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결국, 우리가 끝내는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닐까?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진실로는 내가 가야 할 집이 꼭 멀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 54세의 나이로 벌써 그 집에 쉬이 도착한 시인의 짧은 생이 밝혀 말해 준다.
시편 곳곳에 등장하는 ‘술’이라는 단어 때문에 시인이 숙취로 메슥거리는 중에 길을 더듬어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라면 다소 가까운 편이라 그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때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주정처럼 모호한 시의 전개가 어지러웠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안개가 옅어지고 천천히 술이 깨듯 알 것도 같은 시들도 만났다. 설핏, 시인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내게 주어진 삶에 휘청,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취불귀/혼자 가는 먼 집/씁쓸한 여관방/늙은 가수-뽕짝의 꿈 등 시들에 등장하는 ‘울음’은 가야 할 집이 멀고 그 집에 가는 길이 팍팍해 울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멈출 수 없어서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넋두리하며 가고 있는 슬픈 사람이 그려진다.
<혼자 가는 먼 집>에서는 현실을 한탄,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의 삶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나온다. <하지만 애처로움이여>에서는 ‘상처’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한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 “상처에는 상처의 마음, 마음에는 상처의 꿈”으로 생각이 확장될 수 있는 시인의 자유분방한 생각이 애처로움으로 귀결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에서 “내 상처의 실개천엔 세월도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로 시가 끝날 때까지 상처의 현재 진행형을 말하고 있어서 내 삶의 상처들에 소금을 뿌린 듯 지금도 아리다.
<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면>에서는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꿈같은가 현세의 거친 들에서 그리 예쁜 일이라니”,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라고 말하며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그 속에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나 돌이켜 가고 싶진 않았다네 진저리 치며 악을 쓰며 가라 아주 가버리라 바둥거리며 그러나” 그러나 나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가? 아니면 악을 쓰며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일이 있었던가? 시를 읽고 뒷장으로 쉽게 넘기지 못하고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가수나 노래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운다고 옛사랑이/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님인데 등 노래가 등장한다. 유난히 슬픈 여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곤 한다.
시인이 펼쳐 놓은 한바탕, 술과 노래, 상처 그리고 울음까지 터졌으니 이제 우리들 슬픈 곡조에 어울리는 젓가락 장단이라도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 내게 와닿은 제목들 : 마치 꿈꾸는 것처럼, 연등 아래, 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 저무는 봄밤, 혼가 가는 먼 집, 하지만 애처로움이여, 정처 없는 건들거림이여,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꽃핀 나무 아래, 봄날은 간다, 저 마을에 익는 눈, 저 문은 어디로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