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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07. 2019

심리와 정치

한병철_심리정치_정치해봄

20190501_정치해봄
심리정치_한병철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_제니홀저”



들어가기

우리는 지난시간 한병철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권력의 생산적인 속성과 자기중심성의 위협을 알아보았다.
오늘 우리는 심리정치를 통해서 신자유주의에서 어떻게 정치는 심리적인 부분까지 파고드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오늘은 심자유주의 통치술, 감성, 빅데이터,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자유, 위기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다. 에피소드란 막간극을 의미한다. 자유의 감정은 일정한 삶의 형태에서 다른 삶의 형태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나타나 이 새로운 삶의 형태 자체가 강제의 형식임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지속될 뿐이다. 그리하여 해방 뒤에 새로운 예속이 온다. 그것이 주체의 운명이다. 주체, 서브젝트는 문자 그대로 예속되어 있는 자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자신이 예속된 존재로서의 서브젝트가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를 기획하고 창조해가는 자유로운 프로젝트라고 믿고 있다. 서브젝트에서 프로젝트로의 이행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한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프로젝트 자체가 강제의 형상, 심지어 더 표과적인 예속화의 형식임이 밝혀진다. 외적강제나 타인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프로젝트로서의 자아는 성과와 최적화의 강요라는 형식으로 작동하는 내적 강제와 자기 강제에 예속된다.

스스로 자유롭다가 여기는 성과주체는 실제로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성과주체는 주인에 묶여 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노예라고 할 수 있다.


1.신자유주의 통치술


자유를 착취한다

자본주의, 신자본주의는 착취하는 영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시스템 내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두가 주인인 동시에 노예다

자기자신의 경영자로서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하는 통치술이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이다.

마르크스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피착취자는 혁명가에서 우울증 환자가 된다’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계급을 모호하게 만들고, 타인이 아닌 자기자신에 의해 착취하도록 만든다. 계급투쟁을 자기 자신과의 내적 투쟁으로 탈바꿈했다. 가시적으로 치열하게 나타나는 갈들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초월성은 종교가 그렇듯 사회의 자유, 협상의 잠재력을 무력화하고, 자본의 욕구를 자신의 욕구로 착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배의 수단은 빚이다.


시민은 소비자, 정치인은 납품없자

기술을 통한 투명사회는 통제, 감시를 강화시킨다.

공동체 형성의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있을 수 없다. 선거는 쇼핑일 분이다.

구경꾼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가 아닌 쇼핑, 고객센터 항의와 다를 바 없는 참여이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감시를 넘어 조종의 단계로 발전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존재를 단순화하고 자유의지를 사실관계로 억눌러 버린다. 이런사회에서는 스마트폰은 성격이다.


권력은 클수록 조용히 작동한다.

예속된 주체들도 자신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스마트한 권력의 속성에 집중해보자.

금지대신 유혹을 사용하는 신자유주의 권력기술의 목표는 인간을 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형외과에서 성형외과로

푸코의 규율권력과 생정치는 표준화, 훈육, 인구의 통계를 활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까지 들어가지 못했고, 빅데이터가 심리지도의 가능성을 열었다. 생권력에서 심리권력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신체적 저항의 극복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과정의 최적화가 요구된다.


자아의 최적화를 신념으로

신자유주의는 종교이다. 자아의 최적화는 실천적 종교행위가 되고 종속되게 만든다.

완벽한 자아의 착취가 가능하게 된다. 최적화라는 목적의식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맹신을 가져오고, 이는 인간적 작용과 영혼을 파괴한다.

규율권력이 부정성을 활용하여 금지하고 없애고 있다면, 신자유주의는 긍정성을 활용하여 좋아요, 욕구, 호감으로 모두 자기 자신의 판옵티콘으로 들어간다.

힐링에서 킬링으로 가고 있고, 정신과에서 성형외과로 바뀌고 있다. 우리 자신을 상품으로 바꾸어 놓고, 우리는 스스로를 상품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가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2.감성


기분의 독재_감성자본주의

기분은 감정과 달리 서사가 없고, 수행성과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기분을 착취한다.

감성은 합리성보다 빠르다. 기분의 독재로 귀결되는 이유이다.

감성마케팅, 감성 경영의 부흥이유를 ‘모티베이션’으로 만든다. 사물의 소비는 한계가 있으나, 기분의 소비는 끝이 없다.


더 이성 노동의 타자가 아닌 놀이

삶과 노동의 세계를 게임화하고, 즉각적인 보상 논리로 모티베이션을 한다.

노동과 자본이 작용하지 않는 내재성의 놀이공간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3.빅데이터


의미와 맥락을 거세한 데이터주의
빅데이터를 토해 시공간으로 사각지대 없는 감시가 가능해진다.
데이터주의는 야만주의이자 허무주의이다. 통계학과 투명성에 대한 맹신이 데이터주의를 만들어 낸다. 그 자체로 하나의 이데올리기라고 할 수 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효율적으로 해설할 뿐, 동기와 주관성, 철학, 심리학은 없고 의미와 매락을 포기한다. 윤리와 진실을 제거하고 자기 통제의 기술만을 부각한다. 자기자신의 파톱티콘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
선거는 쇼핑, 국가는 시장, 시민은 소비자가 된다. 완벽한 기록은 마이크로 타케팅이 가능하도록 하며, 데이터를 동력으로 하는 심리정치가 펼쳐진다.
자유의 종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심리는 합리성을 이용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교하기 때문에 디지털심리정치는 자유의미를 추월한다.
미시행동의 가시화는 빅데이터가 무의식을 조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디지털계급사회는 소비자로서 가치가 없는 사람을 쓰레기로 밀어버리고, 신용대출 등에의 접근성을 차단당한다.
기억은 이야기이고, 디지털 기억은 좀비가 된다. 빅테이터의 전지성이란 절대무지와 다를 바 없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로, 다시 상혹작용이 개념으로 가는데 디지털기억은 개념도 없고 정신도 없고 상관관계들의 연속일 뿐이다.
동일화의 증대 경향은 평균치를 계산할 뿐, 유일한 것, 개연적이지 않은 것은 포괄하지 않고, 이는 결국 미래를 보지 못함을 의미한다.


4.진정한 자유란


그 누구도 혼동되지 않지만 더 이상 이름이 없는 바보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경험을 통한 자유의 실천, 삶의 기술만이 심리정치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백치상태에서만이 내재성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정보와 자본의 빠른 순환을 위해 면역 반응은 강력한 억제대상이 된다.

합의하는 인간들, 놀라운 의견일치의 공동체에 속한 자들의 변방에 있는 절대적 내재성, 삶의 내재성만이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만든 소외관계를 무력화 할 수 있다.

비어있는 만큼 가볍고, 풍부하고, 자유롭다.



김태환, 옮긴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는 자유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욕망자체로 의미가 있는가? 욕망하는 것들을 살 수 있는 것도 자유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의 진정한 개념을 잊어 버릴 것이다.

자유에서 ‘선택’의 문제만 부각되면 기분과 욕구를 중심으로 선택적 자유만 부각된다.


질문, 토론

신자유주의 통칠술의 발현 사례

내가 이미 신자유주의형 인간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어떤 부분일까? 나는 부자유한가?

신자유주의 통치의 주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으로 권력을 가졌는가?

빅데이터, 자본의 무기, 진리와 지식의 무기가 될 수 없을까?

백치로 산다는 것,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백치가 될 수 있는가?


나눔

신자유주의의 발전에 따른 자유의 개념은 분화된 것인가? 진정한 자유가 있을 것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도 발명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통치시대에 누가 주인인가? 한 개인, 한 영웅이나 재벌이 주체인가?


민네이션, 생각

신자유주의의 통칠술은 ‘빚’이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대부분의 빚은 학자금, 내집마련, 자녀학비 등등이다. 복지국가는 이 모든 것들이 세금을 통해서 국가가 담당한다. 우리는 다른 방식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에스핑엔더슨이 주요하게 보았던 ‘탈상품화’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세스와 프로토콜의 관점에서 독재와 강제는 어떻게 우리의 심리에 자유라는 감정을 주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감성은 서사에서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감성은 이미지와 감정을 가지고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기분은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흥분이라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끝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에 따라서 다르게 보기도 하고 다르게 판단하거나, 다르게 경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대안은 감성차원까지 갈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서사가 필요한 것이다.

클로드모네가 데이터주의라면 마네는 내재성을 가진 심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네는 하루종일 비취이는 빛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고 마네는 한자리에 한나절을 앉아 있으면서 그 안에 내재된 것들을 찾을려고 했다.

그래서 한병철은 피로사회, 투명사회, 심리정치에서 보여준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비타악티바가 아니라 ‘비타콘텔플라티바’라는 사색하는 삶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이것은 내재성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자기스스로 주체가 되는 과정일 것이다.

자유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측면에서는 소극적 자유였다. 그래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자유를 추구했다. 자신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났다. 지금 신자유주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이다. 이것을 하려면 기본적인 셋팅이 필요하다. 경쟁 가운데서 이겨야 하고, 자신이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속으로 부터 자유를 벗어나기 위해서 스피노자는 ‘존재하려는 욕구인 코나투스’의 관점에서 예속을 비판했다.


민네이션, 고민

주체는 서브젝트, 사업은 프로젝트, 대상은 오브젝트이다. 문제는 서브젝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순간 바로 프로젝트의 오브젝트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럼 프로젝트를 어쨌든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짤 것인가?

악의 평범성의 측면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루틴한 프로세스에 악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을 시스템에서 어떠헥 찾아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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