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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재 Jan 07. 2024

기차 놓치는 것도 추억이야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4

워크어웨이Workaway 활동을 하던 중 만난 슬로바키아 친구 유라이Juraj는 클라이밍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였다. 내게 흔쾌히 클라이밍 무료 일일강습을 제안하는 이 친구의 마음씨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 우연히 만난 한중 국제부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의 달달한 러브스토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부러워하지 마, 부러우면 지는 거야...) 



커피 한 잔과 이야기 꽃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어느덧 오랜 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부부의 베이비시터가 이쪽으로 온다기에 인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 또래의 슬로바키아 대학생이라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쟝카Dzanka. 나와 나이가 같았고, 케잌을 만드는 파티시에였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본인의 두 손으로 직접 만들 때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그 행복한 표정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웃음은 바로 그런 힘이 있었다.  



쟝카랑 투샷.






다음번에 만나면 꼭 수제 마카롱을 대접하겠다는 쟝카의 약속과 함께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마침 유라이가 추천한 베네치아가 떠올랐다. 혼자 가서도 안 되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도 안 되는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 반드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그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 어떤 모습일까, 너무도 궁금해지는 바람에 베네치아행 기차를 검색했다. 



그런데 아뿔싸! 빈에서 베네치아로 곧장 가는 기차를 탔어야 했는데,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허둥지둥 대느라 기차가 어느 플랫폼에 오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덕분에 시간이 지체되어 기차를 놓쳐버린 것이다. 결국 다른 베네치아행 기차를 탔지만 환승을 세 번이나 해야 하는 피곤한 과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결단 내리기를,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기차의 종착역을 가보자고 했다. 전혀 계획에도 없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도시를 탐험해 보자,라는 모험가의 정신으로 무작정 향한 곳은 바로 설산의 낙원과 하이킹의 도시, 인스브루크였다.

 


그토록 아름다운 설산을 두고 등산을 하지 않는 것은 먹기 좋게 구워진 크라상을 디퓨저로만 쓰는 것과 같다! 아직 겨울이 다 오기 전, 옷 갈아입기 직전의 거대하고 다채로운 산을 정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무작정 등산로를 찾아 떠났다. 초라한 표지판 하나가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표지판 너머로 들려오는 거센 물살 소리는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폴대를 두 손에 들고 멋진 선글라스를 쓴 고령의 노인과 등산로 중간에서 마주쳤다. 영어가 유창한 어르신과 영어로 등산로의 상황에 대해 주고받았다. 



그 신발 신고 등산할 작정이에요?
네... 왜요?
저 위는 물살이 세서 더 이상 가기 위험할뿐더러 지금 그 신발로 등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요.



확실히 물살이 거셌다. 걷기만 해도 발이 쉽게 아파오는 싸구려 신발로 더 이상의 등산을 하는 것은 굉장히 무모해 보였지만 들끓는 젊은 피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아가보기로 하고 경치를 즐겼다. 



한 시간 정도 올랐을 까, 적당히 높은 고지에 도착하니 장관이 펼쳐졌다. 강한 햇빛과 어우러진 크고 단단한 바위는 무지갯빛 자태를 뽐내는 듯했다. 



인스브루크 하이킹, 브이. 간식으로 바나나와 참치캔, 귤을 챙겼다.






하이킹의 완상에 빠진 것도 잠시, 이번에는 다음 목적지를 미리 정해놓고 이전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고자 했다. 



구글맵스를 켰다. 인스브루크의 서편에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이 있었다. 숙박비와 물가를 검색해 보니 그야말로 상식에서 벗어난 미친(...) 나라였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스위스 친구가 말하기를, 스위스 사람들은 직장에서 큰돈을 벌기 때문에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단다. 



스위스에 다녀온 조승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본인이 묵은 호텔 주변에는 상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조식을 호텔 내 식당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무역 세금이 붙지 않았을 스위스산 와인 한 잔, 그리고 간단한 샐러드를 하나 시켰더니 80프랑, 우리나라 돈으로 12만 원이 나왔다고 한다(링크, 14:24~). 뷔페를 먹은 것도 아닌데, 이게 말이나 되는 가격인가?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감히 부자들이 살기를 선택하는 도시일만 하다. 작지만 강한 나라, 중립을 지키는 나라, 온 유럽의 지리적 중심지에 위치해 포럼이나 컨퍼런스가 자주 개최되는 나라*, 스위스. 


*참고로 스위스 북부의 한 도시 바젤에는 컨퍼런스나 박람회가 자주 개최되는데, 지리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전용기를 타고 오는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그 말인 즉, 전용기를 가진 부자 정도 되어야 참석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일반인의 상식에서 벗어나있다.



남부에는 이탈리아가 위치해 있었으나 이탈리아는 여행의 막바지에 멋진 마무리로서 장식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한 목적지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뮌헨이었다. 철학자와 이론물리학자의 나라 독일, 옥토버 페스티벌의 나라 독일! 독일 여러 도시를 탐방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 있던 시월의 나였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4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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