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A씨네 매장 오픈하는 날이야."
아침 겸 점심으로 짜장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아내가 말했다. 아내의 친구 A 씨는 몇 달 전부터 작은 소품샵 운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책길에 들여다보면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벌써 오픈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우리 가게를 처음 시작하던 날이 떠오른다. 벌써 몇 년이 지났다니, 우리 시간은 더 빠르다. 아내의 친구라서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내 걱정이 더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A 씨의 매장에 가서 오픈을 축하해 주기로 했다.
"화분 하나 사서 갈 거야."
외출준비를 하던 아내가 선물을 결정했다. 화분이었다. 나는 손님 몰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떠올렸는데. 오랜 실전 장사의 경험에서 나온 유용한 선물이다.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화분은 클래식이다. 아내는 사회성 있고 감각이 좋다. 나는 아내를 따르리.
우리는 집 근처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식물가게로 갔다. 이번처럼 선물을 사러 자주 가는 곳인데 가게도 식물들도 아담하고 귀엽다. 사장님의 화분 고르는 센스도 마음에 든다. 아내는 오베사라 불리는 선인장을 선택했다. 껍질을 깐 제주 귤처럼 생겼다. 오베사의 꼭대기에 아주 작은 싹이 보였다. 사장님은 저기서 곧 작고 노란 꽃이 필 거라 하셨다. 오늘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한 가지 꿀팁! 새로운 공간을 오픈한 지인에게 화분 선물을 하고 싶다면. 꼭 작은 화분을 선택하자. 큰 화분은 공들여 준비한 인테리어와 부딪히거나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곳은 당신의 공간이 아니며, 관리는 남겨진 자의 몫이다.
"오픈 축하해요!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아내는 A 씨에게 오베사를 건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나도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으로 함께 축하했다. 씩씩한 A 씨의 목소리처럼 밝고 따뜻한 매장이다. 곧 A 씨 앞으로 다가올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의 파노라마들이 그려진다. 긴장을 놓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장사를 시작하며 가장 설레고 행복한 날을 망칠 순 없지. 아내는 친구를 향해 매장 곳곳의 귀여움과 예쁨을 칭찬하며 바구니에 물건을 골라 담았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부부의 호흡을 보여준다. 아내는 자기 취향이 아니거나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함께 담는다.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자신감이 필요할 친구를 위해 마음을 담는다.
"커피 한잔 하러 가자."
우리는 물건을 사서 가게를 나왔다. 평소 입지 않는 다소 정중한 옷이 불편하다. 강풍이 부는 초겨울의 날씨라 오들오들 춥다. 며칠 힘든 일들로 피곤한 몸. 오랜만에 일정이 없는 휴무일. 침대에서 뒹굴며 따뜻하게 푹 쉬어도 좋은 날. 아내는 친구를 향한 15분의 시간을 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A 씨의 가게를 나서는 순간까지 줄곧 밝은 표정과 목소리, 행동으로 친구를 응원했다.
누군가는 '가게 오픈한 친구를 찾아가는 게 무슨 대수냐!', '당연한 거 아냐?', '다들 그렇게 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흥분하지 말고 잠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라.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우리는 그 당연한 일 하나 해내기 힘든 고단한 하루를 살아간다.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해내는 사람.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