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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 | 뉴욕 예술가들 삶의 흔적을 따라

뉴욕 아트 신의 중심지 3곳 - 소호 to 첼시 to 트리베카

by 테오도라

뉴욕 맨해튼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창작의 숨결이 살아 있는 세 개의 대표적인 동네가 있다. 각각의 시대와 흐름 속에서 예술가들의 발걸음을 담은 이 지역들은, 예술이 어떻게 도시와 함께 진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소호(SoHo), 첼시(Chelsea), 그리고 트라이베카(Tribeca)에서의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 본다.




예술가의 영역에서 쇼핑 번화가 된, 소호(SoHo)


'원조' 뉴욕 예술가들의 성지는 소호(SoHo)였다. 1960년대, 뉴욕시가 '로프트 법'을 도입하며, 버려진 공장과 창고들이 빈 건물로 남게 된다. 이 공간들을 저렴한 임대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화가, 조각가, 댄서, 음악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소호에 모여 살며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거리 곳곳에서 즉흥 연주와 전시가 끊이지 않는, 살아 있는 예술 공간이 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는 100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었고, 앤디 워홀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한다.


그러나 곧 글로벌 경제의 성장과 함께 부유한 수집가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소호는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의 흐름을 마주하게 된다. 1990년대부터는 대형 패션, 가구, 디자인 브랜드들이 건물들을 하나둘씩 차지하기 시작했고, 수프림, 바나나 리퍼블릭, 포터리 반과 같은 유명 리테일 브랜드들이 예술 공간을 대체한다.


예술가 바스키아(Basquiat)의 커리어가 시작된 96-100 Prince Street 스튜디오는 현재 Miu Miu의 매장이 되었고, 한때 구겐하임 뮤지엄 소호 지점이 있던 건물에는 프라다가 들어선다. 그렇게 소호는 점점 예술보다는 쇼핑 거리로 변해갔고, 치솟는 임대료 앞에서 많은 예술가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했다.

image.jpg 뉴욕의 소호 거리. (source: timeout.com)




어두컴컴한 창고 거리였던, 첼시(Chelsea)


소호를 떠난 예술가들이 선택한 곳은 첼시였다. 1980년대의 첼시는 공장, 창고, 성매매 업소 등이 줄지어 있던 거친 산업 지대였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Gasoline Alley”라 부르며, 위험하고 우울한 회색빛 동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 실험의 공간으로 보이게 된다.


첼시의 대형 가라지와 창고들은, 소호의 아담한 로프트보다 더 넓고 자유로운 전시 공간을 제공했기에, 더 대담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가능하게 했다. 물론, 저렴한 임대료는 신진 예술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렇게 1990년대 중반부터 갤러리들이 첼시로 이동하며, 'Chelsea Art District'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다.

AD_4nXesDRUbLnWNVdMo03dB-wgcgHzkg1ugvFXpK6xveQsU0WH1EAGrsB20QPNpKyCPCjPb-27Qp_ybfjuR3KJS2Bd7yarNqoZvJckrUyXpuUOKdrW_FL3mKYz0ljrDtH8PxgRrMkZXjQ?key=zPhM-7J5ScPVN_7OmFyKsXnI 1990년대의 첼시 거리 (Courtesy of Paula Cooper Gallery. Photo: Geoffrey Clements)


1997년에서 2007년 사이, 전 세계 억만장자의 수는 네 배 이상 증가했고, 새롭게 부를 축적한 이들은 예술에 점점 더 큰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첼시는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고, 거대한 갤러리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단 10여 년 만에 이 지역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아닌, 세계 현대미술계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원조 예술 거리의 자유로운 감성을 다시 가져온, 트리베카(Tribeca)


그러나 소호와 비슷하게, 자본이 들어온 만큼 첼시 또한 상업화의 임팩트를 피할 수 없었다. 점점 고급 갤러리와 투자 중심의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예술가들은 조금 더 조용하고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또다시 이동하게 된다. 이번에 그들이 선택한 지역은 트리베카였다.


트리베카는 'Triangle Below Canal Street'의 줄임말로, 낡은 붉은 벽돌 건물들과 산업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낮은 층수의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거친 분위기는 마치 60년대의 소호를 떠올리게 한다.


지하공간이 많은 이 동네의 갤러리들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발품을 팔지 않으면 쉽게 지나치기 쉽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겨우 입구가 보이는 곳도 많다.


이런 점들이 바로 트리베카의 매력이다. 트리베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지나치게 힙하거나 배타적인 느낌은 없고, 공간, 예술,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조금은 투박하면서도 자유로운, 도시적인 때가 덜 묻은 멋스러운 동네다. 외적인 화려함은 없지만, 순수하게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들.

57a95b08993ba1760003377cd951722a67-tribeca-map-2.w710.jpg 트리베카의 갤러리들 (source: Vulture)




나는 뉴욕을 여행하며 세 개의 동네를 걸었을 때, 단순히 예쁜 갤러리나 트렌디한 '핫플'을 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공간의 결, 거리의 분위기, 그리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작업실 하나하나가 예술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술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예술가를 움직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시대의 감각과 경제적 흐름과 도시의 역사를 품고 있다.




참고 자료:

https://www.nytimes.com/2023/09/28/t-magazine/chelsea-new-york-art.html#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3/09/28/t-magazine/art/soho-art-galleries.htmlhttps://www.vulture.com/2019/09/tribeca-art-galleries-ny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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