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 엔드 〕
리뷰
유난히 성숙했던 또래 친구들이 기억 속에 있다. 10대 때는 매 해 반장이나 맨 앞 줄에 앉아있던 친구. 20대 때는 대외활동 등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누구보다 취업에 대한 준비를 차곡차곡 잘 쌓았던 대학교 동기. 30대 때는(나는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예적금이나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직장 동료. 그들을 만나면 나는 '어른스럽다'는 언어를 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것 같다. 어른스럽다는 말에는 층위가 많지 않다. 적어도 내가 습득한 그 단어는, 사회의 질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위기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있고, 필요 이상의 행동을 지양하고, 나와 타인을 모두 잘 챙기는, 그런 의미를 일정하게 담고 있다. 특히 필요 이상의 행동을 지양한다는 말이 중요한데,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어른스러운 친구는 대체로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을 막아주는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아이폰 14를 쓰는데 아이폰 16 프로를 사고 싶다'는 친구에게, '지금 아이폰으로 일상에서 불편한 점이 있어?'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 '너 마음이 꼭 사고 싶으면 사야지' 같이 근거 없는 마음 달래기는 어른스럽지 못하다.
어른은 결국 성숙함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숙함이 곧 어른의 지표라면,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우리가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스무살'의 순간은 어떤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떠올려본다. 학교 입구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4년제 대학교를 붙은 친구들의 명단이었다. 현수막에 빼곡히 대학교와 이름이 써 있었다. SKY 대학이 제일 왼쪽 위에 써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마치 어른의 증표일까. 지금은 마치 그들에게 '너희는 어른이 벌써 되었구나' 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영화 『해피 엔드』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어른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근미래 일본, DJ 음악 동아리를 하는 5명의 10대 친구들이 졸업식을 앞두는 시점에 각자의 환경이 바뀌는 이야기를 다룬다. 근미래 일본에서는 지진에 대한 위협이 현재보다 실재적으로 다가온다. 지진 경보가 울리면 모두가 긴장한다. 이런 외부의 위협을 일본 정부는 외국인에게 돌린다. 학교에선 겉으로는 중국계, 미국계, 한국계 등 다양한 출신의 친구들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선 이들을 은근한 방식으로 외면한다. 동아리 친구인 유타, 코우, 아타, 밍, 톰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런 환경과 출신을 소재로 친구들 사이에 긴장감을 섞는다. 오직 음악밖에 모르는 유타. 그리고 유타의 절친으로, 같이 DJ 듀오로 즐거운 일상을 보냈던 코우. 하지만 코우는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사회가 점점 외국인 출신을 배척하기 시작하면서 코우 본인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유타는 점점 코우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같이 선생님 몰래 밤 늦게 동아리방에 가서 음악에 푹 빠지는 경험도, 몰래 클럽에서 음악을 듣는 경험도, 코우는 이제는 '너도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며 유타를 외면한다. 코우는 실재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다. 출신 때문에 본인에게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 유타와 코우는 결국 졸업식이 가까워지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친구 중 한명인 톰은 본인의 고향인 미국으로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20살 이후에도 같이 함께 지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순수하게 친구, 음악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유타도 코우와 마찬가지로 실재적인 위기를 겪는 순간이다.
중요한 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들은 친구라는 사실이다. 세상의 문제에 실천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코우도, 음악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유타도, 각자만의 길을 걸어가게 된 밍, 아타, 톰 모두 친구라는 유대는 남아있다. 여러 일로 복잡한 상황을 겪게 된 유타는 한 음악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는데, 사장님과 함께 게릴라 디제잉을 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일상에서의 괴로움을 음악을 통해 치유하는 순간이다. 그 미소는 코우도 가지고 있다. 본인의 문제를 공감해주는 동료들과 회식을 할 때, 그들의 열띤 모습을 보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유타와 코우, 모두 본인의 역할과 책임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세상에 본인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면 될 지 인지하는 것. 본인도 모른 채 스스로 어른이 되고 있음을 자각한다. 똑같은 모습의 어른으로 경쟁하지 않기에, 그들은 여전히 친구다.
어른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성숙함의 정도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의 조건을, 세상이 요구하는 특정 기준을 달성하는 기준으로만 이야기해선 안 된다.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방향이라서 서로 다르다. 코우가 되어가는 어른의 모습이 있고, 유타가 되어가는 어른의 모습이 있다. 음악과 함께 실존적인 문제를 안고 20대를 시작하게 된 유타는 내면에서 치열한 투쟁을 겪을 것이다. 누구는 이를 보고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어른스럽지 못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타와 친구가 되지 못 한다. 시위에 참여하는 코우도 그렇다. '세상이 그런다고 바뀌냐'는 질문을 하면 코우와 친구가 될 수 없다. 각 개인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지 스스로 깨달을 때, 그들은 각자만의 어른의 모습을 보인다. 단절된 세상에서 이런 모습을 인정할 때, 여전히 친구인 코우와 유타처럼 우리 모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적어도 내 고등학교에서 현수막에 모든 친구들의 이름을 써 주었다면, 나는 졸업하는 반 친구들을 다시 한번이라도 떠올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자책하는 순간이 잦아질 때가 있다.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아침 루틴을 잘 못 지키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식했을 때 등등. 스스로 설정한 기준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걷고 있는 방향 자체는 맞지 않을까, 하며 다시 자기 확신을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만큼, 더욱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거다. 너와 내가 어른의 형태가 다른 것처럼, 나 스스로도 타인이 정하는 어른의 기준을 맞추다가 지치는 일을 덜어야 한다. 길을 잃고 방향 자체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다르다'는 감각이라도 갖고 있다면, 모두가 서로에게 또는 나에게 더욱 관대해지리라 믿는다. 조금이라도 더 친절한 사회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