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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 Jun 24. 2024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빛

▲제주도 사려니 숲길 삼나무 사이로 밝은 태양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이민호

https://theindigo.co.kr/archives/56907

#이민호의차별속으로 #뇌탈출병
#오에겐자부로 #히카리 #개인적인체험 #노벨문학상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1963년 일본의 한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기쁨과 환희에 찬 부모와 달리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선천적으로 두 개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희귀병인 ‘뇌 탈출병’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성공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당장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기에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아이는 남은 생을 지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아이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기원하며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을 가진 ‘히카리’로 짓는다. 부모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성장했지만,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기뻐도 기쁘다고 웃음을 짓지 않았고 아파도 아프다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소리와 빛, 움직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히카리의 장애가 부부를 힘들게 한 적은 없었다. 장애보다 타인의 편견이 그들을 더 힘들게 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가족 모두 산책을 하던 중 처음으로 새소리에 몸을 돌려 반응하는 히카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후 부부는 산책을 할 때마다 다양한 새 이름과 소리를 설명해 주었다. 어느 날 숲에서 흘러나온 뜸부기 소리를 듣자 ‘엄마’와 ‘아빠’를 불렀다. 히카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날 이후 한 번 들은 새 이름과 소리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히카리가 소리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어, 클래식 음악을 들려 줘보니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을 모셨지만,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선생님조차 더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 포기를 마음먹는다.

그때 서툰 실력이었지만 히카리가 선생님이 연주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똑같이 따라 연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다시 가르칠 것을 다짐한다. 조금씩 음악을 배우며 선생님이 연주한 곡을 똑같이 악보에 옮겨 적었다.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히카리는 부모님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누군가의 연주곡을 따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곡한 음악이었다. 부부는 히카리가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지원했고, 두 장의 음반이 세상에 태어났다.

음반은 음악 평론가들과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그의 앨범은 29만 장 넘게 판매되었다. 유명 작곡가가 된 그와 가족의 이야기는 일본 사회에 큰 울림을 일으켰다. 히카리의 아버지는 가족의 경험을 여러 권의 소설로 발간한다. 그들의 삶이 투영된 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노벨문학상을 받는 영광을 얻는다.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2023년 3월 3일 타계한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 ‘오에 겐자부로’이다.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찬란한 ‘빛’을 히카리라고 고백했다. 그 고백에 화답하듯 히카리는 자신의 삶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아버지를 ‘빛’이라고 말했다.

서로 반짝이는 두 개의 별. 그 빛은 상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뻔한 장애 극복 서사가 아닌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히카리의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sed73hdy_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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