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플레이리스트는 무엇인가? 나는 일어나서 책상에 앉기 전에 커피를 내리고 따뜻한 차 한잔을 함께 준비해 둔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서 음악부터 고정해둔다. 요즘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데로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들을 바로바로 제공해주니 일일이 찾아 해매지 않아도 된다. 주로 재즈나, 90년대 발라드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하는데 음악이 있음으로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듯하다. 그런데 가끔은 플레이리스트 말고 클래식을 들을 때도 있다.
클래식(영어: classic)은 '고전'이라는 뜻이다. '고전'이란 국어사전을 보면 "옛날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랜 시대를 거쳐 현재도 아직 높이 평가받고 있는 예술작품" 단순히 음악만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며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다. 'class' = 즉 계급, 학급, 등급, 수업시간 등의 뜻, 무리나 같은 승차권으로 동일한 대우를 받는 비행기나 배의 승객을 의미. '클래스'라는 단어도 고대 로마의 '클라시스(classis)'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로마 상류사회의 부유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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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알지는 못지만 그러한 믿음은 있다. 오랫동안 인정받아 온 예술작품은 그만큼의 가치가 꼭 있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일까? 나는 어려서 서점에 가면 고민 고민하다 결국 고전작품을 하나씩 사 오곤 했다. 데미안, 까르마조프의 형제들, 지와 사랑 등은 소녀시절, 내가 사랑했던 작품들이다. 호흡이 긴 작품은 어린 내가 읽기에는 조금 벅찬 구석도 있었지만 왠지 책을 펼쳐 들고 있노라면 내 앞 좁은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문을 열어젖힌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머리가 굵어지고 오히려 나는 고전은 눈길 한번 주지 않게 되었다. 실용서, 자기 계발서, 그리고 심리학 책들이 내 책장을 하나씩 하나씩 채우기 시작하고서부터이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과거 인물들, 과거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내 머릿속에 들어올 만큼 나는 순수하지도, 호기심이 많지도 않았다. 다만 내게 필요한 하나의 기술, 지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 책장에 고이 모셔둔 한 권의 책이 눈에 밟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이다. 언젠가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받은 책 선물이었다. 어는 날 아침, 늘 듣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멈추고 첼로 연주곡을 틀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책을 가지고 와서 낭독하기 시작했다. 눈길 가는 데로 읽다 보니 술술 읽히는 게 아닌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소리 내어 읽으며 내용을 찬찬히 음미해보았다. 이 소설은 한 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여 지상에 떨어져 벌을 받던 중 하느님이 알아오라고 한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는 무엇이 없는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책을 덮고 나서 나에게 질문해보았다.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가?
주인공의 부인은 가난에 찌들어 불평하고 남편이 길가의 행인을 구해오자 그들에게 줄 빵은 없다며 팍팍하게 군다. 사실 나는 그녀의 행동이 퍽이나 이해가 되었다. 내가 그녀라고 해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 것 같다. 하루하루 벌어먹는 삶에 자신은 외투마저 없는데 모처럼 외투를 사러 간 남편이 데리고 온 사람은 내가 먹여줘야 할 거지이고 게다가 남편 입에서 술냄새마저 난다. 아마 내 입에서도 고운 말은 안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이 돌아선다. 한순간의 일이다. 거짓말 같이 사람 마음이 한순간에 변하기도 한다. 나는 그 거짓말 같은 순간을 믿는다. 내 마음도 그랬기 때문이다. 불평과 화가 내 마음을 뒤덮을 때에도 어떤 하나의 깨우침에 의해 내 마음이 잔잔해질 때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하였고 나도 동의한다. 인간에게는 악마와 같이 무시무시한 질투, 화, 폭력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한 순간에 덮을 사랑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부인, 마뜨로냐는 결국 그 사랑의 힘에 자신의 마음을 주기로 했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은 다음 구절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
<미하일라가 떠나기 전에 세묜과 마뜨로냐에게>
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것은 죽어가는 여인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이다. 그녀의 애원 즉,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음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두 딸은 이 들을 자기 자식처럼 키워주고 사랑할 이웃에게 선물처럼 주어진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사는 듯 하지만 사랑으로 살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얼기설기 함께 엮어가는 이 삶에서 작은 일원일 뿐이라는 것.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셈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샘 법은 이 우주의 샘 법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아주 오래전 나처럼 다른 고전들 앞에서 서성이고 싶어졌다. 우리가 알아야 할, 오랫동안 전해진 삶의 지혜들이 어쩌면 조금은 지루한 말로, 조금은 진부한 표현으로, 그 안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같이 추운 날, 클래식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