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Mar 11. 2024

미래가 없는 정치는 철학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요즘의 정치를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정치가 재미있으면 안되는데 정치가 재미있다는 것은 '사실주의 연극 이론'과 같이. 정말로 사실인 것처럼 앞에서 치고 박고 싸우면서도 결국은 다 같은 편인거 아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텐데. 구경꾼이 된 국민들이 TV광고 같은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웃고 있다. 도망자가 된 시민들은 결국 투표장을 떠나게 된다. 오직 투표로만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시민들에게 정치인은 이리때처럼 다가온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때론 당근으로, 때론 채찍으로 때론 구애로 때론 나쁜남자 스타일로 다가온다.


비굴해지는 사람들은 수상하다. 무엇인가를 구걸하는 이들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 표를 구걸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이 선거만 끝나봐라! 아주 내가 다 지배해버리겠어'라고 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런 이야기를 백날해봐야 무엇이 바뀔까? 이러면서 정치적인 냉소주의로 빠지다 보면 결국 그 정치인들이 우리가 정해야할 것들을 모두 정해버리고서는 당당하게 '당신들을 위해서 내가 권력을 가져야겠소'라며 4년마다 한번 씩 악수를 건낸다. 정말 이것 밖에는 안되는걸까? 정말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까?


어느 맑은 봄날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_영화 달콤한 인생


스승님께 배운 것들을 다시 돌아본다. 밤이 깊어가는데, 고민이 빠진 나는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를 돌려 본다. 세상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정치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마음이 잘못된 것일까? 사람들이 잘못된게 아니라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 자기반성으로 점철된 30대를 지나오면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생겼다. 어떤 삶에도, 어떤 상황에도, 어떤 문제에도 대안은 필요하다는 것을. 정답이 아니여도 해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도 내 주변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예전에는 '문제만 지적하지 말고 답도 내놓아라!'라고 해서 이제는 답까지 준비했더니 아예 '문제를 문제화 시키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한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어느날 원숭이 10마리가 들어 있는 상자 속에 바나나를 매달아서 넣었다. 바나나를 따려고 하는 순간 매우 차가운 물을 끼얹기를 반복했다. 이윽과 몇 번 도전하던 원숭이들은 더 이상 바나나가 내려와도 따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모르는 원숭이 한마디를 상자 속에 넣었다. 그리고 또다시 바나나가 위에서 내려왔다.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하는 새로운 원숭이가 점프를 뛰자 주변에 10마리의 원숭이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새로운 원숭이를 끌어 내렸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이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어느단체나 어느조직이나 이미 '방안에 든 코끼리'를 끌어내려고 하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막아서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쫓아내는 형국말이다. 우리 정치판이 그렇다. 누구나 새로운 대안이나 기존의 대안 중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오면 일단 그 사람부터 쫓아내고 본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인, 새로운 대안이 나와도 실현되지 못하고 미래라는 무덤에 덮어놓고 과거라는 비석을 세운다. 이래서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점점 빈부격차는 커져가서 청년실업이 50만을 넘고 우울증에 걸린 시민들이 바깥으로 나오기를 거절하며, 좀 있다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과 비교한 값으로 받은 좋아요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언제 바꿀 수 있을까? 누가 바꿀 수 있을까?


그래도 정치학을 전공하고 정치외교와 정책학까지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누군가 철학을 가지려면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뚜렷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전'이 없으면 생각이 깊어질 수 없고 언어가 날카로울 수 없다. 반대로 미래가 뚜렷하게 그려지면 그려질 수록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그것을 이루어가기 위한 방법이 더 세련될 수 밖에 없다. 정치에 철학이 없다는 것은 결국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챙기면서 사실주의 연극처럼 마치 미래를 그리는 듯 이끌어가려고 하지만 사실 따라가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비전이 없는 정치인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이라고 해야 한다. 정치꾼들을 현란한 혀 놀림에 얼마나 많이 당해 왔던가?


대학원에서 배웠던 미래를 다시 생각한다.


단순히 북유럽식의 얌전한 사람들은 오손도손 즐거운 미래가 아니라, 역동적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은 정치의 미래를 다시 복기해본다. 정치의 비전이 있을려면 먼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제도들끼리 연동되면서 어떻게 새로운 상황과 문제를 해결해 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 '제도적 상보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제도, 경제제도, 복지제도가 서로 연동되어서 하나의 제도가 바뀌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동 되어 있는 다른 제도들도 영향을 받아야 바뀌게 된다. 유기체적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제도적 상보성이 살아 있는 정치를 말한다. '복지국가'는 단순하게 예산을 늘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의 참여성과 민주성이 경제제도의 하구조를 바꾸면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정치제도는 선거제도에서부터 정당제도 그리고 권력구조까지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제도가 제대로 안착되고 운영되면 시민들의 참여가 자연적으로 제도들을 움직이는 큰 힘이 된다. 선거제도에서 이미 막혀버린 참여의 정치는 4년마다 한번씩 번쩍거리다가 끝나 버린다. 그 사이에는 '귀족정'과 같이 국회의원들의 통치가 시작된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사표가 많은 선거제도 유효한 힘을 내는 정당제도, 문제가 만흔 대통령제도를 바꿀려고 하지 않는다. 4년에 한 번씩 시민들에게 절하는 척하면서 구걸하여 얻어낸 표로 성을 쌓아서 성주가 된다. 그렇지 않고 싶다고 기사처럼 달려들어간 정치인들이 여러번 옷을 갈아 입는 것을 본다.


정치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가장 '최적'이면서도 '옳은' 방향을 찾기 시작하면 그에 맞는 경제제도를 찾게 되어 있다. 지금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모든 것들이 자본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원래는 아니여야 한다.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정치제도가 일단 정렬이 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서 경제제도의 하부 구조들이 바뀌어야 한다. 금융체게, 기업지배구조, 훈련체계, 노사관계, 상품생산체계 등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매우 많다. 그렇지만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상호보완되는 과정에서는 매번 외부의 변화되는 상황에 맞게 국내정치경제가 서로 합을 맞추어서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비로소 복지제도의 문이 열린다.


우리 나라는 '잔여주의'라고 할 수 있는 돈이 남으면 복지하는 나라에 속한다. 그러니 무슨 일만 있으면 복지예산을 깎아 버리기 일쑤다. 그럼 어떻게 될까? 그 동안 복지제도의 혜택으로 일상을 지탱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삶이 모두 무너져 내려 버린다. 이 때 등장하는 '게을러서'라는 논리를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할까? 자신이 얻은 이익을 항상 스스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복지제도는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이전에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복지제도와 연동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들의 참여가 담보된 의견들은 국회를 통해서 법안이 되어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비례성을 담보한 만큼 만들어진 정당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존재의미를 증명하게 된다.


그러니 이러한 과정에서 바뀌어야 할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이다. 지금처럼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능력해도, 부패해도 5년동안 버틸 수 있는 제도는 안된다.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4년도 아닌 5년은 너무 길다. 연임제로 4년씩 한다고 해도 답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의원내각제로 바뀐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전에 선거제도와 정당제도가 바뀌어야만 의원내각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시민들을 서로 싸움시키지 않으면서도 서로 합의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가는 '한국형 사회적합의주의'가 절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말은 좋은데 그게 우리 나라에서 가능해?'라고 하거나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라고 말한다. 해보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실망스런 마음을 갖기도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해보고 맞게 바꾸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상보성이 유기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면서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가는 과정들을 보게 된다면 역사는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가능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전자정부'를 매개해서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을 넘어서 거버넌스를 만들고 반영되어서 제도를 바꾸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사실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대안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과학사회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전자정부와 시민참여를 연결해서 정치제도와 경제제도, 복지제도가 하나로 만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디지털트윈으로 가상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현실에서는 리스크가 제외된 최적의 대안만 실현해볼 수 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갑짜기 연민에 휩쌓이면서 자기위안은 하던 마음에 태양이 떠오른다. 아직 포기하기에 이르다는 생각도 해보고, 이 시대에 여기에 태어난 이유를 생각해보고 다시 일어설 마음도 가져본다. 지금 정치인들의 행태나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한탄하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더 세세하게 그려보가 그것을 이루어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게 맞겠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고민했지만 앞으로 현실로 바꾸기 위한 더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매번 이런이야기를 하면 '이상주의'라고 놀려대던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라는 말을 듣겠지. 그러나 그 말을 들으려고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니깐.


최근 스승님께서 정리해달라고 해서 책을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가장 신뢰하는 동생이 정리해준 내용을 표로 앉히기도 하고 이미지와 연결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대안은 있다. 방법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 그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기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혀만 끌끌차기 전에 더욱 현실적으로 준비해보자. 이렇게 월요일을 시작한다. 아직도 먼 길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 준비하고 해보고 바꿔보고 도전해보고 안되면 또 해보고 될때까지 해보자. 정치에 철학이 없는 것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고 미래가 확고해지면 철학은 더욱 세련되진다. 한풀이로 시작했다고 용기를 찾고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대중 대통령 효창공원 연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