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저상버스를 타고

by MOMO
보행로에 설치된 518 저상버스의 경사판, 경사판을 통해 전동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계단이 없고 차체가 낮아 임산부, 노약자의 탑승이 매우 편리하다.



민주주의는 저상버스를 타고

MOMO 이민호


민주주의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물음표를 던지시는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바로 518과 228버스이다. 228번은 1960년 2.28일 대구민주화운동을 518번은 1980년 5.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며 서로의 도시를 누비고 있다.

광주와 대구는 2013년부터 두 도시 옛 이름(달구벌·빛고을)의 첫 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간 교류사업을 함께 해오고 있는데, 2018년 달빛동맹위원회에서 “대구에 518번 버스가 있는데 광주에도 228번 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바로 오늘 대구광역시에 탈시설 정책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518번 저상버스를 탔다.

나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그렇기에 계단이 있는 버스는 탑승할 수 없다.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나오는 저상버스라면 이용할 수 있다. 저상버스는 계단이 없기에 아이와 노인들이 오르내리기 쉬우며, 무거운 짐을 가진 승객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대구광역시 저상버스는 전체 시내버스 1,531대 가운데 절반가량인 48.9%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평균적으로 10대 중 5대가 저상버스가 아니다.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비교통약자에 비해 2배나 더 많은 시간을 길에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삼대가 덕을 쌓았는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저상버스가 들어왔다. 35도 폭염에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뚫고 달려오는 버스는 흡사 전설의 동물 ‘유니콘’ 같았다. 도착한 버스는 정류장 가까이 정차한 뒤 능숙하게 리프트를 펼쳤다.

버스에 오르고 보니 예전에 몇 번 만났던 기사님이셨다. 타자마자 접이식 의자를 접어주시며 도착지가 어딘지 물어봐 주셨다. 속된 말로 “기분이 째졌다” 버스마저 유니콘으로 보이게 하는 폭염에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기분이 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스 창밖 풍경을 보며 째졌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얼마 전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인 독일·영국·덴마크·캐나다 등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저상버스가 일반화되었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7년부터 도입했다고 하는데 축구 말고 저상버스를 도입률을 두고 한·일전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다음에 내릴 준비를 하라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상상에 빠져있던 나를 현실 세계로 끌어당겼다. 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듯 버스에서 내려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를 관통하는 이동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전동휠체어를 통해 동네에서 산책할 권리를 얻었고 특별교통수단과 지하철을 통해 노동과 영화 시청의 권리를 얻었다. 저상버스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집회 결사의 자유와 만났다.

이동 수단의 확장은 나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했다.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더디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국민의 한 사람인 내가 자유권, 평등권, 교육권, 문화향유권, 노동권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권리’가 바로 이동할 권리, 즉 ‘이동권’이다.

이동권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만들어 낸 신생어인데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사건을 계기로 요구되었으며 올해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주년 되는 해이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완전한 이동권 보장은 멀고 먼 이야기이다.

법 제정 이후 마련된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상으로 2011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고,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상으로는 2016년까지 41.5%를 저상버스로 교체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에 불과하다. 국가 계획에 명시하고 있는 10년 전 목표치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21년은 518광주민주화항쟁 41주년·228민주화운동 61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지난 5월 18일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사거리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들이 “장애인에게 민주주의는 없었다”라고 외쳤고, 장애인의 몸들이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며 버스에 올랐다. 41년 전 그날이 재현되었지만, 주인공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비뚤어져 한쪽이 된 장애인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몸’과 ‘목소리’,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다양성을 드러냈다.

이제 모든 장애인의 ‘몸들’과 ‘목소리들’이 저상버스라는 민주주의에 올라타길 소원한다. 저상버스를 통해 모든 시민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대구와 광주, 그리고 전국의 모든 시민들이 저상버스를 타고 내리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나의 민주주의는 버스를 타고 달린다.

미래의 민주주의를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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