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9월 22일에 적어둔 메모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코펜하겐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적었던 메모였어요.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산다'
대단한 일을 해낸 건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저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대외활동이나 동아리도 열심히 했어요. 인턴도 열심히 했습니다. 책도 읽고 글쓰기도 했죠. 반면 코펜하겐에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공부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았고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브이로그를 만들어보겠다고 영상을 찍기는 했지만 그걸 편집을 하기는커녕 영상을 다시 보지도 않았어요. 가끔 낙서를 하거나 짧은 일기를 쓰기만 했고 책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코펜하겐에서 열심히 '살았다'라고 믿습니다.
'열심히'보다 '산다'에 방점이 찍혀 있는 생활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당장 그 순간을 누리는 것 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열심히 '살'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9월 12일에 적어둔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생활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도 매일 외출하고 경험하면 더 꽉 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거 아닌가? 요즘 생활 너무 좋은데 한국에서도 이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현실을 살다 보면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집중하기 힘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하고, 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는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순간을 열심히 즐기기는 어려웠어요. 꾸준히 자각해야 하죠. 그럴 때 필요한 게 이런 메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주변 시선에 휩쓸리는 저로서는 예전의 스스로가 써 둔 조각들이 아니라면 그 감정을 기억하지도 못할 거거든요. 또다시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