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잃다

갖은 일을 겪는 것이 나만은 아니지만.

by 하민혜

7살 꼬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콧구멍에 오백 원을 넣으며 개그맨을 흉내 냈다. 티브이 광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곧잘 따라 했다. '어른이 되면 개그맨 해야겠다!' '연예인 감이야!' 동네 어른들 사이에 이미 유명인사였음은 물론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잔치에 불려 가서 요란법석을 떨고 나면, 콧구멍에고 바지춤이고 지폐가 가득했다. 꼬마는 신명 나게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껏 올리곤 했다.


차디찬 겨울날 새까맣게 밤이 찾아왔다. 입김을 불며 아랫목에 누워있었고 여느 날처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눈두덩에 묵직하니 커다란 돌덩이가 얹어진 것 같았다. 어느덧 나타난 엄마는 허리춤에 두른 수건을 꼬옥 틀어 짜내 이마에 올려 주셨다. 쉴 새 없이 그렇게 하셨다. 불이 난 마냥 수건은 금세 뜨거워졌다. 입술은 열려 헥헥거리고 있었지만 좀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밤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어느 새벽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를 보았는데 빼꼼히 눈물이 맺혔다. 몇 날 며칠이라 억울한 건지, 옆에 잠든 엄마가 안쓰러웠던 건지 모른다. 볼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이 뜨끈하게 볼에 달라붙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만 차리고 보니, 누워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병원 입원실이었다. 의사와 엄마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파수가 맞춰지지 않은 라디오처럼 지지직거린다. 이내 머리가 아파오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만이었을까 편안한 콧김을 느끼며 깊은 잠이 들었다.




햇볕이 나른한 날 퇴원을 했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웃고 있고, 언니도 동생도 나를 반가워한다. 이상하리만치 다들 울거나 웃거나 했다. 가장 이상한 것은 모두가 아주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들이 작게 말하는 이유가 나의 문제임을 알았다. 언젠가 눈이 보이지 않거나,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어렸고(이렇게 핑계를 대도 될까) 그런 사람들에 일말의 관심도 가진 적이 없다. 또 '장애'라는 단어나 그 의미 자체를 몰랐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그저 귀가 안 들릴 뿐인데 놀랍게도 내 세상은, 그러니까 그냥 모든 세상이 이전과 판이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럭저럭 다름없이 밝은 모습으로 지냈던 것 같다.(지내려고 노력했다.) 부모님과 형제들, 또 동네 이웃들의 찌푸려지는 미간을 보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불쌍'하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거나 머리를 만지곤 했다. 보살핌을 받는 느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대체로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버럭 화가 나기도 했다.


바람이 앞머리를 흩뜨리고 눈가를 자꾸만 간질이던 어느 날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흙놀이를 하다가 현성 오빠가 아이들을 모았다. 뭐라고 속닥이기를 눈치껏 따라가 보니 늘 해왔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려는 듯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나와 달리 해맑게 웃고 있던 현성 오빠가 왠지 고마웠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장애인인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게 기뻤다. 들뜬 마음과 달리 무궁화 꽃은 곧 나를 조그라 들게 했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바라보며 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섯 번째 술레를 하고 있던 나는 그만 머리꼭지까지 화가 나 있었다. 마침 나를 툭 치고 도망가는 수인이를 있는 힘껏 따라가 세게 밀어버렸다. 가느다란 젓가락을 닮은 6살 수인이가 다리를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내쳐지는 바람에 무릎이 온통 까진 채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사과를 하면서도 어쩐지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골목 구석에 앉았다. 부러뜨릴만한 막대기를 찾아 있는 힘껏 부러뜨리다가 얼굴을 세게 움켜쥐어 아프게 했다. 볼이 화끈해지는 것을 넘어서 찔끔 눈물이 나올 만큼 두 손으로 세게 쥐어뜯으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자학은 그날을 시작으로 계속되었다. 점차 빈도가 잦아지니 얼굴에 흉이 지기 시작했다. 여느 날처럼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쥐어짜는데 엄마가 쫓아 들어오셨다. 엄마는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몇 차례 때리고선 나를 안으셨다. 엄마의 목소리가 그 흐느낌이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얼굴을 흉 지게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대신 연필을 잔뜩 들고 다니며 구석을 찾아가 연필을 부러뜨렸다.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가 연필을 부러뜨릴 때엔 제법 힘이 들어가기에 꽤나 유용한 분풀이였다. 이렇게 비뚤어진 데에 사람들의 책임은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어느 날부터일까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 어딘가 한심하게, 쓸모없다는 듯 그저 자기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그 눈빛이 아팠다. 내게 주는 아픔을 되돌려줄 길이 없어 애꿎은 연필을 아프게 했다.

사고(?) 이전에 그토록 조잘대던 입술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소리를 들려주지 않겠다고 하니 나도 복수를 하기로 했다. 나 역시 소리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앙 다문채 연필을 부러뜨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비루함 그 자체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불쌍한 것은 어느 날 소리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미저리처럼 된 것은 이미 잃은 것에 대하여, 상처에 대해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핍을 가린다는 게 도리어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모자람을 드러낸 꼴이었으니까.


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즈음부터 엄마 손을 잡고 걷는 것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날만큼은 나도 모르게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맞잡은 손에 땀이 흥건했고 머리가 어지러워 토할 것만 같았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공포인지를 설명하자면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다. 마치 소통이 단절된 관계로 가득 찬 세상 속에 홀로 있는 꼴이다. 그나마 만나오던 사람들과 함께일 때면 조금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 곳엔 낯선 사람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목이라도 조르듯 숨통이 조여왔다. 물론 다들 긴장했을 테고 불편할 것이라는 걸 지금엔 알고 있다. 그때엔 오직 '장애인인' 나만 느끼는 불안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우리는 상대와 내가 '정말로' 다름을 알 때 그 외로움에 늘 몸서리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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