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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새해맞이

by 하루담은

"열 시 반까지 나와."


한 집에 살면서도 어찌 그리 얼굴 마주하기가 힘든지. 방학이라고 각자 방에 들어앉은 채 식사 때가 되어야 비로소 얼굴을 보여주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시간이 되자 어슬렁어슬렁 나온 두 아들과 우리 부부는 담요를 펼치고 규칙을 정했다.


"1등은 5점, 2등은 3점씩. 꼴등이 치킨 내기다!"

첫 번째 게임으로 윷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담요 밖으로 '낙'이 되지 않도록 소심하게 던져 올렸다. 개였다. 윷놀이판에 말을 올리기가 무섭게 다음 사람이 끄집어 내렸다. 개는 왜 그리 많이 나오는 걸까.

빠르게 가기보다 남의 말을 잡는 데 더 혈안이 돼서 잡고 잡히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무슨 수를 쓰는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윷이 자주 나온 남편이 첫 번째 판의 승리자가 되었다. 두 번째는 큰아들, 세 번째는 작은아들이 사이좋게 1등을 나눠 가졌다. 윷놀이 세 판의 패배자는 나였다.

두 번째 게임은 원카드였다. 카드를 나눠 주던 그때 옆에 켜놓은 TV 속 보신각에서 타종하는 모습이 보였다. 웃고 떠드는 동안 새해가 찾아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카드 게임에서는 운이 좋았다. 조커가 연속으로 들어왔고, 내 앞을 가로막는 카드는 없었다. 잇따른 나의 공격 카드로 벌칙 카드를 계속 가져가는 남편을 보는 통쾌함이란!

내리 세 판을 이겨 점수를 많이 얻은 덕분에 내가 결국 역전 우승을 했다. 꼴찌를 한 막내아들이 나중에 치킨을 사기로 했다.

12월 31일 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모여 앉아 게임하면서 새로운 해의 첫날을 맞이했다.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함께 얼굴을 맞대고 마음껏 웃으며 게임하는 것으로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하는 순간이었다.




내게 어렸을 적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항상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따뜻하게 깔아놓은 이불 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민화투를 치면서 깔깔거리던 어느 겨울밤의 기억이다.

'국민학생이니까 구경만 하라' 하다가 나중에 끼워주었을 때 어찌나 신나던지. '딱' 소리가 나게 패를 두드려서 먹고 뒤집었을 때 또 한 번 '딱' 두드리는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장난스레 슬쩍 패를 바꿔 치던 외할머니와 오빠. 그때마다 용케 적발해서 오빠 등짝을 후려치던 언니. '먹으면서 하라'면서 귤이나 고구마를 연신 입에 들이밀던 엄마.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따스해지면서 몽글몽글해진다.



나도 두 아들에게 가족이 함께한 행복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꽤 놀러 다녔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그래서 새해맞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온 가족이 민화투를 쳤던 어느 겨울밤이 내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아들들 가슴에도 담기길 바라면서 말이다.
게임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종종 해왔던 터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어느덧 으레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내겐 오래전 어느 겨울밤의 순간과 우리 가족의 새해맞이가 몇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행복이라는 이름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아들들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길 바란다.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 줄 수 있는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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