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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Mar 22. 2016

성공과 춘곤증

춘곤증 예찬

 봄. 봄은 사계절 중 가장 은은한 존재감을 내뿜는 계절이다. 겨울과 여름만큼 튀는 특징은 없어도 다른 계절에 못지않게 봄은 사람들을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방송업계에서 봄을 시청률의 겨울이라고 할까. 사람들에게 봄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따뜻함, 꽃(특히 벚꽃)이 만개한 공원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춘곤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춘곤증을 좋아하는 이유는 낮잠의 특성상 오래 자면 머리가 아프고 찝찝함이 남기 마련이지만, 춘곤증에 취한 잠은 편안하고 깊고 자고 나면 실로 개운하다. ‘스르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잠이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책이다. 옛날부터 책에 둘러싸인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전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책 애호가 중증이 된 지금, 행동반경의 자유가 넓어진 대학생이 된 시점에서 서점 방문은 일상이 되었다. 이처럼 서점은 나의 취미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그런데 서점의 배치는 이상하게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신문 서평란에 보면 ‘인문학의 멸종.’, ‘인문학의 쇠퇴’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것 치고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 추천 진열장 등 모든 진열장에는 인문학이 가득 차 있다. 이상한 건 인문학을 좋아하는 내가 서있을 자리도 이 인문학에 밀렸다는 것이다.

 이 요상한 인문학은 바로 ‘자기개발서’다. ‘성공하는 자의 습관.’, ‘나폴레옹 수면법’, ‘7번 독서법’ 등등 어찌보면 섬뜩한 문구로 가득 차 있는 책이 서점을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진열장을 내가 안 들러봤을 리가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그것은 이들의 주적은 ‘잠’, 즉 ‘나태’이고, 이들의 목적은 ‘성공’이란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성공한 삶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이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춘곤증은 언제부터 우리의 적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 일련의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자기개발서는 불쏘시개다.”, “배부른 사람들의 잔소리.”라고 말을 한다. 나는 처음에는 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 다음에는 후자들의 말을 따르다가 최근에는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전자 후자 모두 틀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개발서의 말들은 항상 다 옳다. 성공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를 와보면 우리가 원하는 자기개발은 아니다. 뭔가가 부족하다.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착각과 집착’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사람들은 어쩌면 성공을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문구를 읽고 오해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유를 가진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설문조사 통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성공에 대한 착각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성공을 하면 시간이 많아지므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여유를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등등. 그런데 여유는 춘곤증과 같이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면 우리는 여유에 대한 없던 기준을 설정한 것이 아닐까?

 성공한 사람들이나 아니면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지하철에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책을 읽지 않고 화면만 보고 있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그런 생각은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화면을 보는 내내 지하철에 타면서 읽겠노라고 다짐한 성공을 위한 책이 들어있는 가방을 만지작거린다. 화면을 보는 내내 답답한 것이다. 나도 그랬었지만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여유에 대한 기준은 없기에 그 화면을 보는 것도 여유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하철에서는 맘 편히 화면을 보며 여유를 즐기다 텅 빈 강의실에서 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 여유는 고상한 것이 아니며 더욱이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여유의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한 ‘시간’마저 말이다. 여유는 시간이 없으면 즐길 수 없을까? 곱씹어 생각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여유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여유를 성공과 같이 치부해왔을까? 아마 그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을 것이다. 구구단을 떼자마자 인도의 수학능력을 보며 십구단을 외우라는 문제집 선생님, 어떻게 살기보단 직업의 연봉을 먼저 보여주는 주입식 진로교육, 성공의 왜곡으로 눈을 가리는 여러 매체. 우리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여유를 갈구하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바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돈을 벌지 말고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특정한 성공 기준에 옭아매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기업, 대학교의 서열은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도시 야경이 끝내주는 자기 동네 명소도 모르지 않는가.

 춘곤증에 취해 책을 옆으로 치우고 달콤한 낮잠을 자도, 어제와 다른 살짝 돌아가는 오늘의 어스름한 하교·퇴근길을 가도, 버스·지하철에서의 스마트폰 또는 스쳐가는 바깥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의미 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닌 여유 있는 삶을 산 것이므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일은 그 다음에 기지개를 한 번 펴고 하면 된다. 우리들의 여유를 더 이상 나태로 옭아매지 말기를. 소중한 여유의 시간들을 쓸모없는 자책으로 매도하기엔 우리의 여유가 실로 귀하므로.


                                                                                                                  by 장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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