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하겠다는 귀한 다짐에는 어쩌면 귀여운 동반자가 필요한 거 아닐까?
책벌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 책벌레라 불리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학업에 관한 열정도 꽤 있는 편이었으나 이 별명만큼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 공부는 해도 독서는 많이 하지 않아서일까? 갖지 못한 만큼, 이 단어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때로는 질기고 지루하리만큼.
성향과 정반대인 일을 겨우내 마치고, 내 것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는 사업을 시작했다. 핸드메이드 사업을. 일기를 안 쓰는데, 이상하게 내가 만든 것들을 설명하다 보면 그것들은 오목조목 내 일기가 되고는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들다 보니, 내 작품은 가끔 들쭉날쭉하게는 보여도 이내 하나의 곧은 선이 되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작품 뒤에 사람 있어요...!)
'책벌레' 책갈피의 시작도 비슷했는데, 만들기에 앞서 진짜 책벌레인 먼지 다듬이벌레를 검색해 그 모습을 보았다. 놀랍게도 처음으로! 관심이 덜했던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글쎄? 좋아하는 단어의 실체를 알아야 할까 싶다.(당연히 예외의 경우도 있다.) 오히려 외면한 덕에 나에게만큼은 스스로 그려온 책벌레가 진짜이니까. 동그란 좁쌀 눈, 세상 이치를 깨달은 듯한 입 모양, 학구적인 면모를 물씬 드러내는 빨간 안경의 모습의 책벌레.
청사과 색의 톡톡한 캔버스 원단에 줄무늬는
어떤 색으로 할지, 또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보통의 책갈피와 다른 모양새인데 어떻게 책갈피의 기능을 할지. 크고 작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경쾌하고 간단했다.
아, 이거 되는 일이구나! 안에 자석을 고정하고,
재봉하고, 약간의 솜을 넣어 완성. 여기서 '약간의' 솜이 중요한데, 과하게 넣으면 인형스럽게 빵빵해져 책갈피로 사용하기에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솜을 너무 적게 넣으면, 납작한 것이 덜 예뻐 보인다. 적절한 정도로 '약간의' 솜을 넣으면 기분 좋은 퐁신함과 유용성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책벌레 책갈피는 작은 내 상점의 '효자(손)' 상품이 되었다. 잠깐, (손)이 왜 붙냐고요? 판매자로서 잘 팔려서 좋은데, 이 녀석이 가끔씩 내 마음속 어딘가 불편한 곳을 살살 긁거든요. 바로 '책벌레'란 별명을 갖지 못한, 즉 '애서가가 아닌'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 '이 책갈피를 만든 사람은 당연히 책벌레만큼이나 책에 착 붙어서 진득하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 사실 누구도 비스무리한 말을 한 적이 없지만, 내 마음 상태를 보아하니 이번에는 설명해 보고 싶다.
'책벌레'가 아닌 탓에 그 단어를 생소하고 소중하게 짝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품으며, 나만의 책벌레를 키울 수도 있었고. 그리고 책갈피를 많이 사용해 보지 않아서 '인형'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납작한 것, 기다란 것 그리고 끼움새가 있는 것들만 책갈피라는 법은 없으니까. 둥근 것, 자성이 있는 것, 조금 기다랗고 퐁신한 것을 모아 나만의 것이 되었다. 거기에 귀여움까지 더해서!(이게 정말 중요하다.)
웃기고 좋은 점은 책벌레와 함께하면서부터, 책과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이 친구와 함께 하는 이들로부터 가장 기쁘게 듣는 소식이기도 하다. 다독하겠다는 귀한 다짐에는 어쩌면 귀여운 동반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책에 서식하며, 읽으며 배를 채우는 책벌레가 다소곳이 당신을 바라보는 순간. 빨간 안경 속 좁쌀만한 눈을
반짝거리며 기대와 응원을 보내는 시간. 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책을 더 읽게 된다.
어쩌면 '책갈피'가 만든 '애서가'도 '애서가'가 만든 '책갈피' 만큼이나 멋진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