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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지금Minow Jan 03. 2023

같은 회사에서 두 번 퇴사하기

자의적인 퇴사 타의적인 퇴사.


나의 젊은 20대 청춘을 함께 보낸 항공사.



2012년 11월 24살 후반의 나이에

중동의 항공사에 입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사 문턱 앞에서 12번 좌절하고

13번째에 합격한 곳이다.

그땐 사실 24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직장을 찾고

1년 넘게 일했는데

나는 언제 취직을 하나.

늘 조급했다.


숫자를 배우던 과목이어서 그런지

숫자에 집착했다.

그리고 모든 기준들이 숫자였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토익 얼마, 학점 얼마, 자격증 몇 개, 나이는 몇 살

나이 몇에 얼마는 있어야지.

나는 이 숫자와 엮이고 싶지 않은 직업을 원했다.


승무원이 딱이었다.

승객들은 땅에서, 인터넷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비행기에 타면

내가 할 일은, 있는 거 그냥 아낌없이 나누어 드리면 되는 것이다.

이거였다. 내 스타일의 직업.






생각보다 내가 다닌 회사는 보수적이었다.

작은 일에도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 일이 많았고

수 없이 퇴사하고

한 달에 몇 백 명씩 퇴사하는 이 회사

내가 간절히 원해왔던 곳이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나보다 3,4년 먼저 입사한 친한 친구가 알려줬다.

엉킨 실타래가 있다고 치자.

여긴 실타래를 풀지 않다.

엉킨 부분을 잘라내고

엉키지 않은 부분을 붙여 넣는 것이야.

너도 나도 언젠가는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인 걸.


씁쓸했다.

그 대화를 나눈 이후였던 것 같다.

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친구와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원할 때, 사직서 내고 당당하게 떠나자.

타의가 아닌 자의로."




자의적 퇴사 2018년 8월.


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에겐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조 종 사"


입사 후 1년 후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었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돈은 잘 모였다.

오프날 나가서 마시는 술을 줄이고,

레이오버에서 마시는 술도 줄였다.

노는 것보다는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니

돈이 모였다.

집 주고, 전기세 내주고, 물값 내주고

출퇴근 교통편, 유니폼 입는 생활이 모두 도와주었다.



모든 금액을 다 모으지는 못했지만

일단 시작이라도 하자 싶어

2016년 공부를 시작했다.


2018년 초에는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 다시 돌아와서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차별 없고, 평등한 분위기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회사 분위기

오래되지 않은 비행기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사직서를 내고

퇴사 절차를 밟는 순간도 기뻤다.

내가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그들이 언제든지 나에게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영원히 안녕이 아닐 거란 생각에

더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비행에서

커피를 마셔가며 잠과 싸우며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좋았다.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고

비행하고

외국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까지.

그때의 시간을 다시 회상하는 이 순간에도

내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타의적 퇴사 2020년 8월


자의적 퇴사 후 10개월 만에

다시 재입사를 했다.


도대체 왜 돌아왔냐는 질문을

하루에 5번씩 받아왔다.


내가 이루고 싶고

원하는 게 있으니까 온 것이라고.

아무리 그들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브레인워시가 된 사람처럼 쳐다보아도

난 괜찮았다.

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타의적 퇴사의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

6년 가까이 일한 시간이라

회사가 코로나로 흔들릴 때에도

나는 괜찮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 통의 이메일, 한 통의 전화로

내 계약서는 터미네이트 되었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해왔지만

막상 마주치고 보니 슬펐다.


그리고 이 퇴사 후에는 아직 내가 할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그리고 나에게 안부를 묻기 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



말하기 싫었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괜찮은 척

쿨 한 척

나의 타의적 퇴사를 말할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않았나 보다.

인생의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까진 내가 맘먹은 건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가면서

이뤄왔는데,

조급했다.



다시 그곳에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지내는 동안은 마음이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도피기간.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설레지 않았다.





자의적 퇴사와 타의적 퇴사.

단언컨대 전자가 좋다.

준비된 다음의 무언가가 있다면 더.

타의적 퇴사. 기분 나쁘다. 속상하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걸.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 같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이렇게 되어버린 거라면 더더욱.



나도 그랬고, 지금 이 시기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을 것 같다.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한다.

그리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들여다보면 우린 너무나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재능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데

내가 봐주지 못했을 뿐이다.


쉬고 싶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면

혼자 있어도 괜찮다.

우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쓰나미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져

오늘의 글을 쓸 용기도 났다.

잘했다.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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