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대화하는 3 가지 방법
다소 논쟁적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은 가장 쉬운 일이다
어느 선교단체에서는 아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으로 가르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고 오해받을만 하다
자연스러운 생각과 우리의 삶속에서
돌이켜보면 너무 쉬운 것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된다는 것은.
성경에서는 3가지의
대화의 방식이 나온다
케리그마, 디다케, 파라클레오
이것이 대화의 3가지 방식이다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고
나의 마음을 나누면서
자아가 인격으로 형성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느낌이 아니다
진짜로 친구를 만나서 떠드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나누고 고민을 공유한다
그리고 화법도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쉽게 오류에 빠지고
다른이들이 보기에도 불안정하게 되는 것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
#1 케리그마, 선포
케리그마는 보통 선포라고 부르고
계시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케리그마는 선포되는 순간
우리의 자유의지의 응답을 요구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여호와께 돌아오라!"
같은 케리그마를 듣는 순간 우리는
믿을 것인지 말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해야하고 그 결정은 결국
우리의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의지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행동의
실제적인 부분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대부분
케리그마로 진행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하면
케리그마로 대화하는지 알고
불가능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만
케리그마는 정말 10년에 한 두번 정도
하나님께서 정말 다급하실 때
하시는 선포의 일종이다
물론 성경은 많은 부분
케리그마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대부분
대중을 향한 선포의 의미가 강하다
개인적으로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케리그마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는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명령을 하거나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지 않는가?
#2 디다케, 율법
디다케는 율법이라는 뜻으로 흔히
가르치는 말, 설명하는 말로 통한다
성경의 대부분은 디다케로 이루어져
예배와 절기, 역사와 의미를 설명한다
디다케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십계명은 대부분이 케리그마이지만
레위기는 대부분이 디다케이다
디다케는 설명하는 말 혹은
교훈적인 말이기 때문에
경험이나, 깨달음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깐 당연히 디다케는 대화의
어느부분을 감당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디다케는 우리의 지성을 접촉하고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의 비중에서도
그렇게 크지 않다
물론 영적으로 성정하는 시기에는
많은 디다케가 필요하지만.
#3 파라클레오, 일상의 언어
파라클레오는 보통 삶의 언어
혹은 일상의 언어라고 부른다
편하게 "밥 먹었어?"
"오늘은 어디가?"라고 묻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편하게
나누는 대화의 방식이다
예수님의 대화는 대부분 비유와
파라클레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겠구나
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하나님과의 대화는
파라클레오로 진행이 된다
다윗을 보라! 다윗이 토하는 대부분의
열받는 기도는 파라클레오이다
하나님한테 이르는 일이 대부분이고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면서 응답을 구한다
당연히 그래서 파라클레오는
우리의 감정을 접촉한다
그래서 우리는 파라클레오를 통해서
우리의 감정을 쏟아내고 더욱이
하나님의 감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보통 위의
3가지 중에서 파라클레오로 이루어 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정을 들으시고
또한 하나님의 속마음을 알려주신다
그것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행동을 촉구하거나
우리에게 훈계하려는 목적보다는
우리와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대화가 많아질 수록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나
그리고 나에게도 사랑받기 원하시는구나!라고.
이럴 때 정말로 눈물이 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성경 말씀이 계시나 교훈이 아닌
우리를 살리는 말고 우리를 위한 언어임을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의 대부분의 언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주인이 인색할 것 같아서
달란트를 묻어둔 종은 벌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색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무섭다고만 이해한 이에게는
파라클레오의 언어가 들리지 않고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고백은
하나님의 정의와 위대하심이다
틀린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구하지도 않고 자신도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만나는 방식으로 우리는
이웃과 만나기에
하나님의 케리그마에 중독되면
이웃에게도 명령하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며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우리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나도 사랑할 때만 진정한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