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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Nov 30. 2021

나는 올해 몇 권이나 읽었을까?

벌써 올해가 딱 한 달 남았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에 놀란다. 다시금 달력을 본다. 11이란 숫자가 적힌 페이지 그리고 30에서 끝나는 칸이 선명해진다. 내일이면 달력을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한다. 2021년의 마지막 장으로.


어떤 때는 날짜란 누군가의 얄궂은 장난 같기도 하다. 난 그저 이 자리에 있는데 자꾸 등을 떠밀듯 하루가 지났다고 어느새 한 달, 일 년이 지났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은 거의 다를 것이 없는데 셈을 하여 다른 날처럼 쓰고 말한다. 정말 다른가? 오늘은 어제와 무엇이 다른가? 1월의 ‘나’와 11월의 ‘나’는?


얼마 전 새해 초라고 하여 달리기 출발선에 선 기분으로 들리던 출발신호가 귓가에서 여전히 남아있는데, 곧 결승점이라는 확성기의 외침에 놀란 기분이다.

올 한 해 동안 무얼 했나. 나름의 성과라 여길만한 게 있는지 생각해본다. 뭔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수치나 목록으로 표기되는 손에 잡힐듯한 결과로… 이건 줄곧 점수로 결과를 평가받으며 자란 탓일까. 아니면 자기계발서의 흥행 물결을 오롯이 뒤집어쓴 젊은 시절의 탓일까.


딱히 내세울 곳도 없건만. 연말이 되니 자신을 스스로 점검하며 한해의 결과물을 찾아보게 된다.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올해 나의 목표는 무엇이었나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1월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삼았다.

독서로 정신을 살찌워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기에 딱 적당한 해로 보였다. 외출과 모임과 운동이 사라진듯한 시기. 책이라도 양껏 읽어 지혜와 식견과 내공을 쌓는 한 해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목표인지.

숫자 100을 고른 것부터 일종의 허세였다. 그러면 매월 8-9권, 일주일에 2권 이상을 읽어야 했는데 그런 식으로 따져본 것은 아니었던 거다. 그럴듯한 표어처럼 100권을 정해두고 이제 많이 읽어보자 생각한 거다.


초반엔 마음이 바빴다. 도서관에 가서 대출 권수 채워가며 가득 빌려오고, 베스트셀러 중에서 몇 권 사기도 했다. 책을 들이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느려서 답답했다. 목표는 '읽는' 것이었는데 권수를 채울 생각만 하다가 얼렁뚱땅 훑어보고 덮기도 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지난 내용이 가물거렸다. 어떤 이가 이건 어떤 책이냐 묻는다면 대답해주기 어려웠다. 그저 책을 둘러 보고만 있나 회의가 들었다. 그즈음 서평이란 걸 쓰게 되었다.


봄부터 수강한 글쓰기강좌의 숙제로 시작된 일이었다. 이왕 읽는 책인데 그럴싸한 기록을 남긴다는 게 솔깃했다. 그런데 읽은 것을 '쓰겠다' 라고 생각하니 책을 쉽게 덮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포스트잇과 함께 발췌와 요약정리를 하며 천천히 여러 차례 읽게 되었다. 책의 깊이를 가늠해보았다. 강물을 건너기 위해 발을 천천히 담가서 한발씩 앞으로 내디뎌 나가는 마냥. 물살을 맞으며 온도를 짐작해보고 바닥에 깔린 돌의 감촉을 느낀다. 어떤 강은 종아리까지 다른 강은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다. 물의 색도 냄새도 세기도 모두 다르다. 서툴게 첨벙댄다면 미처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책을 하나의 미술작품처럼 찬찬히 느끼고 음미해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쓰기'라는 필터를 통해 한 권의 책이 나를 통과해서 한 편의 글로 나오는 것은 꽤 멋진 일이었다.


어느 작가는  해에 책을   권만 읽는다고 한다. 좋아하는 철학자의 책으로  하나만 읽는다고 했다. 우리는 배우는 것을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고. 읽는 것을 잠시 멈춰보라고. 그는 내면이 가득 차고 완전한 걸까.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거다.  권의 책을 접하는 것보다 내게 맞는  권을 온전히 읽으며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책의 의미가 빛나는 것임을. 처음엔 이해안되던 말이 서평을 쓰고 나니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난 아직 그 정도의 내공은 없다. 모르는 것투성이에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읽고 싶은 책도 많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는 여전히 그득 차있다.  

적어도 게걸스럽게 책을 탐하는 마음은 얼마쯤 내려놓았다. 여러 권을 욕심부리기 보다 한 권에 깊이 빠져드는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실은 올해 몇 권째 읽고 있는지 세고 있긴 하지만 그저 재미삼아 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1월과 11월의 내 모습이 얼마쯤 달라 보인다. 확실히 시간은 흐르나 보다. 새해 초 세웠던 목표도 다르게 읽어본다.

'책 100권 읽기' 에서 '책 온전히 읽기'로.


*books*이미지출처 :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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