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죰 Jun 22. 2018

스톡홀름의 아침, 맑게 개었습니다

번외)  여유로운 스웨덴 수도의 아침

누군가는 여행할 때 생생한 도시를 느끼고 싶다면 아침 활기가 넘치는 재래시장에 가보라고들 말한다. 꼭 시장이라는 공간보다도 그곳이 어느 도시든, 조용한 한가운데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아침 시간대는 항상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2017년 10월 어느 가을날 스톡홀름의 아침도 그랬다.




전날 새벽 한 시에 잠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7시에 기상한 이유는, 72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기상을 체크해보니,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는단다. 아주 완벽하군. 서둘러 채비하고 새벽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를 나섰다.


중앙역에서 T-bana를 타고 몇 정거장 되지 않는 Östermalmstorg 외스터말름스토리 역으로 향했다. 8시 정도 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역은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역에 도착해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출근하는 직장인은 어느 나라나 조용하고 묵묵히 갈길 찾아가는 모습 때문인지 생김새는 달라도 다들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도 그런 직장인처럼 멍하니 나있는 길을 따라 쭈욱 직진했는데, 눈 앞으로 엄청나게 멋진 항구가 펼쳐졌다.


이제 막 해가 나오기 시작하는 스톡홀름의 풍경. 한적한 가운데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위치:Nybroviken / Raul Wallenberg Torg

서늘하게 얼굴에 솔솔 와 닿는 바람, 따뜻한 아침 햇살, 긴 그늘이 드리워진 나무, 바다 파도가 찰랑찰랑 벽에 닿는 소리.

이 모든 풍경을 ASMR 비디오로 만들고 싶을 만큼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간격과 여유였다.

문득 이런 출근길을 가진 직장인들은 얼마나 좋을까, 같은 직장인이지만 서울 강남역 한가운데로 출근해 회색빛 도시를 보는 나로서는 이곳의 직장인들이 매우 부러웠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 예쁜 풍경에 오염된 눈을 씻고 와 닿는 맑은 바람에 귀를 털어낼 수 있을까 우스꽝 스러운 상상을 했다. 좋은 것만 보고 듣는다는 말이 딱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외스터말름 구간과 박물관섬인 - 솁스홀멘 섬을 연결하는 다리.


외스터말름 구간을 지나 스웨덴 현대 미술관이 있는 자그마한 박물관 섬 '솁스홀먼' (Skeppsholmen)으로 가는 길이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다리 위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다리를 지나자 항구에 정박해있는 흰 배가 나온다. 조깅을 하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풍경을 감상했다. 나 역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어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시마다, 나라마다 물빛이 다르다, 두브로브니크의 바다 빛은 코발트블루, 스위스의 호수는 민트빛 에메랄드, 스톡홀름의 바다색은 내가 다녀본 도시들 중 가장 짙으면서 맑은 남색이었다.

사진을 매만지는 듯한 관광객이 보인다. 아침 해 때문인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햇살이 바다를 비춘다.

솁스홀멘 섬에서 바라보는 스웨덴의 오래된 구시가지 '감라스탄'(Gamla Stan) 지구. 사실 감라스탄 지구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실외로는 이 사진을 찍은 Skeppsholmen, 실내로는 Fotografiska 사진 박물관을 말하고 싶다.

스톡홀름은 여러 개의 섬이 모여 이루어진 도시기 때문에 각 섬 별로 배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감라스탄에 정박해있는 각종 배. 이 배를 타고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가거나 근교 도시로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크루즈 여행이 인기라고 한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산뜻해지는 풍경이다.

다시 외스터말름 역으로 돌아와 아직 채 개장하지 않은 레스토랑과 가게들을 본다. 한산하고 여유롭다. 얼굴에 와 닿는 공기는 시리도록 맑다. 이 날 항상 한국에서 켜던 미세먼지 앱을 켰는데, 온통 초록색으로 "3"이 뜬다. 수도 한가운데서 미세먼지 수치가 한자리 숫자일 수도 있구나,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행 전 마지막으로 체크한 서울의 미세먼지는 120 대 였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T-bana (지하철) 역. 다시 밀레니엄 영화를 볼 일이 생겼는데, 주인공인 리즈베트가 운수 나쁜 날 한 남성에게서 가방을 빼앗기는 신을 찍은 곳이었다.


*Östermalm 외스터말름 : 스웨덴 내 최고의 쇼핑 지구. H&M, 바이레도, 아크네스튜디오, COS 등 각종 브랜드가 즐비하다. 지대 값이 수도 내 비싸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Skeppsholmen 솁스홀멘 : 스톡홀름 Modern Art Museum (뉴욕의 MoMA와 유사)가 있는 아주 작은 섬. 볼 게 왜 미술관 하나뿐이지? 의문을 가지지 말고 감라스탄 지구 풍경을 보고 싶다면 무조건 방문해야 한다!

 *Gamla Stan 감라스탄 : 명실상부 스톡홀름 내 최고 인기 관광지다. 유럽 소도시스러운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고풍스러움이 어우러진 구시가지 지구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베른의 흔한 동네 물가, 튠 호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