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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ul 24. 2020

페미니스트 선언

 언제나 내 머리속에는 여성인권에 대한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나름 괜찮게 생각했던 한 남자애는 나에게 “남자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안믿어.” 라고 말했고 여사친들에게 장난식으로 이년아 저년아 거린다. 인권운동의 상징인 전 서울시장은 비서를 성착취하곤 나 몰라라 도망가버렸다. 추앙받는 문단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데이트 폭력의 기억을 전달받았다. 오늘 누군가 나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얼굴이 스쳐 지나 간다. 자신을 가벼이 여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할 얘기를 털어놓은 여자다.  


 그녀가 당한 데이트 폭력도 아닌 폭력들을 듣고는 나는 여자들을 쉽게 이용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멋을 잃지 않게 여자들과 어울렸다고 생각하지만 더이상 자부하지 않는다. 여자를 좋아한다. 아직도 좋아한다. 정말 끔찍히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나다. 그래서 답했다. 노력한다고, 자제한다고. 남자로서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글로나마 선언하려고 한다. 사실, 나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떠벌리는 남자들을 절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페미니스트라고 말을 못해왔고, 글도 쓰지 못했다. 너무 중요한 주제이니 만큼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존재해 운을 떼지 못했다. 나는 지금 당신들에게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설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선언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첫 문단에서 말한 생각은 더이상 생각이 아니라 강박이 되어버렸다. 이 무거운 짐을 덜어 놓으려면 글을 훌륭하게 쓰면 될 것 아닌가. 나는 페미니스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편하게 살아왔다. 남자여서이다. 남자 중에서도 편하고 또 편하게 살아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부모님의 부 덕분이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의 호혜를 누구보다 누리며 살아왔고, 이것에 대한 죄의식까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남자로 태어난 것의 죄의식까지는 어림도 없다. 페미니즘이 대두되기 전, 지금 보다 내가 여성의 고통에 더 무감각할 때도 나는 남자는 원죄의 동물이라고 칭했다. 그렇다. 갈등, 폭력, 전쟁. 다 남자들이 만들어낸다. 반면 여자는? 희생된다. 나는 항상 왜 이 강력한 권력관계를 조물주가 설정해 놓은 것인지 의문이었다. 물리적인 힘 말이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센가. 왜 이런 사단을 만들어 놓는가.


 적어도 100년 전에는 없어졌어야 되는 부조리다. 일방적인 폭력이다. 불평등이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100년 전이라고 존재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정녕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지금 시대에 ‘힘’의 필요성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고 까지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뒤틀려진 파워 밸런스로 발전, 아니 전개해 온 문명사회는 아직까지도 남자에게 특권을 준다. 아니, 무기를 준다. 왜, 남자들은, 속된말로 좆된다는 것을 몰라야 하나. 자신의 행동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몰라야 하나. 박원순의 자살이 다행이다. 여성은 당신을 죽일 수 있다. 이제 아마 당신도 알테니.


 당연히 죽을 짓을 하니까 그렇다. 왜 그 개자식은 내 여자친구에게 새벽에 전화를 해 자신의 후안무치한 행동을 사과하려고 하나? 내가 그 자식을 죽여버릴 수는 없어도 좆되게 할 수 있다. 아니, 그냥 왜 죽을 짓을 하나? 왜 포문은 항상 남자가 열까. 그렇게 맞을 짓을 하고,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덤이다. 왜 여자들이 “남자들이 으레 그렇지.”라고 생각해야, 단념해야하는 것인가? 내가 도매금 당하는 것은 좋다. 내가 죽을 짓을 하진 않았지만, 돌을 맞을 각오는 언제나 되어있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 칭한 그녀만이 아니더라도, 미안하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이런 젠장할! 남자로 태어나 미안하다. 나는 남자이고, 여자를 좋아해 이 미안함을 기꺼이 안겠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조심해라. 나는 미안하기 싫다.

 

 나도 안다. 남자들 힘든 것. 교육과 사회 분위기가 남자들에게 많은 짐을 얹어 놓았다는 것. 하지만 먼저, 그 교육과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지부터 생각하고 공격 대상을 정해라. 나는 군대를 안갔다. 총도 잘 다룰 줄 모른다. 미안한 마음이 늘 한구석에 있다. 하지만 여자 보고 군대를 가라는 식의 불행의 평등화를 외치는 자들의 머리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여성들이 겪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생존의 위험이다. 존엄에 대한 위협이다. 니들은 그것을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장님이 코끼리 만져가며 조금 느끼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지고 있는 것이 코끼리라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은 안다. 니들이 안고, 희롱하고 만지는 여자들은 살아있는 생명체, 그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이다! 그냥 그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면, 입 닥치고 있던가 동조해라. 나는 어제도 온갖 애교를 떨고 감언이설을 하며 여자친구의 기분을 누그러뜨리려 발악했다. 다 이 망할 남자들이 세워둔 카르마 덕분에.  


 이제는 바뀌어야할 때다. 100년이 지난 뒤에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글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박원순 시장님이 그렇게 의미 깊고 싶으면 너희들부터 행동해라.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수양해라. 니들이 하는 생각, 말, 행동들이 순전히 너에게서 우러나온 것인지, 단순히 남근을 가지고 태어나 뇌를 거치지 않고 고환을 거치고 나온 것인지 심사숙고하고 행동해라.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도 그 일환이다.


 나는 안다. 내가 이렇게 떠들어봤자, 남자들은 시큰둥하고 여자들은 나를 믿지 못할 것이란 것을. 그런데 또 모르겠다. 입 닥치며 술 먹고 여자 만나는 일화를 글로 써 올리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블로그를 도배하는 것이 지금 이 시국에 맞는 일인지.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목적이 불분명한  글을 나는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내 블로그를 돌이켜보고, 오늘 누군가의 물음에 답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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