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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un 20. 2020

'적과 흑'을 읽고

 세상에는 파멸만을 향해 올곧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은 멀어있으며 그들이 믿는 이상향은 바로 그를 파멸하게 하는 단두대의 칼날이다. 대체로 그들은 능력이 출중하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동력은 그들 자신을 파멸로 이끄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종말로 향하는 그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그들의 뒤틀린 심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 쥘리엥 소렐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 중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대표하는 화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쥘리엥의 뒤틀린 심중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쥘리엥 소렐은 가난한 목수 집 아들이다. 하지만 그의 출세에 대한 야심은 거대하다. 이제 멀어진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세인트 헬레나의 일기를 탐독하며 라틴어 공부와 성서 외우기를 병행하며 사제를 꿈꾼다. 사제는 비천한 신분인 그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한 그에게 기회가 온다. 그가 사는 베리에르의 시장인 드 레날의 자식들을 가르치는 가정 교사로 들어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출세를 지상 최고의 목표로 삼는 쥘리엥은 이것이 그를 한단계 나아가게 하는 길임을 직감한다. 그의 가정 교사 생활은 매끄럽다. 그는 첫 날부터 성경을 라틴어로 줄줄 외어 시장 가족의 호감과 경외를 샀고, 아이들은 그를 잘 따랐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쥘리엥이 드 레날 시장의 부인을 연정의 대상으로 노림으로써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그저 순수할 뿐인 드 레날 부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상대와 전혀 다른, 이글이글 타오르는 정념의 소유자인 쥘리엥을 겪으며 사랑에 빠진다. 그도 부인에게 끌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동력이 조금 다르다. 그는 드 레날 시장 가족의 신분과 그의 신분의 괴리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부자들인 그들을 증오했다. 이러한 삐뚤어진 그의 생각은 드 레날 부인을 도구로서 사용한다. 부인을 유혹하고 자기 손 안에 넣음으로써 시장에 대한 우월감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너가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너의 아내는 나를 사랑해.” 이런 느낌이랄까. 물론 그는 부인에 대한 열등감도 가진다. 부인이 조금만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그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한 그를 보며 애간장을 태우는 부인의 감정 변화는 독자들이 보기에 안쓰럽기 까지 하다. 어쨌든 이러한 부침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녀의 사랑은 점점 심화된다. 아무리 쥘리엥이 야욕을 위해 시작한 사랑이더라 하더라도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꽃 피우는 듯 하다. 하지만 평소에 쥘리엥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하녀의 불만이 불행을 야기한다. 쥘리엥에게 거부 당했던 그녀는 부인과 쥘리엥의 내연을 눈치채고 폭로하게 되고 사면초가에 처한 쥘리엥은 베리에르 시를 떠나게 된다.


 베리에르 시를 떠난 쥘리엥은 원래 꿈꾸던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간다. 워낙 자질이 뛰어난 그는 그 곳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교장인 피라르 사제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게 되고, 그의 추천을 받아 드 라 몰 후작 밑에 비서로 일하게 된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드 레날 시장의 가정교사라고 해봤자 시골의 보잘 것 없는 관리의 하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파리라는 세계 중심의 권력자인 후작의 비서로 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투쟁적인 본성은 어딜 가지 않는다. 이번 그의 목표는 후작의 딸 마틸드이다. 후작의 집 안에서 여러번 마틸드에 쥘리엥은 빠져든다. 이 사랑은 드 레날 부인에 대한 사랑보다 조금은 더 애절하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 마틸드가 자존심 강한 귀족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쥘리엥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쥘리엥이 그녀를 사랑한 이유도 이와 같다. 마틸드가 저항할수록 더 정복하고 싶어지는 것이 쥘리엥의 본성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이번에도 상대 여자를 정복 대상과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본다. 이 사랑이 더 애절한 이유는 그저 마틸드의 신분이 드 레날 부인보다 높기 때문이다. 결국 쥘리엥의 구애는 성공하고 후작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은 결혼 성공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분노와 질투에 눈이 먼 드 레날 부인이 쥘리엥과 그녀의 관계를 폭로하는 편지를 후작에게 보낸다. 결국 그의 작전은 깨졌고 분노한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을 찾아가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를 향한 총알은 빗나가고 쥘리엥은 체포된다. 그에게 사형 선고는 내려지고 그를 구명하려는 마틸드의 필사적인 노력도 거부한다. 그런 그는 감옥에서 드 레날 부인을 향한, 드 레날 부인의 그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고 죄책감에 몸서리 친다. 그는 이제 생에 대한 미련이 없다. 그저 그의 죽음으로 이 비참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다.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시키고 싶어한다. 결국 쥘리엥 소렐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두대에서 일생을 마친다. 드 레날 부인은 며칠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따라간다.


 그는 짧은 생애 내내 불꽃처럼 그의 영혼을 불태웠다. 비록 단두대에서 그의 삶을 마감했지만 그는 그의 목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의 혼은 불꽃처럼 빛났다. 그는 똑똑했다. 순수했다. 평생을 불안에 떨며 그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결한 그의 자존심을 흠집내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저항했다. 그런 그의 천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저 천성이라 부르기에 사회는 너무나 혼탁했고 그는 시대의 사생아였다. 사회에 만연한 물질 지상주의와 귀족의 권태로운 삶은 그를 지치게했다. 설령 그가 그 가치들을 일생 내내 추구했지만 말이다. 그가 한심한 귀족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끝까지 투쟁했다는 데 있다. 그는 당시를 지배했던 물욕을 극복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 신분 상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신분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는 그저 더 나은 어떤, 숭고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말했듯이 그가 살았던 사회는 어지러웠다.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대혁명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사람이 마땅히 추종해야 할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염증을 느꼈다. 그 마땅히 추종해야 할 가치란 명예다. 그리고 그 명예는 귀족의 신분 이전에 명예다. 천한 신분인 그가 이렇게 강력하고 빈틈 없는 자존심을 얻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쥘리엥의 타고난 성격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 자존심을 공격하는 요소들은 사회적 요소들이었다. 자본가와 귀족들은 그를 업신여겼으며, 사회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란 투쟁이었다. 귀족이 되어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높은 신분의 여성을 지배하면서 그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었다. 그는 혁명가였다. 부당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를 극복하려했다. 모두를 적이라고 치부하며 고독한 싸움을 진행했다. 그는 사교계에 실망한다. 그가 추종하던 귀족들은 혁명의 여파에 벌벌 떨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 받는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쥘리엥은 그가 되고싶어하던 귀족들 사이에서도 우월감을 느낀다. 그는 명예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쥘리엥은 불한당처럼 보인다. 여자들을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그를 방해한 드 레날 부인을 총으로 쏴 죽이려고 시도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를 긍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홀로 우뚝 선 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끝까지 그의 목표를 성취하려 노력하고 투쟁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으려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누구도 믿지 않았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독했다. 그의 타고난 감수성은 언제나 그를 벼랑 끝으로 내밀었고 어떠한 타협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숭고한 목표를 위해 언제나 전진했다.


 앞서 쥘리엥을 파멸이 내정된 자라고 묘사했다. 그렇다. 그는 필멸의 존재다. 그것도 매우 빠른 시간 내에 붕괴가 예상되는. 그는 감옥에서 그의 삶을 개탄한다.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삶 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파멸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드디어 남을 의식하고 남을 이기려드는 전투적인 삶의 태도에서 탈피한다. 그는 드 레날 부인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참회한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 해방되었고 그를 이어가기 위해 영원한 안식을 바라는 것이다. 그가 후회하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아름답다. 그는 끝까지 명예를 지키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고립되어 한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가 안온함을 느끼며 이 세상을 등지는 모습은 너무나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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