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적으로 불쾌한 놀람이었다.
필자는 와츠앱의 세 번째, 초기 디자이너로, 그룹채팅, 실시간 위치 공유, 스티커, 종단 간 암호화 보안 기능, 비즈니스 앱과 페이스북 샵 등을 디자인했다. 와츠앱은 2009년 서비스를 시작한, 메세징앱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회사로 2014년 페이스북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월간 이용자 수 30억 명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메시지 앱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미국에 있다 보니 며칠 늦게 받았는데, 도통 본 적 없는 낯선 아이들의 얼굴, 몇 년 전 딱 한번 같이 골프 쳤던 아저씨의 여행 기록, 자주 프로필 사진을 바꾸던 친구의 세월이 묻어나는 모습 등이 내 카카오톡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탭을 옮기니 저화질의 쇼츠가 재생되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한국 피부과 광고까지 떴다. 가족과 친구들의 대화가 있던 나의 공간이 더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로, 남의 것들로, 가득 찬 것이다. 연속적으로 불쾌한 놀람이었다.
아마도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며 방향 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되면서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미 표준 플랫폼이 된 만큼 사용자가 급격히 이탈하지는 않겠지만, 브랜드 충성도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와츠앱은, 메타는,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다른 프로덕트들은 이런 한계 상황에서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메시징 플랫폼은 사용자가 매일, 자주,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다. 특히 친구와 주변인의 사용 여부가 다른 어떤 앱보다 중요하다. 사용자가 자신의 인간관계를 전부 담아두는 만큼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공공재와 같은 기대를 받기도 한다. 사기업임에도 정부 문서나 공공 서비스가 연결돼도 불안해하기보다 오히려 편리하다고 칭찬받는다. 이런 이유로 메시징 플랫폼의 기획과 디자인은 다른 서비스와는 다르게 해야 한다.
- 와츠앱은 미국에서 만든 플랫폼임에도 싱가포르 등지에서 공공 메시지 서비스로 인정받아 각종 민원·정부 서비스와 연결되어 있다. 카카오톡이나 라인도 마찬가지다.
-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쓰는 와츠앱은 매우 보수적으로 기획, 디자인된다. 내부적으로는 매일 테스트 버전이 나오지만, 전 사용자에게 배포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치밀한 테스트와 피드백 반영 과정을 거친다.
- 그래서 사용자는 와츠앱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는 의도된 전략으로, 작고 점진적인 업데이트가 쌓여 수년 뒤에는 큰 변화를 만든다.
- 와츠앱 역시 이미 수년 전 "친구" 탭을 없애고 "Status" 기능으로 대체했다.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와 같은 기능으로, 현재 삭제되는 미디어 스토리를 다루는 플랫폼 중 가장 많은 사용자가 사용하고 있다. 이후 커뮤니티 기능이 추가되면서 내가 팔로우한 외부 계정의 업데이트도 볼 수 있고, 최근에는 이를 "Update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 가장 주목도가 높은 가운데 탭은 여러 번 업데이트가 되었다. "카메라"메뉴가 있기도 했었고 최근에는 "커뮤니티", 대규모 그룹 채팅을 즐겨 쓰는 사용자들을 위한 기능으로 대체했다. 카카오톡의 오픈채팅과 유사하지만, 와츠앱은 철저히 사용자가 선택한 커뮤니티만 보이도록 했다. 이용 시간은 늘리는 방향성은 같지만, 선택권은 사용자에게 준 것이다.
- 와츠앱은 비즈니스 확장성을 메타의 다른 서비스와 연결해 찾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상품을 보고 와츠앱으로 바로 대화해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규모 사업자는 직접, 규모가 큰 사업자는 자동화된 응답으로도 원활히 소통하도록 설계했다. 이 기능은 출시하자마자 비즈니스 사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서로 간 매우 많은 앱 전환율을 만들었다.
- 이처럼 실리콘밸리의 제품들은 끝없이 데이터 분석과 테스트를 반복하며 진화한다. 언뜻 보면 잘된 디자인인가 의심할 수 있는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같은 앱들은 모두 이러한 접근과 분석으로 나온 디자인들이다. 사용자는 눈치 못 채지만, 두 서비스 모두 일 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다.
카카오톡은 이미 성장의 한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더 이상 늘릴 사용자가 없고, 연결할 서비스도 이미 포화 상태다. 어느 정도 변화는 필요했겠지만, 그것이 사용자를 위한 변화가 아닌 회사를 위한 변화로 비쳤다. 만약 처음부터 사용자가 원하는 변화를 목표로 기획하고 디자인했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카카오톡은 가볍게 업데이트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 연계했다면 카카오 생태계 전체를 강화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른다.
AI라는 좋은 화두를 던지고도 아쉬운 기획으로 혹평을 받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