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책
독감에도 마음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가족이 많다 보니 누가 언제 어디서 걸려올지 몰라 긴장하곤 한다.
전염병은 늘 한 명씩 다 걸려야 끝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1,2째와 나만 걸리고 끝난 것 같다.
3,4째는 거실에서 생활하고 남편은 작은 방에서 생활했다.
독감인지 모르고 3,4째와 거실에서 생활했는데 증상이 있고부터는 마스크를 해서인지 전염되지 않았다.
잠복기가 있어서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 보니 조용히 넘어가는 듯하다.
4년 동안 미니멀라이프를 하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비워냈다.
6인 가족 5톤 트럭 한 대로 이사오기를 목표로 많은 물건들을 비워냈다.
약간의 정체기인지(?) 5개월 전 지금 집에 이사 오고 나서 하나둘씩 물건들을 다시 들여오기 시작했다.
안락의자도 하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눔 받고 베란다에 수납할 장이 필요할 것 같아 중고로 들여왔다.
4남매의 성원에 못 이겨 금붕어 두 마리를 식구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이제 책상도 필요하다고 해서 아이들방을 공부방으로 꾸미기까지 했다.
복작복작해진 우리 집이다.
가장 많이 들여온 물건 중에 하나는 책이다.
교회 권사님께서 조심스럽게 손주가 읽던 책인데 중고로 팔까 하다가 우리 가정이 생각나셔서 책을 물려줘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미니멀을 하고 나서 물려받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솔직히 받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중에 책이 받아오기 싫은 물건 중 하나였다.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넷째까지 읽히면 되지 않냐며 감사히 받아오라고 했다.
책을 물려받기 싫었던 이유는 미니멀을 하며 거실 한 쪽면을 가득 채우던 책을 많이 비워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이 많아도 그중 1/10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채워진 책들은 거실을 넘어 각 방에 심지어 베란다까지 빈 틈 없이 채워졌다.
엄마의 욕심을 버리고 비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책을 열심히 비워냈다.
이제는 아이들이 좀 커서 책을 찢지 않으니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히면 될 것 같았다.
많이 비우고 4단 회전책장 하나와 2칸 책장 2개, 안방에 바구니 하나에 담길 정도만 남겨두었다.
이사 와서 도서관을 많이 다녔는데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도서관 책을 놓을 자리까지 마련해 줬지만 제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연체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까운 도서관은 걸어서 가기엔 조금 거리가 있고 차를 가져가려면 주차장이 협소해서 주차가 어려웠다.
먼 곳에 있는 도서관까지 가려면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했다.
요즘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도 듣고 태권도학원까지 다녀오면 같이 도서관 갈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가려면 갈 수 있지만 부모님 댁 이사를 돕다가 허리를 다쳐서 물리치료 받고 있어 버겁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책을 받아오기로 결정하고 받으러 갔다.
거실 한쪽에 15단 책장에 가득한 책 중에 가져가고 싶은 책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챙겼는데 무게가 엄청났다.
허리가 안 좋았지만 엄마의 뚝심을 발휘하여 트렁크 한가득 채워왔다.
권사님께서 김치며 음식이며 아이들 간식까지 잔뜩 챙겨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했다.
이렇게 기도하시면서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가정이 아이들이 많아도 그분들 덕에 산다 생각하니 더 죄송했다.
나도 그분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 드려야겠다 다짐했다.
은혜로 살아감에 다둥이를 키워도 두렵지 않은 것 같다.
독감으로 집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뒹굴거리며 읽어줘서 잘했다 싶었다.
방에 아무것도 없으면 좋겠는 마음을 내려놓고 책을 수용하기로 하니 한결 편해졌다.
이제 곧 겨울방학도 다가오니 말이다.
책장을 다시 들이고 싶진 않아서 일단 기존에 있는 책장 옆에 쌓아두었다.
안방에는 수납장과 책바구니, 제습기, 청소기, 장롱만 두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 좋아 비워뒀었다.
독감으로 1,2째가 안방에서 지내다 보니 책 읽는 자세가 신경 쓰였다.
시력이 좋지 않은 첫째가 자꾸 엎드려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나의 마음을 비우고 안방에 안락의자 하나와 작은 테이블, 독서대를 놓아주었다.
그랬더니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책을 옆에 쌓아두고 하나씩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제 12살이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안락의자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좋냐고 물어봤더니 좋단다.
그러곤 하는 말이 다른 책 더 없냐고 묻더라.
학습만화를 주로 읽고 있긴 하지만 틈 나거나 심심하면 책을 읽는 첫째라 나의 마음을 비우길 잘했다 생각했다.
물려받은 책 중에는 글밥이 긴 책들도 있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읽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셋째는 형을 따라 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동화책 말고 학습만화를 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도서관 놀이를 하자고 하더니 책을 깔아 두고 밟고 건너기 놀이도 하고 하나씩 빼서 카운터에서 바코드 찍듯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다 놀고 나서 다시 책을 한편에 쌓아두었다.
책장에 딱 꽂혀 있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쌓아두니 잘 읽는 것 같다.
책장을 들이고 싶지 않지만 책이 늘어난 만큼 책장이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
마음에 드는 책장이 중고마켓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오랜 기간 읽지 않는 책들은 비우려 한다.
미니멀라이프를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등은 채우고 살고 싶어졌다.
내가 미니멀리스트이지 아이들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기에 가족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극강의 미니멀은 내려놓기로 했다.
극강의 미니멀은 나중에 남편이랑만 살 때 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