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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an 16. 2024

Essay #11

인사부문장과 면담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는데요,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가 뭐예요?



면접을 마무리하려던 차에 질문이 들어왔다. 고등학생 때 전교회장을 나가지 못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입후보도 하기 전에 교장 선생님은 러닝메이트와 나를 아침부터 교장실로 부르셨다. 전교회장 일로 성적이 떨어지면 대입 추천을 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상관 없었다. 그거 없어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불안했다. 전교회장 자리에 눈이 멀어 학교장 추천이 가벼워진 것도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웃픈 일이었다. 내가 나간다고 내가 된다는 보장이 있나? 나가도 안 될 수도 있는데, 왜 나가기도 전에 겁을 주시지? 역심에 눈이 멀어버리던 차였다. 해버리고 말자. 


너가 전교회장을 하는 건 다른 친구의 기회를 뺏는 거야.



이 말은 결국 전교회장 출마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교장 선생님이었는지, 담임 선생님이었는지는 기억조차 잘 안 난다. 분명한 건 그 말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공부로 대학을 가고, 전교회장직이 대입에 필요한 친구가 있을텐데 그 친구가 가져가야 마땅하다는 거였다. 이 학교가 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내가 독식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참 속상하게도 그 말에 넘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내게 전교회장직이 학교장 추천보다 간절했듯이, 누군가에게는 대학 입시가 일생일대의 미션으로 중요했다. 그 스트레스가 매순간 나와 내 친구들을 짓눌렀다. 전교석차가 바뀌면, 등급이 바뀌면,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이 달라졌다. 나도 그 마음이었기에, "너가 전교회장을 하지 않아도 학생회로서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하는 말에 수긍했고, 출마를 포기했다.


왜 공부랑 전교회장은 같이 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 답을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한 채 대학에 갔다. 그리고 취업을 했다.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내가 직면한 건 일과 공부였다. 데자뷰를 보는 것처럼 똑같은 고민이 반복됐다. 왜 일이랑 대학원을 같이 하면 안 되는 걸까? 둘 다 집중할 수 없어서? 이 사회가 줄 수 있는 혜택을 내가 독식하면 안 돼서? 내가 하려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해서? 엑셀레이터를 너무 밟으면 결국 얼마 가지 못해 고장나버려서?


그거 세 개(연구, 육아, 일)를 제가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제가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가 커서예요. 저는 행복하고 싶어요. 저는 막 한 가지에 막 성공해서 어디에 오르고 그런다고 제가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저의 일상이 소중하고 제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도 살고 싶어요. 근데 그런 사람은 여러 개를 하는 사람이에요. 책임을 지면서.



내가 존경하는 레퍼런스* 중 한 분은 엄마로서의 삶, 연구자로서의 삶, 그리고 리드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그녀는 그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못 산다고 했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 분명해졌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안될 건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모든 면에 열중하고, 나의 여러 얼굴을 사랑하면 그만이지. 비인도적인 선을 넘지 않는데도 나의 여러 모습을 충분히 아껴주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되레 나 자신에게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주제 넘게 이것저것 하겠다고 설쳐.' 라며 다그치는 건 스스로를 옭아맬 뿐이다. 나는 해낼 수 있고, 해내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시간에 지금 하는 일에 미쳐있자!

*레퍼런스는 내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을 읽고 배운 개념이다. 마치 학계가 여러 주장이 켜켜이 쌓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듯이, 내 삶도 한 가지 영향만을 받지는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A에게는 다정함을, B에게는 의연함을 배운다. 그렇게 쌓인 면면들이 총체적인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꾸준히 발전해가는 학문의 세계처럼!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장 큰 고민은 실패였다.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는데 막상 일을 제대로 못하면 어쩌지? 공부를 제대로 못 따라가면 어떡하지? 퇴사를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저 진학과 이직 합니다." 가 아니라 "저 대학원 갑니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 뭔가 해내기도 전에 설레발 쳤다가 데일까봐. 


퇴사 후 다음 출근과 등교를 기다리는 와중에 인사부문장님과 미팅이 잡혔다. 대화를 기다리며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입사 때 질문이 떠올랐다. 그 질문에 답하고 나오며 괜히 부끄러웠다. 나는 성인인데, 아직도 내가 경험한 최고의 실패는 학창시절에 머물러있다니. 내 실패가 이렇게 작고 어린 시절에 갇혀있다니.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때 데여서 생긴 두려움은 여전했다. 지난 10년을 곱씹어보니 그 질문에 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확실해졌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다능인!)으로 살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부끄러워야 할 시간이 있다면 기꺼이 부끄러워지자. 기꺼이 무서운 일을 마주하자. 해내고 싶은 일은 해낼 거라고 떠들고 다니자. 쪽팔려서라도 그 일을 결국 해낼 수밖에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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