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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Feb 05. 2024

하얏트 호텔의 조식에는 꼬미였던 내가 담겨 있었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과 파크하얏트 서울 사이에서의 유영

호텔의 조식 메뉴를 찬찬히 돌아보다가 가지런히 정리된 식재료 냉장고를 보자

“아.. 여기도 하얏트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구니마다  정리된 식재료들의 모습을 찍으려니 냉장고의 유리가 반사가 되어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다.


냉장고는 몇 개의 투명 유리문이 줄지어 늘어선 구성이었다. 어떤 칸은 가져갈 수 있는 그릭 요구르트와 어린이 요구르트가 있어 열어도 되지만, 어떤 칸은 자르지 않은 과일과 각종 통채소 그리고 다양한 오일병 등의 식재료만 진열되어 있어서 열어도 되는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저.. 혹시 여기 식재료 진열 칸을 열어 봐도 되나요?”


나는 마침 지나가는 요리사분께 문의를 했다. 그분은 사진을 찍으려는 내 모습에 그래도 된다고 했다.


“저.. 혹시 냉장고 안의 식재료는 누가 정리 하시나요? 제가 사실 저거 정리했던 사람이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파크하얏트 강남에서요. 거긴 막내가 하는데 제가 막내였거든요. “


뜬금없는 나의 과거 이야기를 들은 요리사분은 시간이 되는 누군가가 정리를 한다고 했다. 막내의 담당은 아니고 인차지가 한다 했다.

인차지라면 파트장 일 텐데 소떼, 콜드, 디저트 이렇게 분류되는 주방에서 높은 사람이 한다는 의미였다.

(호텔마다 조직 분류는 다를 수 있다.)


여기는 막내를 막 안 굴리나 보다. 허드레 일은 막내가 하는 게 주방이라고 기억하는데 여기는 덜 그런가 보다. 다행이다.


요리사분이 자리를 뜨고 난 뒤에도 나는 다른 조식 이용객들처럼 식당을 배회했다. 하지만 훅 들어온 15년 전 파크하얏트 강남에서의 기억에 시공을 유영한 기분이 들어 멍.. 했다.

고작 5개월 밖에 안 있었건만 호텔 주방에 몇 년을 일했던 것 같이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다.

고생을 너무 해서 생각이 떠오르면 멀리 밀쳐 두기 일수였다. 어렵게 작가로 주방에 들어감이 허락 되었지만 현실은 무보수 꼬미(주방의 막내, 실습생)였다.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 책이 나온 뒤라 몇 건의 인터뷰가 들어왔는데 하필 바쁜 주방에서 하자고 했다. 호텔 홍보팀에서는 너무 좋아했지만 나는 이만저만 눈치 보이는 게 아니었다.

레스토랑 브레이크 시간에 촬영과 함께 인터뷰를 하면 식재료를 다듬는 미 장 플라스(MISE EN PLACE)가 밀렸다. 그리고 조금뒤엔 꼭 이런 호통이 뒤통수에 꽂혔다.


“야!! 주방이 네 거냐?! 이작가!! 이자까야!!”


처음 주방에 들어온 며칠은  이작가님이었는데 며칠 뒤 그냥 이작가였고 나중엔 야!! 가 되어 “이작가! 야! “ 합성어가 이자까야라는 별명으로 불려 버렸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은 마감까지 있다 보면 서 있어도 졸려서 몸이 흔들리곤 했다.

그럼에도 주방의 언어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호텔 직원 락카의 작은 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메뉴를 읽고 공부했지만 그 공간을 이해하기엔 가당치도 않은 시간이었다.

여름에 들어가 크리스마스 며칠 전까지 머물렀었다.

겨우 일주일만 허락받고 취재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이탈리아인이었던 메인 요리사께 석고대죄하듯 부탁을 드려 일주일씩 늘려 5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정말이지 고마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호텔 주방의 세계는 그 어떤 곳 보다 녹록지 않은 곳이었다.

보이기엔 셰프라는 이름으로 하얀 옷에 모자를 쓰고 멋지게 오픈 주방을 누비지만, 오더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짓누르듯 내려오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얼어 죽은 것 같은 워크인 냉장고와 손이 닿으면 타버릴 것 같은  화덕 앞을 오가야 했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 비싸고도 비싼 호텔에 호사를 누리러 왔는데 냉장고 속 식재료 바구니가 시공을 넘어 예전의 기억 속에 나를 들어 데려다줘 버렸다.

하필 여기도 하얏트였구나. 마음이 툭…떨어졌다.

나의 마음이 그러거나 저러거나 특별한 이유로 넓디넓은 방을 쓰게 된 덕에 우리 가족의 호텔 이용은 어느 때 보다도 고급스럽게 누렸다.

아이들은 수영을 두 번이나 했고 남편도 오랜만의 호캉스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호텔의 숙박 목적이 아침 식사의 멋스러움인 나에게도 메뉴들은 넘치게 로망을 충족해 줬다.

(그런데 치즈는 빼자. 예전 보다 종류도 줄었고..음..)


그런데 말이다.

2009년에 기사를 써 준 중앙일보 이상은 기자님.

어쩌면 지금 읽어도 내 상황을 저렇게도 잘 서술해 주셨는지 너무 놀랍다.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그때 눈치 보는 저에게 과감하게 주방의 꼬미 아닌 것처럼 촬영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래에 2009년 일간스포츠 기사 입니다.

 

2009년 일간 스포츠의 기사

[JES 이상은] 책 속 자유분방한 모습과 사뭇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새하얀 조리복을 입고 모자는 단정히 눌러썼다.

상기된 표정에선 주방의 분주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뒷정리 때문에"

라는 말과 함께 털썩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지나가는 셰프를 보더니 바로 일어나 안절부절 못한다. 남들은 뒷정리하는데 자신은 인터뷰하는 상황이 영 미안한 모양이다. 아직 일한 지 채 두 달이 안 된 '꼬미(요리 견습생)'이기 때문이다.


2007년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에 이어 올 6월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를 낸 이민희(32)씨. 그는 네티즌 사이에서 음식 여행 전문가로 통한다.


네이버 파워블로거이며 팬도 제법 된다. 프랑스 치즈농가에 들렀을 땐 직접 소젖을 짰고, 수소문해 찾아낸 이탈리아 시골 공방에선 백발 할머니가 만든 생파스타를 맛봤다. 그의 이런 생생한 음식여행기는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치즈에 관한 지식을 인정받아 임실치즈마을 컨설턴트도 맡았다.


그런 그녀가 얼마전부터 서울 파크하얏트 호텔 양식 레스토랑 '코너스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돈 한 푼 안 받고서 말이다.


"주방일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닥치는 대로 다 한다"고 답한다.


"설거지부터 재료 나르기까지 시키는 대로 하죠. 물론 요리를 직접 하는 건 꿈도 못 꿔요. 말단 셰프조차 다른 곳에서 45년 경력을 쌓은 분들이거든요. 제가 요리 경력 없는데도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운이 좋다'고 고마워 하지만, 주방에서 보내는 그의 하루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는 주방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아침마다 요리 재료 통을 나르며 그는 최면을 건다.


"레몬소스가 담긴 커다란 통을 나를 때면 '이거 떨어뜨리면 나 죽어'라며 수없이 중얼거려요. 이 레몬소스 하나조차 씻고 깎고 썰고 끓이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건데 제가 한번 떨어뜨리면 끝장이니까요."


애초부터 주방에 발 들이는 것조차 쉽진 않았다. "현장에서 손끝으로 생생히 음식을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들은 지인이 주방 관계자를 소개해줬다. 그는 국내에서 드물게 생파스타를 만드는 곳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코너스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 파스타 여행 도중 생파스타의 매력에 푹 빠진 기억이 있어서다.


처음엔 '5일간만 있겠다'는 약속을 하고 주방을 찾았다. 사실 '최대한 오래 버티자'는 심산이었다. 처음 사흘은 작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주방에서 작가는 이방인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래선 정말 5일을 넘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먼저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자 "민희씨"란 호칭이 어느새 "야! 이민희!"로 바뀌었다 .


이씨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재료를 다듬다 칼에 벤 자국들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행복하다" 고 말한다. 그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치즈를 통해, 이탈리아에선 파스타를 통해 그들만의 삶을 느끼고 배웠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뒤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주방 이야기를 쓰겠다는 게 그의 다음 계획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오래 붙어있을 작정이다.


"그 동안 눈으로 느낀 음식 이야기를 썼다면 이젠 손끝으로 느낀 음식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주방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진 '꼬미'이고 싶어요."

저녁 준비 시간이 다 됐다며 서둘러 주방으로 향하면서 던진 말이다


글=이상은 기자 [coolj8@joongang.co.kr]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 참조 해 주세요.

https://v.daum.net/v/2009101410490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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