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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앙마 Jan 23. 2024

내가 잘하는 것

한 달 쓰기 챌린지 열두 번째 날(2024.01.01의 기록)

#사십춘기, 나를 찾는 매일 글쓰기 

#한 달 쓰기 챌린지 

#내가 잘하는 것


 "엄마가 잘하는 것은 뭘까?"


 이제 막 잠에서 깬 초3 아들한테 물었다.


 "똥"

 

 참 이 녀석 다운 엉뚱한 대답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난 배변활동이 원활하다. 

 그래서 태어나서 지금껏! 심지어 아이 둘 임신해서 출산을 거쳤을 때를 포함해 단 한 번도 변비에 걸린 적이 없다. 다만 늘 속전속결이라 급똥으로 고생한 적은 좀 있다. 아무튼 난 잘 싼다.


 "너, 뭐야!!"


 "먹는 거!"


 똥이라는 말에 가벼운 등짝스매싱을 날리자 낄낄거리며 말을 덧붙인다. 


 아~~! 이게 사랑의 힘인가? 난 스스로 내가 뭘 잘하지 하며 한참 고민했는데 우리 아들은 날 이렇게 잘 안다♡


 그렇다!  난 잘 먹는다. 

 물론 정말 가리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비계나 곱창류, 닭발 등 대체로 독특하거나 물컹한 식감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외엔 대부분 잘~ 그리고 아주 많이 먹는다.  


 늘 양손에 먹을 걸 쥐고 식탐 부리며 먹는다고 어릴 때부터 집에선 별명이 '돼지'였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먹었다. 사실 난 돼지띠인데 내가 돼지띠라는 사실이 너무 좋다! 얼마나 복스럽고 매력적인 동물인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돼지는 생각보다 머리도 좋고 깔끔한 동물이라고 한다. 

 암튼 이렇게 잘 먹는데도 다행히 효율은 좀 떨어지는 몸이었는지, 아님 워낙 잘 싸서 그랬는지 몸은 돼지와는 정 반대였다. 


 늘 체중미달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배달음식에 도가 텄다. 

 1학년때 4명이서 먹던 치킨 한 마리, 피자 한 판을 3학년땐 2명이서 거뜬히 먹었다. 위는 점점 위대해졌다. 

  대학 때도 늘 야식을 먹어대서 초등 체육수업 실기 볼링 준비로 페트병이 필요했던 친구들이 우리 방에 줄 섰다. 그럼에도 당시 난 키 168에 48킬로! 먹어도 안 찐다는 생각에 오만방자했다. 


 오죽했으면 친구 하나가 

 "넌 그렇게 먹다가 먹은 음식들이 몸속 어딘가에 저장되었다가 갑자기 살로 불쑥불쑥 튀어나올 거다!"


 했는데~~

 

 아~~ 40줄에 들어오며 그대로 내게 이루어졌다.


 지금 아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살 때문에 힘들다. 늙으면 입맛이 없다는데 여전히 잘 먹는 나는 식탐에 있어선 아직 한창인 젊은이다. 


 잘 싸고, 잘 먹고!  잘 자기만 하면 아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잘 살고 있노라 하겠다. 사실 대학시절까진 잠도 잘 잤다. 그랬으니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타지 생활을 그럭저럭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거다. 

 

 중학교시절, 17센티가 한꺼번에 크던 그 시기엔 늘 식욕&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교실이 4층이었음에도 매 쉬는 시간 매점으로 달렸고 '눈만 감으면 잔다'라고 친구들이  '감자'라고 불렀다. 

 당시 실장(지금의 회장)이었는데, 수업 마치고 하는 인사를 졸다가 안 해서 놓쳐고, 수학선생님껜 너 배울 내용 이미 다 안다고 자냐고 따로 불려 가 혼나다 절대 아니라고 대성통곡을 했던 적도 있었다. 당시 학원은커녕 집에서 예습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이미 안다고 잤을 리가. 절대 아니라고 너무 졸려서 그랬다고 말씀드리며 사과드렸는데... 선생님께 졸려서 그랬다고 솔직히 말했던 것이 과연 선생님의 화를 풀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 수업이 졸리다고? 너 더 밉다! 하는 마음이 들진 않으셨을지. 

 암튼 사회선생님께선 꼭 내 자리까지 걸어오시며 발도장을 찍으셨고, 영어선생님은 분필을 날리셨는데 내 짝꿍이 맞았다. <미안해 내 짝꿍!>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쏟아지던 잠은(물론 집에서도 잘 잤다) 내 의지를 넘어선 문제였다. 그러나 당시 선생님들껜   정말 죄송하다. 

 이대로 고등학교를 갔으니 고등시절도 많이 다르진 않았다. 나름 특목고라 시험기간이면 룸메이트들은 새벽까지 공부했는데 난 컨디션 조절이 최고라며 10시에 칼같이 잤다. 그렇게 자는 나를 '사이코'라며 절레절레했던 친구들 얼굴에 미소를 날리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코피 터지도록 공부했어야 했다...


 암튼 이렇게 잘 자던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부터 잘 못 잔다. 자는 중에도 아기 살핀다고 깨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잠귀가 밝아졌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안 자고 버티던 게 잠드는 시간을 늘렸다. 

 쓰다 보니 좀 서글프다. 


 너무 원초적인 얘기만 한 거 같아 좀 부끄럽다. 살짝 추가하자면 연애편지 쓰기와 감정 제대로 잡고 노래 부르기를 잘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쓸 일이 없고 성대결절이라는 직업병을 얻어 소용없게 되었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최고

#갑자기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이젠 좀 더 고차원적인 욕구실현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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