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얼마 전, 미술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났다.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예요? 저는 모네랑 칸딘스키 좋아해요."
이를 듣고, 예전에 음악을 좋아한다는 지인과 나눈 대화도 기억난다.
"아, 나는 쇼팽의 곡을 들으면 눈물이 막 나더라..."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나는 문득 의문이 든다 (원래 의심병이 조금 있는 편이다).
과연 이 사람이 진짜로 예술을 사랑하는 걸까?
진정으로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누군가는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 화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말하며 자신이 미술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막상 전시회에 가보면 유명 작품 몇 점만 보고 금세 전시회장을 떠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작곡가의 이름을 늘어놓지만, 공연장에서는 음악에 몰입하지 않고, 음악에 취한 표정을 찾아볼 볼 수 없던 경우도 있었다!
반면, 나는 예술과 함께 하는 경험을 깊이 사랑하지만, 미술사와 음악사에는 조금 약하다. 음악은 전공 수업을 들으며 공부한 경험이 있지만, 미술은 전문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고, 기억력도 좋지 않다. 따라서 작품을 보고 화가를 알아보거나 미술사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분들을 진심으로 동경한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한다 -- 과연 '진정으로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누구에게나 예술을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이해하고,
또 다른 사람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작품을 실물로 만나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
어떤 이는 작가의 시대적 배경을 공부한 후 작품을 음미하고,
또 다른 이는 지식 없이 그저 '예술이 좋다'는 이유로 미술관에 머문다.
몇 주전 읽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에서 작가 Noah Charney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 감상은 작품과 만나 교감함으로써 내 안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도록 한다는 점이다.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내가 주체가 되어 경험하는 행위이자 사건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믿고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하게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방식에 깊이 공감한다. '나 자신을 믿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걸으며, 왠지 모르게 시선이 꽂히는 작품 앞에서 멈춘다. 유명한 작품이든 무명의 그림이든 상관없다.
그저 편견 없이, 정보 없이, 작품 그 자체를 그저 지켜보고, 또 바라본다.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작품을 창작한 사람의 얼굴과 손끝의 움직임까지 상상하게 된다.
마치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할 때 머릿속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할 때도 마음껏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아무리 기묘한 생각이 떠올라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내 머릿속이기에 자유롭다. 이 경험은 매번 나에게 짜릿한 전율을 준다.
갤러리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나와 작품들 사이의 '스피드 데이팅'이 시작된다.
새로운 작품과 눈을 마주치며 첫인사를 나누고, 머릿속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지며 작품 속에서 답을 찾는다. 색감, 텍스쳐, 테크닉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작품 하나하나의 표정과 성격, 성향, 가치관이 어렴풋이 읽히기 시작한다.
마음에 든 작품이 있으면 조용히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또 다른 작품으로 향하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의식의 흐름에 나 자신의 생각을 맡기면서 작품 하나하를 해석하고, 상상하고, 분석하는 과정.
이것이 내가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