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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May 26. 2020

방구석 블루스

 C JAMM은 코카인을 하며 술을 마시고, B.B. King과 Eric Clapton은 컨버터블 카에 수트를 빼입고 올라타있다. 카뮈는 옷깃을 올리고 담배를 멋나게 핀다. 다들, 잘나간다. 약간의 과시는 덤이다.


 나름 화려하게 살기는 하지만 뭐 나는 방구석이다. 모두가 그랬고, 나도 그래왔지만 요즘은 더 방구석이다. 할 일을 하던 안하던 어질러진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이다. 준비를 하는 시기다. 어차피 앞으로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인생인 것은 마찬가지일테지만 방구석과 사무실은 아무래도 다르겠지. 나도 나름 음악을 해 무대에 서는 상상도 하지만 결국 내 인생은 책상이겠지.


 그러고보면 학생 때부터 내 책상은 어지러웠다. 워낙 던져 놓고 정리 안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책들과 잡동사니가 쌓인다. 요즘들어 꽤나 깨끗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정리를 자주하게 되었다는 뜻이지 습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리라해서 말인데, 다들 시험공부 전에 그렇게 책상을 정리한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뭐 사실 벼락치기를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벼락정리는 자주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많은 잡동사니가 널려있다. 내 오른쪽에는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가 있고, 글로리아 네일러의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이 있다. 물론 안읽었다. 그렇게 보면 내 책상은 정리하지 않은, 미뤄둔 것들의 집합소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오늘도 자소서의 마감시간까지 제출을 미룬다.


 그런데 내 인생은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결정이 됐다. 이상한 얘기지만, 공부를 안해도 공부를 잘했다. 그것도, 꽤나 잘했다.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면 음악을 했으려나. 뭐 서울대 출신의 랩퍼들도 많다지만 나는 보신주의자라 일단은 취업이 먼저다. 최민성 이 불효자식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 역시 취업이다. 하지만 전혀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길을 걷는 것도 힘든데, 길을 걷기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 힘들다. Eric Clapton은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 하는데 나는? 놀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타 리프 위에 랩을 하는 것을 상상한다.


 어쨌든 내 미래에 놓인 것이 책상일이고 지금 당장 있는 곳이 방구석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지. 맘을 추스리며 E-Sens의 앨범 '이방인'을 듣고 있다. 이 랩퍼는 감방에서 수십개의 노트에 가사를 빼곡히 써놓고 출소했더라.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회비판을 담은 가사와 탁월한 랩스킬에 감명을 받으며, "진국이네"라고 생각했다. 약간 과장하면 내가 지금 감방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수십개의 자소서를 쓰고 출소한다고 말하긴 싫지만, 어쨌든 벗어나고 싶은 곳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놈의 C JAMM이란 놈이 코카인을 노래할 때마다 얼마나 재밌는지, 통통 튀는 랩을 할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C JAMM의 방구석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아마 그곳은 녹음실이겠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으로 이 탁월한 앨범을 만들었을까? 이런 남과 다름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습했을까. 블루스의 왕 B.B. King이 그 기타 실력을 가지기 위해 그놈의 방구석에서 손가락을 다쳤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책상 정리를 한다. 방구석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정리를 다하면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한다. 미뤄두지 않는다. 자소서를 쓴다. 놀자판을 벌이는 사람들의 Swagger가, 나를 움직인다. 부러워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의 빛나는 성취 뒤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떠올라서이다. 말했듯이 내가 크게 원하는 길은 아니지만, 기타 하나 살 돈은 벌어야하지 않나. '방구석 블루스', 한 곡 연주할 기타는 필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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