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어학연수를 못 갔어?

step.6 언어의 자유를 꿈꾸며

by Soybeangirl

11살때, 우리 가족은 기러기 가족이 될 뻔 했다.

부모님 아시는 분이 마침 캐나다에 거주 중이었고, 나와 동생, 그리고 엄마 셋은 캐나다로, 아빠는 한국에 남아있을 계획이었고,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1년간 체류를 위해 비자 절차까지 밟았었다.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건강검진이 필요했고, 건강검진 과정에서 엄마에게 문제가 있어 결국 캐나다 어학연수는 무산되었다.


영어는 처음부터 내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존재였다.

나는 남들보다 유치원에 조금 늦게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5살에서 6살 넘어가는 때였다. 당시에도 유치원에서는 영어를 가르쳤다. 첫 날 배운 영어 단어는 Pink 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충격적인 단어이다.

79B79D5C-A7EF-429D-96DB-013B2C18A981.jpeg 나는 유치원에 첫 등원한 날부터 친구를 울린 고집불통이었다.

나에게는 아직도 핑크가 더 진한 색이다.




이후에는 새로운 언어에 대한 큰 반감 없이 "Hello Zitto"를 외치다가 중학교에 가서 영어에 아예 흥미를 잃고 말았다. 정말 재미없기 짝이 없는 교과서의 지문을 달달 외워야 하는 것도 모자라 대치동, 목동, 어학연수로 쌓아온 실력을 가진 친구들에 계속해서 뒤쳐졌기 때문이다. 수능공부를 하며 남들만큼 공부를 하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가장 스트레스인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어떤 친구는 영어 공부를 아예 하지 않아도 매번 1등급을 척척 받곤 했다. 또 어떤 친구는 유명한 인터넷 강사 강의를 직접 가서 듣는다고 자랑했다.


대학에 가서는 강의의 절반이 영어 수업이었다. 수능 영어로 단련이 되었듯,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대본을 쓰지 않고는 영어 발표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같은 분반에는 중국인도 있었고,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도 있었다. 아직도 너무 부끄러운 것은, 스페인 교환학생과 팀플을 하게되었는데, 학교 앞 문구점에서 마주친 그 친구에게 영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도망치듯 숨었던 것이다.


어학연수라도 보내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 왜 나만 어학연수를 못 갔어?
친구들은 다 어릴 때 몇달 씩은 외국 살다 왔대.




지금 직장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일 자체를 할 수가 없다. 특히 내가 맡은 업무는 그 중에서도 언어가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내 부끄러운 영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주어졌다.

해외 업체들에 메일 답장하기

전화하기

컨퍼런스콜 진행하기

미팅

출장 ...

일단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서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전화영어는 해외 파견근무 중에도 꾸준히 했다. 1년이 좀 넘었을 때쯤, 스스로 놀랄 만큼 영어가 늘어있었다. 파견근무가 끝나고 본 스피킹 시험에서는 최고 레벨(AL)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스스로가 답답한 실력이었다. 그러다가 영어가 가장 많이 늘었다고 느낀 것은 내 부사수격인 사람의 휴직으로 그 업무를 왕창 물려받았을 때였는데, 매일 영어로 전화 받고, 싸우고, 화내고 .... (내가 영어로 전화 받을 때마다 저 멀리서도 내가 통화하는 줄 알겠다고 하더라..영어로 친절히 말하는 것보다 화내는 게 더 많았어서 언성이 커졌나보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도움 없이 부족하더라도 회의를 진행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쯤부터 영어가 그렇게 괴롭지 않았던 것 같다.

6658BC8E-9F14-465E-9A3A-AADA2B08BC26_1_105_c.jpeg





이후 생각해보니 이제것 왜 그리도 영어를 싫어했었나 싶었다. 시험이라는 것이 주는 강제성 때문이었을까? 언어 습득에 한번 속도를 내니 가속도가 붙는 건 어렵지 않은 듯 했다. 어릴적 행한 압도적 독서량 덕분인지 내게 언어적 감각이 없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영어공부의 중요성이 큰 것은 맞지만 보통의 학창시절 영어 공부 방식이 완전히 잘못 된게 아닌가 싶었다.


꾸준히 노출시키다 보면 늘 수 밖에 없는 게 언어다. 물론 강제성이 없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접촉을 계속 하다보니 더 이전과 다르다고 느꼈겠지만... 늘지 않는 다고 느껴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저만큼 계단을 올라왔다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선형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지만 어쩌면 운동이 그렇다고 하듯 내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것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어(영어)는 내가 하고싶은 직업, 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경험 등을 정할 때 나에게 훨씬 더 많은 선택지를 줄 것이다. 단순히 검색만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할테니까..


결국 내가 바라는 독립과 자유한 삶을 찾기 위해서 세계공용어, 영어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친구는 아니라 항상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우리 좀 더 친해지자. 내 삶의 자유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눈동자의 반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