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방

나의 마음의 방에는 어떤 향기가 날까?

by 낭만민네이션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고 있다. 꽤 오랜기간을 여행하는 중이라서 숙소를 여러번 옮기고 있다. 숙소마다 호스트들의 세심한 배려가 넘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좋고 편했다. 1.5평도 안되는 방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더위와 싸우고 축축함과 눅눅함으로 기진맥진했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아득하고 좋은 시간인지. 어떻게 살았나몰라?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도 호우피해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반지하에서 혹은 산동네에서 혹은 쪽방과 고시원에서 나와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마지막으로 온 숙소는 그야말로 호스트의 성격이 드러는 곳이었다. 순백색의 가구와 벽 그리고 화장실까지. 베개며 이불이며 그 어느것하다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 깨끗한 방에 몇시간을 있었더니 나의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게 나의 마음이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놀러왔다가 즐거워하고 또 푹 쉬고 또 자신의 마음도 돌아볼까? 지금까지 내 방문은 꼭 걸어잠그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방이 더럽다고 뭐라고 했던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도 해본다. 그럴 수 있잖아! 그럴수 있지. 너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것처럼 화내고 티격태격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마음이 깨끗한 방과 같다면 어떨까?


그리고 좋은 향기와 좋은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어떨까? 누구를 위한 말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정말 나의 마음은 너무 더러운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일본에 6개월동안 견습선교사로 나갔던 적이 있다. 노숙자를 섬기는 교회였는데 그 교회 3층 게스트하우스에서 후배와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새벽기도도 가고 노숙자에서 성도로 변한 65세가 넘은 할아버지들과 교제도 하고 그랬다. 어느날 아침 목사님이 서둘러서 청소도구를 챙기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가보니 정말 귀신의 집이 따로 없을 만큼 쓰레기와 바퀴벌레로 가득쌓여진 집에 도착했다. 쿠로와 상이라는 분이 교회 헌금을 털어서 도쿄로 도망갔고 이제 그분이 방을 청소하고 다른 분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살다살다 그런 방은 또 처음 본다. 일본식 특유의 도시락 플라스틱과 거기에 남아 있는 찌거기에서 태어난 생명력의 바퀴벌레 그리고 한번도 청소하지 않은 화장실과 낡은 대문에 덕지덕지 붙은 거미줄까지. 이건 한번도 청소도 빗자루질도 하지 않은 방이었다. 이런 방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하루종일 방을 치웠다. 세탁기통에서 썩어버린 이불을 내다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1시간동안 하면서 묵은 때를 벗기고 바퀴벌레들을 모두 집합시켜서 바깥으로 내보냈다. 쓸고 닦고 하루종일 3명이서 달라들어서 정리했더니 그래도 제법 집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느낀 감정이었다. 만약에 사람의 마음이 집이라면 이런 방에서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쓰레기로 가득찬 집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말을 꺼낼 수 있을까?


1달이 지나고 결국 쿠로와상은 돌아왔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찍을 들고 받아주었다. 다시 쿠로와상이 그 집에 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듯이 목사님도 걱정이 되셨던지 나에게 매주 찾아가 청소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있던 5개월동안 매주 찾아가서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 쿠로와상하고 친해졌다. 도시락을 먹고 남긴 일주일 전의 잔반이 여전히 남아서 바퀴벌레를 양산했지만 치우고 치우고 또 치우고 치웠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쿠로와상은 인사하기 바쁜 나를 바깥으로 불러서 몰래 용돈을 주셨다. 돈을 훔쳐도 모자를 판에 나에게 용돈을 챙겨주는 쿠로와상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금은 그 방이 깨끗해진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방을 청소해준 한국의 청년을 통해서 마음이 깨끗해전 것일까? 알수는 없다.



내게 들어온 말들이 내 마음의 방에 가득하고, 내가 해석하지 않은 감정들이 마음의 방에 가득하다. 아직도 한 가득 버려야 하는 쓰레기도 있고, 있으나 마나한 장식품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묵은 숙소와 같이 이제는 정리도 하고 '그럴수 있어' 라면서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기도 하며, 낙서들은 깨끗한 페인트로 칠해야하기도 한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옷장도 비우고, 신발장도 정리해야 한다. 내 마음에 남겨좋은 트라우마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었던 안좋은 말들도 모두 비워내는 시간들이 도래했다. 쿠로와상을 매주 만난 것처럼 매주 내 마음의 방을 청소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글은 마음의 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술할 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과 같이 난리나는 마음이지만 일단은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시작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더 깨끗한 말과 감정으로 자유를 선물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은한 향기로 함께 있기만 해도 기분좋은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을 목표로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꾸정물 가득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시 사람들을 그전에 마치 한번도 안 본것처럼 대하는 놀라운 대반전을 기대한다. 예수님을 만난 후로 내 인생에 바뀐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분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이 만드셨다고 믿는다면 나는 언제든지 다시 창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