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Aug 31. 2022

Work #6

25년 일한 선배의 긍정 사고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한 회사에서 일한 선배가 계셨습니다. 나 자신보다 나의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한 선배였습니다. 교육시간에 가장 먼저 오는 선배였고, 항상 자료를 수북하게 쌓아두고 계셨습니다. 과정이 끝나면 당신이 지금껏 느낀 바, 경험하며 배운 바를 기꺼이 나누고 가셨습니다. 딸과 동년배인 사원에게도 항상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주셨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선배는 작년에 후배들에게 보낸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25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지혜였습니다. 이 글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첫 문단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니 혹시라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스킵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부분만 참고하셔서 활용하시고 향후 업무에 반영한다면 앞으로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읽는 사람의 부담을 처음부터 가벼이 덜어주는 말이었습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때라, 이 글을 이메일함에서 처음 열었을 때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하늘 같이 높은 선배가 후배들에게 쓴 조언이 담긴 글이었기에 꼭 따라야 하는 바이블 같은 무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문단은 그 무게는 애초에 없었다는듯이, 오히려 내가 당신을 너무 높게 느꼈다는듯이 나의 모든 걱정과 부담을 없애버렸습니다. 다음 이어진 말은 모든 글에 가장 기본이 되는 태도였습니다. 바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사회생활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평상시에도 피해의식을 갖지 말고,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먼저 인사하고 솔선수범하는 습관이 필요하며 조금은 희생도 해가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보는 습관, 그리고 나서 발언하고 대화하고 의사결정한다면 실수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남들이 인정해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 제대로 잘 못 하고 있지만, 가능한 최대한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선배의 후배들은 이 글을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신입으로 들어온 지 고작 반 년도 채 되지 않은 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입사 첫 날, 선배들이 한 조언은 의외로 많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하는 선배를 잘 도와라.” “아침에 일찍 다녀라.” “공부 많이 해라.” 조언이 구체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언에 잘 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러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매번 나의 일과 결정은 선배들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 작아만 보였습니다. 애초에 선배들만큼 해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다 채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매번 실수했고, 선배들은 그저 완벽해보였습니다.


선배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선배를 마주할 때도, 같이 일할 때도, 아침에 일찍 올 때도, 공부할 때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는 겁니다. 혹자는 이 마음가짐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반 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일하면서 실수하고, 속상했던 신입은 ‘그래, 이거다!’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신생아가 태어난 지 반 년도 안 돼서 뛰어다니겠어요? 초심자는 그저 밝은 마음으로 조금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한 걸음 내딛는 겁니다.


왠지 모르게 위로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실수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남들이 인정해 줄 것입니다.” 하는 말은 선배가 매번 스스로 실수로 인해 속상하는 나를 알고 있기에 해줄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그래, 너 잘하고 있어.’ 이런 위로보다는 ‘내가 너 힘든 거 알고 있어.’ 그렇게 가만히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좋은 선배들은 항상 뒤에 덧붙였습니다. 당신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고. 내가 보기에 너무나도 완벽해보이기만 하는 그들도 사실 매일 같이 실수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요.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선배들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일한 분들도 아직 더 성장할 곳이 남아있다니. 그들의 솔직함과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25년 뒤에 나 자신이 그렇게 초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얘기처럼 막연하게만 느껴졌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든든한 마음이 듭니다. 계속 해서 선배들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며, 그 끝없는 여정에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선배들처럼 수십 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마음일 거고,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나도 아직 잘 못하지만, 열심히 해보자 우리’ 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이전 05화 Work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