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빚 탕감 계획과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된 이야기 중에 가장 경계하고 싶은 것은 지난 정부의 빚 탕감 내역을 나열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윤석열 정부도 했으니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정부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논리는 성실 상환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탕감받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지점을 상쇄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대적 박탈감이 무의미하며 도적적 해이 역시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1.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반박
채무를 상환하는 행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도덕적, 양심적, 실리적 이유 등이 있는데 주된 이유로는 채무불이행에 따란 불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인 괴로움과 자책, 신용정보 하락, 신용거래 불가, 재산의 압류 및 추심 등 채무불이행은 보통 사람이라면 피하고 싶을 상황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권, 채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도 현금이 없어 상속세 지불을 위한 대출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출을 받기에 앞서 상환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 재난, 실수 등 우리 뜻한 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2019년 말 대출을 받아 식당을 차린 사람이 2020년 초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는 마스크를 주문했지 식당을 차리진 않았을 것이다.
위기를 맞이해 어떤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부채를 상환하고 또 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해 파산했을 상황에서 단순히 금전적인 것을 보면 파산 면책을 받은 사람이 나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황금만능주의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사회적 평판, 신뢰, 인정, 경험 등은 금전으로 치환할 수 없다. 부채를 성실히 상환한 사람은 다음 기회를 맞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상대적 박탈감을 운운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사고일 뿐이다.
일부에서 일부러 돈을 갚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돈을 빌려서 빼돌린 다음 상환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버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5년 자료에 따르면 파산법 위반현황과 관련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평균 약 13건 정도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파산, 회생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사건 신청에 앞서 지난 5년간 은행 계좌 입출금 내역을 전부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10년 치 내역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몇천만 원 꿀꺽하자고 10년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파탄의 원인으로 도박, 사치를 꼽는 경우는 고작 0.37%였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며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파탄의 위기에 처한 사람은 물에 빠진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정부의 역할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물 밖으로 건져 내는 것과 다시 물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2.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제정 이유
한국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즉,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국가의 도움을 받아 부채를 청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사기 파산과 같은 부정행위는 논외로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써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것을 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은 그 기업이 돈을 땅에 심어 물 주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쓰는 돈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로의 형태로 나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벌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그 속에서 불운을 맞이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나 혹은 가족의 질병, 실직 등 불운한 상황을 맞이해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 치료를 중지하고, 식사를 중지한 채로 그냥 죽어야 할까? 혹은 인근 지하철 역으로, 산으로 사라져 노숙자 혹은 자연인이 되어야 할까.
국가는 위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법을 제정해 그들을 구제한다. 국가 공동체가 생긴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합당하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만든 것이니까.
3. 채권은 투자자가 채권 발행인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형태의 상품으로, 부도·파산 등 채권 발행인의 신용위험 사건이 일어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주식이나 펀드, 채권 등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투자를 했을 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그런데 왜 개인만 그 투자의 손실을 본인이 감내해야 할까? 금융기관 역시도 그런 손실을 볼 수 있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면 그만큼 손실의 위험성은 높아진다. 금융기관이라고 해서 그것에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다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역시 지적해야 마땅하다. 못 받을 것 같았으면 빌려주지 않았어야 한다.
4. 정부의 정책적 탕감
파탄에 이른 각 개인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이용해 법원에 신청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신청 비용도 적지 않고 절차도 복잡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당장 내일 먹을 밥도 없는데 변호사(혹은 법무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사건을 신청하고 부채증명서를 발급하고 계좌 거래 내역을 출력하고 진술서를 쓰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다년에 걸친 채무자의 삶은 그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일괄적으로 정부에서 탕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운한 개인들을 구제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5. 함께 사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사람이 사는 곳이다. 거기에 살아가는 나도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다. 당연히 사람은 먹어야 살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도와주지 않고 비웃고 있는다면 다음에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참고 자료-
1. 이재명 정부가 7년 넘은 5천만 원 이하 빚을 탕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부 내용은 약 113만 명의 장기 연체채권 총 16조 4천억이 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채무조정 기구가 연체채권을 평균 5% 가격에 매입할 것이라고 봤을 때 약 8천억 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한국경제 ''7년 넘은 5000만 원 이하 빚' 탕감…113만 명 구제'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61968651)
2.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통해 파산 및 회생을 신청한 건수가 2020년 18,708건, 2022년 22,407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로운 넷 경제 파탄 3년 이내 파산····2024 상반기 개인파산 통계조사 결과보고 /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9379)
3. 법원이 공개한 파탄원인으로는 2023년 자료를 기준으로 실직 또는 근로소득 감소 47.66%, 생활비 증가 46.73%, 사업실패 또는 사업소득 감소 44.17%, 의료비 지출증가 17%, 투자 실패 또는 사기피해 11%, 도박, 사치 또는 낭비 0.37%, 보증채무 부담 9%로 집계되고 있다. (파산관재인이 보고서를 작성하며 항목을 중복으로 체크할 수 있기 때문에 합계가 100을 초과)
(2025.4.15. 서울회생법원 2024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 / https://slb.scourt.go.kr/rel/information/statistics/index.jsp)
4. 파산 비용에 약 200~3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파산 신청 비용 300만 원… 돈 없으면 ‘빚 면책’ 못 받는 나라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7760.html)
5.
(파산범죄에 관한 연구 이천현 저 서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5 / https://book.ioj.go.kr/%24/10110/contents/7063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