인 1차 시험과, 합리적인 추론에 반하는 판결의 결과를 외우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라든가, 판결문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옮겨 써야 고득점할 수 있는 2차 시험으로 이뤄져 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도대체 이런걸 왜 외워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다들 그냥 별 생각없이 잘만 외우길래 이 학문은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학문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걸 너무 잘 외우는 법학과 학생들이 존경스러웠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시험을 치는데, 1차 시험을 붙어야 2차 시험을 볼 수 있으니, 모든 글자를 달달 외우는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뇌구조를 완전 바꾸어 2차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두뇌 모드를 변경해 세팅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치는 시험이니 헌법 개정 연도나 개정 회차에 따른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과 같은 사람이 이걸 외울 수 있나, 또는 이런걸 도대체 왜 외워야 하는지 싶은 내용을 모두 외워야 하는 정도로 어려웠던 것이다(그것도 심지어 9지선다였던 적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연수원에 입소해, 학기마다 시험을 치게 되는데 이게 또 골때려서 시험 시간만 7-8시간인 과목도 있다. 시험 치는 중에 바나나 먹으면서 당 챙기면서 시험을 치는데, 이 엄청난 시험이 또 너무 중요한 시험이다보니 시험 치다가 고인이 되신 분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니, 사법시험은 1차시험, 2차시험, 연수원 실무 시험이 모두 시험 내용이나 방식이 다른데 다행히도 1차를 붙어야 2차를 볼 수 있고, 2차에 합격해 연수원에 입소해야 그나마도 연수원 시험을 칠 수 있으니, 꽤 오랜 기간 동안 뇌의 모드를 바꾸어 가면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호사시험은?
우린 이 세 종류 시험을 한꺼번에 친다. 단 5일 동안, 중간에 하루를 쉬고 이 모든 시험을 과목당 거의 하루만에 쳐버린다. 공부한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시험을 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벼락치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변시스케줄은 첫날은 공법(헌법+행정법), 둘째날은 형법(형법, 형사소송법), 이후 하루를 쉬고 셋째날과 넷째 날은 민법과 선택과목 시험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 공법을 치는 날에는 오전에는 객관식 시험을 치고(사법시험 기준 1차시험), 이어서 주관식 문제를 풀고(사법시험 기준 2차시험), 마지막으로 소장이나 답변서 등을 작성하는 실무시험(사법시험 기준 연수원 시험)을 하루에 몰아서 다 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총 4일 동안 시험을 친다. 시험을 치기 위해 객관식을 엄청나게 외웠다가, 바로 뇌 모드를 바꾸어 주관식 문제를 풀고, 또 뇌를 갈아끼워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달달 외워 적는 실무시험까지 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만에. 그래서 나는 쉽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변시를 마지막날까지 모두 치른 마지막 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시험 다시는 못치겠다."
변시는 총 5회까지 다시 치를 수 있다. 근데 시험을 마친 그 순간, 너무 지쳐서 만약 떨어지더라도 더는 못치겠다 싶었다(엄마 미안!). 또 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다시 치지 않아도 되도록 한 번에 합격했다.
그런데, 그 합격을 했을 때에도 마냥 너무나 행복하다기 보다는 "아 드디어 바보 인증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 컸다(요즘은 누적 재시생들이 많아 한 번에 합격하기도 어렵다는 듯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변시는 너무나 쉬운 시험이라는 인식 때문에서인지 떨어지면 쥐구멍에 숨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억울한 상황인가. 목숨을 걸고 시험을 쳤는데 그게 바보가 아니라는 인증에 불과했다니.
그니까 요는, 많은 사람들의 이런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었던 거다.
변시는 굉장히 정직한 시험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학교를 다니면서 '저 사람은 변호사가 되면 안될 것 같다' 싶었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모두 떨어졌다. 공부를 안하고서는 요행으로 붙을 수가 없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충분히 공부를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해, 그 다음해 열심히 공부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5차 내에 반드시 붙을 수 있다. 보통의 머리와 열심히만 있으면 충분히 붙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서 이 예외에 해당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상위 50% 안에 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운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떨어질 일도 전혀 없는 시험이다. 투입 시간 대비 산출이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자격증 시험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이 시스템을 완전히 신뢰한다(사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이 변시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하지도 말고(누구다 다 합격할 수 있으므로), 아무 이유 없이 무시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험이므로). 그리고 이 글이 변호사가 되고 싶은 누군가에게 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저는 로스쿨 5기이고, 또 변시도 5회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13기 정도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최근 동향에 대해서는 전혀[!]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로스쿨 입시나 변호사시험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그냥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가끔 브런치 제안하기 이메일로 연락 주시는 분들께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입시나 로스쿨 생활에 대해 조언을 드리고는 있는데, 저의 로스쿨 생활이 너무 오래되어 별로 큰 도움은 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점, 사회생활을 그만 두고 로스쿨을 가시려는 분들은 언제든지 문의 주셔도 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