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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3. 2024

내가 싫어하는 나

한 달 쓰기 챌린지 열한 번째 날(2023.12.31의 기록)

#사십춘기, 나를 찾는 매일 글쓰기 

#한 달 쓰기 챌린지 

#내가 싫어하는 나


 내가 싫어하는 모습은 바로 우유부단한 내 모습이다. 

 분명 마음속에는 분명한 나만의 필요와 욕구가 있음에도 우선 주저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 생각이 그들에게 충분히 받아들여 질만 한가? 
 내 결정으로 누군가 속상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결국 난 내 생각을 감춘 채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려는 경향이 강해졌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갈등이나 다툼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그런 상황에 놓이거나 만들어지는 것을 피했다. 그래서 끝까지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분위기를 봐서 눈치껏 '좋은 게 좋은 거다'하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부모님마저도 어릴 적 나를 떠올리면 혼날 일이 생기거나 조금만 무섭게 해도 너무 벌벌 떠는 아이라 크게 혼내지도 못하셨다고 하셨을 정도다.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좋지 않은 시험 결과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마침 집에 부모님은 안 계셨다. 시험지를 받는 순간부터 쌓였던 걱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됐다. 

 난 그 시험지를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실망을 드리게 된 것에 대해 죄송함을 담은 편지를 써두고 스스로 벌을 받았다. 집에 있는 '사랑의 매'를 가지고 와서 손바닥도 때려가며 나 홀로 진지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편지 하단에 내가 스스로 벌한 내용을 구구절절하게 적어두었다.  

 

   당시 나름 공부에 소질을 보였던 나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했지만, 또 잘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시험을 못 봤다고 해도 평소보다 1~2개 더 틀렸을 거였다. 그런데도 난 그 시험지를 엄마한테 보여드리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엄마가 평소 시험을 못 봤다고 때리거나 윽박지르셨던 건 아니다. 내 기억에 우리 엄마가 어릴 때 나를 향해 소리치시거나 크게 혼내셨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랑의 매'도 그 당시 유행처럼 대다수의 집에 하나씩은 있었고 우리 집에도 있었지만 그걸 부모님께서 드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들었다고 해도 동생과 다퉜을 때 상징적으로 살짝 한대가 고작이었다. 

 

 그러면 어린 나는 왜 그랬을까?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시험 봤다고  때리거나 혼내지 않으셨다. 다만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들으니 그건 그 순간 엄마가 입을 열었을 때, 혹시라도 자녀인 내게 상처받는 말을 하게 될까 두려우셔서 그랬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린 내게 그건 제일 두렵고 가혹한 벌이었다. 그때 난 인정욕구가 강해 늘 칭찬받고 싶어 했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강해서 늘 어른들의 눈치도 많이보고 잘 보이려고 애썼다. 그런 내게 엄마의 침묵은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사라지진 않을까 하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난 그저 어린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정말 부모는 세상의 전부였다. 물론 내가 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유난스러웠던 것 같긴 하다. 갑자기 이 시점에서 난 늘 부모님께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우리 딸한테 들으란 식으로 말하곤 했지만, 어쩌면 부모님 입장에선 키우기 수월한 아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난 내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내 의견을 강하게 고집하지 않는 착하고 순한 아이로 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내 모습은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건 좋게 보자면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부정적으로 볼라치면 호구에 놓이는 상황이 많았다. 


 특히 고집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 속에 놓이면 더 소심해진다.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스스로에게 가장 소홀하다. 


 지금 내 남편과 아이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대신 추진력 있고 대담하게 자기 할 일들을 잘? 하지만 난 자꾸 그들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갈대 같다. 티브이나 주변을 보면 부인한테 남편들이 꼼짝 못 하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던데, 완전 다른 세상이다. 아주 늑대 소굴에 사는 한 마리 양처럼 살고 있다.  


 뭐 꼭 꽉 잡고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젠 싸울 땐 싸우더라도 내 의견 당당하게 말하고 가끔은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도 부리며 살고 싶다.


 또 혹시 아는가? 갱년기쯤 되면 그동안 눌러만 왔던 내가 자꾸자꾸 커져서 흑화 된 양으로 늑대들을 다 제압할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도 미리미리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겠다. 


#우유부단 정말 싫다고!

#이젠 가끔 센 언니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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