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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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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25. 2016

생각과 역사

가만히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

지금까지 생각하기로는

가치의 중립은 없다.


가치 중립적이라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가치로 부터 태어나서

가치가 사라짐으로 형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는 지향점이 있다.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고민해 보면


작은 개념 안에서는 개인 고유의 가치관이 있고

큰 개념에 안에서는 국가의 가치관이 있다.


이것을 개성이라고 하고, 국민성이라고 한다

가치가 습관으로 발전하여 성품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제도적으로 이야기하면

가치관에 따라서 성품이 되어가는 과정은

삶 자체의 발자취에 따라서

유형성숙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의 형체가 개념에 맞게 깊어지면서

완성되어가는 완전체의 과정)


계속 그 길을 가다가 보면

결국은 다른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이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사회를 구성하다가 보면

누군가가 가치를 제시하고 그 가치에 동의하면

그 가치를 소유하고 획득해서

마치 자신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대중매체의 목소리들과 만난다


나는 에드워즈버네이즈와 그의 삼촌

프로이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터라

사람들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읽어내고

심지어 조종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설득이라는 완곡한 표현이 아니라면

상대방을 조종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비전을 이룬다고 말하는


소위

야망이라는 것을 죄악시 한다


 그리 큰 사람 되고 싶다고

그리 멋진 일들을 한다고

다른이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이웃 위에 놓는 방식으로

안정감과 성취감을 찾으려고 할까?


칸트가 시작했을까?

현상이라는 감각과 당위라는 가치의 문제를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누어 버리는 이분법.


그 속에서 가치와 생활을 나누어버리고

목적을 위해서 가치아래 생활을 서열화시키는

마키아벨리가 나오지 않나


이것을 생활세계와 시스템이라는

구분으로 그어놓은

하버마스가 나오지 않나.


나는 그래서 퐁티를 좋아한다.

현상학자 중에서도

몸의 영역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


그래서 몸을 중심으로 관계가 시간이,

물질이, 계절이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한때 모리스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탐독하고 싶었으나 너무 어려워서

아직은

책장에 잠자고 있지만 말이다

...


삶은 그런게 아니다

가치와 생활을 나눈다고 그게

시간의 분침과 초침의 구분처럼

나눠지는게 아니다


시간개념은 주관적이고

그 개념 위에서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존재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부에서도 없고 내부에서도 없다


인간이 다른인간을 규정한다는 것은

레비나스의 관점에서도

무리이고, 프레이리에게 있어서도

욕심이 과한 것이다.


저물어가는 태양의 한계가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내는

어느날의 하늘 아래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걸어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가치들로 나를 평가하고 있을까?


태양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오순절 급한 바람과 같이 세차게 불었지만

현상을 기억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굳이 까르페디움은 아니더라도

지금 주어진 풍부하고 넘쳐 흐르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만족하게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기본적인 관계 위에서


어려운 현상적 위치에 처한 사람들을 본다

지금이 지나가면, 조금은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몰트만이 이야기한 희망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나는 우주를 생각하고

지구에게 속삭인다


가치에 의해서 포획되지 않고

가치를 생산해서 요구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걸음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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