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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작 Oct 05. 2021

오픈 10일, 단종할 메뉴가 생겼다





발전의 과정은 계단 모양 같다고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지 모르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벌써 한 계단 올라와 있는 것과 같아서다. 잘 먹고 키가 자라는 것만으로도 발전인 어린 시절에는 계단의 높이가 얕다가, 나이가 들수록 계단 하나의 높이가 높아지는 기분이다.



다음은 60대에 어느새 그 계단 하나를 올라버린 우리 집 파티셰의 일화다.



쿠키샵을 오픈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쿠키 메뉴를 8종으로 확정하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열심히 고민한 레시피를 확정하고 자신감을 갖고 시작한 우리 집 파티셰는 생각보다 이르게 난관에 봉착했다. 8종 밖에 되지 않는 메뉴를 두고 ‘단종’이라는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로 가서 쿠키를 굽는다. 어느 날 느즈막히 가게에 갔더니 한 종류의 쿠키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주인공은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 그중에서도 멋대로 생긴 녀석들이었다. 포장하기 전까지 는 쿠키를 절대로 겹쳐 놓지 않는데 무슨 일일까.




망한쿠키는 냉동실로 좌천된다.





“이거 왜 쌓아 놨어?”

"한 번은 퍼지고 한 번은 너무 구웠어."



그러니까, 쿠키 두 판이 망한 현장이었다.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는 엄마가 초기에 유독 애를 먹은 쿠키다. 반죽이 어찌나 예민하신지 실내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퍼져버리고 오븐에서 조금만 눈돌려도 꺼멓게 태닝한 채로 태어나서 파티셰를 여러 번 당혹시켰다. 다 자식 같이 정성스럽게 구워내는 쿠키지만 말을 안 들으니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는 쌓아 둔 쿠키를 보며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얘는 굽기가 싫다…."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뺄까?”



그렇게 오픈 열흘 만에 단종 이야기가 나왔다. 저녁 먹으면서 단종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그만 만들고 신메뉴 무엇을 추가하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듣고 있던 아빠가 웃었다.



“겨우 열흘 해놓고 단종 얘기하면 어떡해. 없애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메뉴를 쉽게 쉽게 넣었다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빠 말이 맞다. 그렇지만 당시에 엄마는 당장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나도 엄마가 힘들다고 계속 말하니까, 메뉴에서 빼자는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 다음 달에 신메뉴를 내면서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를 단종시키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한 내용을 개인 SNS에 짧게 올렸다.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는 곧 단종합니다~ 균일하게 선사하기 어려워서 단종 결정했어요]

  ㄴ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ㄴ헐 지금 많이 시켜놔야겠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집 쿠키 중 최애가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인 지인들이 이 쿠키를 엄청나게 주문한 것이다. 한 박스를 크랜베리쿠키로만 꽉 채워 주문한 지인도 있었다.



다음 날 주문 건을 확인하며 엄마가 의아해했다.



“아니 이게 왜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지? 진짜 이상하다… 어떡하지 이거 예쁘게 굽기 어려운데….”



왠지 내가 크게 잘못한 것 같아서 당장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며칠 간, 가장 굽기 힘들어하는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를 몇 배로 구워야 했다.



그리고 이 주문 건들이 우리의 계획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뜻밖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내가 다시 단종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새 메뉴 내일부터 올릴 거야. 크랜베리 이제 메뉴에서 내릴까?”

“아니. 그냥 계속 팔자. 나 이제 잘 구워.”



위기의 시간이 연습 시간으로 바것이다. 안정적으로 크랜베리 쿠키를 만족스럽게 구워낸 후기가 조잘조잘 이어졌다.



그 전부터 숱하게 연구하고 구워 본 쿠키인데도, 같은 레시피로 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크랜베리화이트초코쿠키는 여태 건사하다는 소식이다. 가장 스트레스를 주던 쿠키가 가장 뿌듯함을 주는 쿠키로 재탄생했다. 파티셰는 더 이상 해당 쿠키를 구우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엄마는 환갑의 나이에도 나날이 발전하는 손맛으로 쿠키를 구워내고 있다.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으니 내가 올라야 할 계단 단면에도 진하게 겨 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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