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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Feb 01. 2021

마흔을 살고도 새로운.

생일이 별건 아니지만 말이야

 내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이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올해는 아무런 기대감도 없었고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나가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그저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감사하고, 내일도 오늘같이 별일 없기를 기도하면서 잠들곤 하니 말이다. 생일날은 남편이 꼭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전날 미리 생일 축하를 받고선 잠이 들었다. 내 생일 케이크 초를 혼자 다 불어놓고선 "엄마, 생일 축하해요." 하던 아들내미가 생각나 웃음을 참는 밤이다.

 생일날 아침, 날이 밝아오자 부지런히 핸드폰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의 시작,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참 고맙다. 깨톡, 깨톡, 깨톡...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안부인사 겸 생일 축하 메시지도 있었다. 사실 난 sns에 누군가의 생일이 떠도 유심히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미안한 마음에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흔한 살에 접어든 사람 아니랄까 봐 '나 때'와 비교하며 편리해진 세상 덕을 톡톡히 누려본다. '나 때'는 다이어리에 고이 적어둔 친구 생일에 동그라미를 몇 번 쳐두고서 선물을 고르고 그 선물을 포장하며 곰곰 생각한 말들을 또박또박 편지지에 옮겼다. 그 선물은 우체국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 친구에게 보내지긴하지만 그 전까지 '제날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마음을 졸이곤 했다. 친구의 반가운 전화 목소리에 안도를 하며 '뭐 이런 걸 보냈냐'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꾸중을 들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매일 확인하는 sns에서 자동으로 나의 생일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설정을 하지 않으면 알수는 없다. 생일 축하을 어거지로 받는게 아닌가 싶어 작년에는 알림설정을 해지 하기도 했다. 그리 해보니 정말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는 게 아닌가. 솔직한 마음으로 올해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는 선물과 메시지가 실시간 전송이 되는(선물의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 세상에서 생일이라는 핑계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뭐 이런 걸 보내냐'며 틈틈이 메시지를 적어 전송하고 있었다. 

 평온한 생일날이 흘러가고 밤이 되어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웠다. 아이를 재우고 보니 '이제 나의 생일도 다 지나갔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이번 생일만큼은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생일만큼은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내가 원하는 데로 하루를 살고 싶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리자고 다짐했었다. 생일만큼은 나를 위한 날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늦은 밤까지도 나는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기를 내려놓는데 친구에게서 카톡 하나가 온다. 오전에 일찌감치 인사를 나누었던 친구가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친구는 최근에 사랑하는 딸아이를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보내었다. 아픔과 고통 중에서도 나를 챙겨주는 친구가 밤에 전한 말이 내 마음을 세차게 때렸다.

"정말 행복하게 지내. 친구야"


 나는 왜 그 말이 아팠을까? 순간 '오늘 하루 편안했다'며 자신을 위안하던 마음이 걷혀 버렸다. 순간 내 마음 한가운데로 이동한 듯 했다. '행복해라'와 '정말 행복해라'에는 간극이 있었다.

'나는 진짜로 행복한 건가?'

큰 아픔을 겪고 난 그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순간순간 행복한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더라. 미래를 위해, 내일을 위해 다 필요 없어. 그냥 지금 행복해야 해.."

 그 말을 되새김질하며 나는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매일을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말이다. 마흔 해를 살면서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일에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일에 매진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어떤 일들'을 하려고 자신을 갈아 넣고 있엇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행복일까?

 결국은 행복의 정의와 그 크기는 각자 스스로 정할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흔 해를 살고도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진짜 행복한가?

 그 질문 하나가 둥그러니 떠서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혔다. 아무래도 나는 이 질문 하나를 켜 두고 올해를 살아야 할 것 같다. 늘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편안한 하루도 행복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지금 여기에 안주하려는 나와 맞서고 싶어 했다. 

"이게 네가 진짜 행복하기 위해 원하는 일이야? 다시 생각해봐. '진짜'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돼!"


 생일은 매 번 돌아온다. 그러나 마흔한 살의 생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얼마의 생일을 더 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내가 살아온 만큼보다 더 많은 생일을 맞이할 수도 있다. 슬프게도 내가 얼마의 생일을 더 맞이할지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매년, 나의 생일을 맞아 측정하게 될 행복의 크기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새해에는, 아니 오늘부터 나는 진짜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저 편안한 삶이 아니라, 새로움에 벅차오르는 설레임으로 엮어진 진짜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나를 기억해준 나의 친구들, 혹은 자신의 삶에 치여 자신도, 친구도 잊고 지내는 나의 그들도 모두,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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