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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3. 2024

최근 내 고민은?

한 달 쓰기 챌린지 일곱째 날(2023.12.27의 기록)

#사십춘기, 나를 찾는 매일 글쓰기

#한 달 쓰기 챌린지 

#최근의 고민


 한동안 답이 없는 고민만 하다, 이제는 웬만하면 고민 같은 건 하지 말고 살자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깨끗하게 포기하거나 잊어버리자고 말이다.


 왜 티베트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라고 하지 않았던 가.


 그런데 참 말이 쉽다. 이렇게 그럴싸하게 말하고 있는 나는 자타공인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관심사에 양은냄비같이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내 성격이 걱정이나 고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고민 속에 쏙 빠져들어 계속 고민하다가 또 어느 시점이 지나면 고민의 해결 유무와 상관없이 싹 잊어버린다. 가만 보면 대부분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들이 많아 대충 그렇게 살아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겠거니 넘어가도 될 텐데 막상 또 그건 안 된다. 


 최근 내 고민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중 한시가 급한 것만 적어 본다. 

 

 바로 세탁기 호스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다.

친정에 딱 3박 4일 다녀왔는데 집에 말썽이 생겼다. 세탁기와 온수 수도관을 연결하는 이음새가 얼어서 터져 누수가 일어난 것이다. 어제저녁 집에 도착해서 세탁물을 정리하려고 세탁실 문을 열려고 보는데 상단의 투명창이 마치 습기가 가득한 사우나 창을 보는 듯 김이 서려있었다.


 이건 뭘까?

놀란 마음에 문을 열었더니 세탁실 바닥이 한강이었다. 수도 쪽에서는 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추운 겨울에 우리 집 세탁실은 실제로 사우나를 연상시킬 만큼 후끈했다. 벽이며 천장까지 세탁실을 가득 채운 수증기가 모여 만든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수도꼭지를 잠갔다. 재택근무 중이라며 방에 박혀있는 남편은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기사님 한 분이 오셔서 보시고 세탁기 온수 연결호수 부분이 깨진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단열도 충분히 잘 되고 있는데 왜 깨졌을까 의아해하시며 안 입는 옷 같은 걸로 싸도라고 하셨다. 난 이미 내 경량패딩으로 싸두었었다. 뭘 더 해야 했을까?


 답답함이 엄습했다. 도대체 얼마동안 온수가 이렇게 콸콸 새고 있었을까? 남편과 엊그제 통화했을 때 갑자기 두꺼비집에 내려가서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때였을까? 도대체 이번 달 세대급탕비는 얼마나 나올 것인가?


 집을 비울 땐 혹시 모르니 세탁기 호스를 잠가두거나 틀어 놓더라도 똑똑 떨어지는 정도로 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빈집이 아니었다. 분명 성인 남성이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그는 지금 왼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깁스 중이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조금만 집에 관심을 갖고 유심히 살펴봤더라면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따지고 잘잘못을 가려봤자 싸움만 될 것이다. 그는 결코 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세탁기를 돌리는 사람이 나뿐이니 그런 내가 없는 집은 세탁기 입장에서 빈집일 것이다.


 다음에는 꼭 잠가두고 가야겠다. 세탁실 안에 가득 찬 물을 빼고 혼자 이리저리 세탁기를 돌려가며 호수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바닥을 청소했다.


 갑자기 오늘 점심때까지 함께했던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났다. 한껏 사랑받고 챙김을 받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기차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시고, 트렁크에 싣고 내리며 캐리어가 무겁다고 걱정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도 전화하셔서 허리 다치니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엄마는 예쁜 옷 사 입으라고 몰래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시며 늘 혼자 아등바등 고생하며 사는 것 같은 딸이 안쓰럽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이만하면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해도 아빠, 엄마 눈에는 늘 아깝고 안쓰러운 딸인가 보다.


 나 이렇게 귀한 딸인데 서울 집에 오자마자 신데렐라로 전락했다. 아니, 신데렐라보다 못하다. 걘 앞으로 왕자 만나 꽃길만 걸을 예정이니  말이다. 오히려 나는 부잣집은 아니었어도 네 할 일만 열심히 하라고 힘드니 집안일도, 아르바이트도 하지 말라는 집에서 귀하게 컸다. 그래서 결혼 전에 내 손으로 밥 한 번 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해서는 다 하고 있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이제 웬만한 수리도 남편 거치지 않고 내가 하고 만다.


 내가 결혼할 무렵만 해도 '초등교사가 신붓감 1순위이다' 뭐다 해서 겨우 대기업 회사원(유일하게 소개가 아니라 동호회에서 만났던; 당시 소개는 모두 전문직)이었던 남편과의 결혼이 손해 보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이젠 뭐 연봉은 말할 것도 없고 복지마저 넘사벽에 이르자 바깥일을 하면서도 집안일까지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고 세상에서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 냥 구는 남편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연애할 때는 다 해줄 것처럼 떠받들어주더니. 지난 10여 년간 떨어진 것이 교권추락만이 아님을 실감한다. 


 아~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신파를 찍은 것 같다. 집안일 혼자 다하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는다. 대출 있지만 내 집에서 살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는다. 경제권 남편이 갖고 있기에 난 생활비 타서 쓰지만(사실 제가 좀 경제관념이 없어서 이게 더 편합니다) 내 용돈도 따로 타내서 돈 모아 얼마 전부터 1년에 한 번 이상 피부과 고액 시술도 남편 몰래 한다. 돈 써서 집안일하려면 할 수 있다. 집 안으로 외부사람 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 성향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사람을 써도 남편 몰래 써야 한다는 사실이 더 답답하지만;;; 


 분명 사랑했고 이 사람보다 날 더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마음에 다른 조건 하나 안 따지고 결혼했는데 다음 생이 있다면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고, 애들 다 키우면 남편 어찌 지내든 내 멋대로 살 거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 참 서글프다. 


 세탁기 호스를 교체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남편 디스에 신세타령으로 이어지다니. 암튼 내 고민은 오늘 모 전자 서비스센터에서 호수를 사다 교체하며 1차적으로 끝나고, 다음 달이나 다 다음 달 세대급탕비를 보고 한번 뒷목을 잡고 나서야 말끔히 사라질 예정이다. 


#그래서 고민이 누수로 인한 세대급탕비야?

#아니면 바꿀 수 없는 남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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