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개운한 밤입니다.
발가락을 빤다고?..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습니다. 내 몸이나 그들 몸이 다를 것이 없지만, 목욕탕에 가면 온통 다른 여자들의 나체를 구경하느라 바빠집니다. 길을 걸을 때 남자들이 여자에게 시선을 뺏기는 건 알고 있지만, 여성 역시 지나가는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눈을 빼앗기는 결과를 모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때 타월로 제 다리를 시원하게 밀어 내려가다가 발가락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문득 그다지 친하지 않은 김양이 떠오릅니다. 김양은 저보다 4살가량 많은 언니예요. 아이 둘을 키우고 있고, 외모는 정말 평범한 아줌마같은 모습입니다. 입만 열면 남편 이야기를 꺼내 놓는 언니는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은 밤일까지 털어놓는 일이 많습니다. 알려진 바로 여자들은 자신의 연인을 비롯해서 남편과의 잠자리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고 해요. 남자들은 여자 이야기, 야한 이야기를 많이 해도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잠자리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꽤나 많은 면에서 남성과 비슷한 일이 많습니다. 야한 이야기를 꺼내는 게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제 입에서 먼저 내 상대의 밤일이 어떻다고 말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언니는 서슴지 않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곤 하는데요. 하루는 남편이 자신의 발가락 하나하나 애무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즈음에서 나는 이런 애무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가 애매했습니다. 받았다고 해도 이상하고, 받지 않았다고 해도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씻는 중에 제 발가락이 눈에 들어온 건, 언니가 혼신을 다해 남편의 기술을 설명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발가락을 빨다니, 어떻게 보면 좀 더러운 것 같기도 하고 취향이 그쪽인가 싶기도 하지만요. 언니는 분명 남편의 취향이 그런 쪽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남편이 자기 몸을 진심으로 예뻐하고 사랑한다고 느낀다고 했습니다. 말이 그래 발가락만이겠습니까. 온몸 구석구석 시간을 들이는 애무에는 정말 고단함과 정성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남자들은 그저 삽입하고 끝내고 싶을 텐데 더군다나 오래간 사랑을 나눠온 아내에게 이런 애무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남편의 마음이 뭔지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꼬물대는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정말 온몸 구석구석 입을 대고도 남을 만큼 사랑스러웠으니까요. 아가의 똥이라고 해서 더럽지 않을 수야 없지만 그마저도 거리낌이 없어지는 겁니다. 아이의 발가락은 물론이고 작은 엉덩이, 귀, 온몸 구석구석 다 뽀뽀하고, 백번 천 번 뽀뽀해도 지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무슨 변태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러니까 그 남편의 행동 역시 변태행위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부부나 오래된 연인 관계에서 때로 섹스는 마치 '숙제'와 같아지기 마련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기보다는 욕구를 채우는 식으로 끝나는 일이 많아지는 거죠. 이런 진실이 우리에게 달갑지는 않지만 그 어떤 완벽한 미인, 재벌 미남과 함께여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행위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고 흥미를 잃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내를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해도 정작 그녀의 남편은 발가락은커녕 그 옆에 심드렁하게 누워있게 되는 식이죠. 실제 심리학에 '습관화'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습관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김양의 남편처럼 독특한 애무, 새로운 장소에서의 섹스, 굿 나이트 키스, 출퇴근할 때 포옹하기 등 뭔가 안 하던 짓들을 해야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제 발가락이 안녕한지 인사하며, 어떤 마음이 올라왔는데요. 짜릿한 애무를 주고받고 싶은 게 아니라, 서슴지 않고 발가락이든 엉덩이든 서로 걷어찰 수 있는 애정이 넘치는 관계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화끈한 거로 치면야 새로운 사람이 제일 짜릿할 테 죠. 매번 지루해질 즈음 상대를 바꾼다는 게 설사 가능하다 해도 과연 행복할까요? 그건 욕구를 좇는 돼지와 다를 바가 없는데 말입니다. 이따금 욕구가 올라오는 거야 막을 수는 없지만 인생의 목표가 짐승인 사람은 없다고 믿습니다. 배고프다고 먹고, 또 먹고 또 먹는다고 배 터지는 일 말고는 결과적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처럼요. 욕구는 본래 채울 수가 없는 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건 미칠 것 같이 짜릿한 밤이 아니라, 애틋하고 사랑이 흘러넘치는 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