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어도 여한 없는 삶

그의 하루

by 하루담은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7시 40분쯤이면 잠에서 깬다. 누룽지를 끓이고 김치 몇 조각과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 오전에는 주로 *튜브 영상을 보며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 1시간 정도 *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3시경이면 책을 읽다가 1시간 정도 꿀낮잠을 잔다.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깨고 나면 노래 부를 시간이다. 우쿠렐레로 장단 맞추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5시가 돼간다. 헬스장에 가서 계단 오르기, 자전거 타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7시.
저녁을 먹고 나서 JLPT 문제집으로 1시간 정도 공부한다. 그 후 낮에 읽다만 책을 이어 읽거나 TV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한다. 11시가 좀 넘으면 *튜브 영어영상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이외에 매 세끼 후와 외국어 공부, 독서 사이사이에 십여분씩 집 뒤 천변을 산책하는 루틴이 끼어있다. 남편이 지난 3년간 심하게 아픈 날만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행한 일과다.

학교처럼 종이 울리지 않았다 뿐이지 남편은 일정한 간격으로 공부와 독서, 취미 시간을 배치하고 행동에 옮겼다. 우쿠렐레를 치며 노래 부르는 남편을 보면 '베짱이가 따로 없네' 하며 괜히 흘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귀찮을 만도 한데 천변 산책을 나가고 매일같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책까지 읽다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남편은 22년에 퇴직해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난 모든 남편들이 퇴직하는 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는 게 체질인가 봐.''
''집에서 이렇게 잘 지내는데 뭐 하러 여행을 가? 가면 고생이지.''

사실 남편의 제2의 삶은 2017년부터 일지 모른다. 그해 4월 그에게 심근경색이 왔다. 중환자실에서의 짧은 하룻밤 동안에도 바로 옆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던 걸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자, 기왕이면 즐겁게 살자.''
''난 내일 죽어도 여한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얼마나 자신의 하루가 만족스러우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남편은 자신이 말한 대로 하기 싫은 일에는 칼같이 ''NO''라 말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이 부러웠다.

*튜브에서 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을 보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라며 ''꿈을 가지고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라''라고들 한다. 하지만 까짓 거, 인생 뭐 있어? 원대한 꿈은 없더라도 하루가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나는 남편을 닮아보기로 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해서 나이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죽음을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된다. 내일 죽어도 여한 없는 삶을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보내야 하는 게 먼저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다.

나는 남편에게 ''나보다 꼭 오래 살아.''하고 말했다. 남편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루를 보낼 테니까. 내가 없어도 지금처럼 룰루랄라 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