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평가(Peer-Review)에 대하여: 논문을 건설적으로 비판하기
대학원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 아직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모든 게 답답하던 석사생일 때에 받은 첫 동료평가 요청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이름이 올라간 논문이라고는 열심히 개발에 참여하던 프로젝트를 주제로 (교수님이) 쓴 논문에 프로젝트 기여도에 따라 제2 저자를 받은 것, 딱 하나였다. 개발했던 알고리즘과 시스템을 설명하는 짧은 파트를 받아서 썼지만, 논문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고, 기술문서를 쓰듯이 썼기에 뭔가 자신 있게 “나도 논문을 썼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낯부끄럽던 시기였다. 하지만 관련 학회에서 아직 척척석사도 되지 못한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어느 날 동료평가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왔다.
제가 감히 다른 사람의 논문을 평가하라고요?
교수님은 어차피 대학원을 다니다 보면 앞으로 많이 하게 될 것이고, 요청받은 논문의 주제도 내 연구주제랑 일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좋은 기회라며 요청을 수락하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셨다. (본인의 전문분야와 크게 벗어났거나 일정이 빠듯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경우에는 동료평가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교수님이나 연구실에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논문을 끄적이는 것도 봤고, 제출하기 전에 종종 교정을 부탁한 적이 있어서 몇 번 읽어보긴 했지만, 그건 그냥 친한 동료가 “내 논문 한번 읽어줄래?”하고 물어보는 정도였고, 정식으로 ‘평가’를 요청받는 것은 그 책임감과 무게가 달랐다.
결국 내 첫 동료평가는 거의 일주일에 걸려서 무려 4장에 달하는 리포트를 썼고 (...), 섹션별로 문법이나 오탈자까지 고쳐주는 ‘첨삭’이 되어버렸다. 이 장문의 리포트를 본 교수님은 정말로 현실 웃음이 터지셨고.. 그래도 열심히 쓴 것이고 크게 엇나가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아니니 이대로 제출하라고 하셨다. 지금 다시 보아도 꽤나 노오오력을 해서 쓴 티가 팍팍 나고, 대놓고 ‘저 동료평가 처음 해봐요..ㅎㅎ’ 라는 느낌이 흘러넘친다. 바로 그 다음 주 미팅에서 교수님이 한 시간이 넘도록 동료평가를 하는 법을 꼼꼼하게 가르쳐주셨고,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교수님께 지도받은 내용과 직접 리뷰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동료평가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들어가기 전에, 내가 리뷰했던 논문들의 거의 8할은 질적 연구였고, 나머지 2할도 통합 연구(mixed-method)였기에 양적 연구를 리뷰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적어 본 것이니, 이 점 참고해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동료평가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자세로 평가를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점은, 누군가는 평가를 받고 누군가는 평가를 하지만, 상하 관계가 아니고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토론이라고 임하는 것이 리뷰(review)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받는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교수님이 제일 처음 말씀해주신 부분은 바로 어떤 논문이든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구를 함에 있어서 ‘완벽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방법론 또한 각각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이것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따라서 어떤 논문을 읽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저명한 연구자가 썼다고 하더라도 비판할 점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논문을 읽고 나서 “너무 잘 써서 비판할 점이 없다”라는 평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내가 주로 평가를 한 학회들에서는 5점 만점으로 리뷰 점수를 주는데, 3점을 기준으로 논문의 게재를 승인할지 거절할지를 정한다. 학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평균적인 평가점수는 보통 2점 초반대인 곳이 많고 (제출한 논문의 절반 이상이 떨어진다), 영향력 있는 학회/학술지일수록 평균 점수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교수님께서는 3점을 주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3점은 “이도 저도 아닌” 점수라서 승인/거절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 큰 기여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셨다. 어느 쪽이든 평가를 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평가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비판적이게, 여러 가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본 후에 (논문에서 주장하는 논점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출판한 논문이 한 편도 없는 석사생이고, 참여했던 프로젝트도 하나밖에 없던 시기였기에 “내가 뭘 알지?”에 대한 압박감이 꽤 컸다고 기억한다. 물론 참가해본 프로젝트가 많을수록, 논문을 출판해본 경험이 많을수록 더 높은 수준에서의 평가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명의 리뷰어(reviewer)가 평가를 할 때는 항상 주니어 레벨의 리뷰어가 한 명 정도는 참가했던 것 같다.
동료평가의 경험을 시켜주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새로운 시각에서의 비판을 열어두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깊이를 떠나서, 다양한 관심사, 연구주제 및 시각에서 조금 더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위한 장치이지 않을까. 물론 경험의 깊이와 통찰력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단순히 점수를 매기려는 의도가 아닌, 제출한 사람에게 건설적이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려는 의도라면, 얼마나 경험이 많고 연구실적이 뛰어난 사람이 평가하는지 보다는, 연구의 본질과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그에 맞는 적절한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경력직 신입사원은 마치 유니콘 같은 존재이기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내 개인적인 상황만 하더라도, 테크 회사에 다니던 직장 경력이 있는 것이 연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같은 분야라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주제나 방법론 또는 연구자 개인의 관점의 차이로 인해서 논문에 쓰여있는 내용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바로 전에서 말했듯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 외에 다른 부분을 더 자세히 보면 된다. 다만 한 가지 구분해야 할 것은, 논문에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 부분은 다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이런 것들이 어떤 것인지는 바로 다음에 이어질 부분에서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 종종 연구를 기반으로 쓰여지는 논문이 아닌 논문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평가하는 논문은 특정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였고, 1. 서론(Introduction) - 2. 선행연구(Background and Related Work) - 3. 연구 방법(Method) - 4. 결과(Findings/Results) - 5. 논의(Discussion) - 6. 결론(Conclusion)의 구조를 따른다고 가정한다.
** 연구가 바탕이 되는 논문이 아니더라도 논점의 흐름을 살펴본다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구의 목적 및 연구의 기여도 (1. 서론 & 6. 결론) > 방법 (2. 선행연구 ~ 3. 연구 방법) > 기여도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4. 결과 + 5. 논의)로 이어지는 논리적인 흐름을 파악하려는 시각으로 논문을 읽는다면 어떤 부분에서 보완할 점이 필요하고, 어떤 부분이 잘 쓰였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논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이 논문은 어떤 연구를 바탕으로 쓰였고, 서술될 연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전달이 되고 있는지를 가장 첫 번째로 봐야 한다. 또한, 1. 서론(Introduction)에서 어떤 문제를 다룰지 충분한 배경 설명이 있었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목적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논문을 읽다 보면, 이어서 다뤄볼 방법론(method, 어째서 이런 방법으로 접근하였는지?) 및 기여(contribution,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체적인 큰 흐름을 읽는 첫 단추를 잘 끼우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논문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6. 결론(Conclusion)의 부분에서도 같은 목적이 이어지는지 한 번 더 확인해볼 만하다.
“사과의 껍질이 얼마나 깨끗한가?”를 연구한 논문이 있다면, 근본적으로 “왜” 사과의 껍질이 깨끗한지 알아보려는 목적에 대한 정의 없이는 이 논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방향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내용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의도가 명확해야 하는 부분은 반드시 직접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사과 껍질의 잔여 농약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제시했다면 전체적인 흐름을 훨씬 더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논문이 기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보통 1. 서론(Introduction)의 끝부분에서 먼저 간략하게 요약이 되어있고, 6. 결론(Conclusion) 부분에서 더 한 번 더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여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4. 결과(Findings/Results)와 5. 논의(Discussion)를 통해서 나타난다.
논문의 기여는 너무 좁아도 안 되고 너무 광범위하게 넓어도 적절하지 않다.
사과의 껍질이 깨끗한지 알아보는 이유가 사과를 먹는 소비자를 위해서인가? 사과를 재배하는 농장 주인을 위해서인가? 사과에 뿌리는 농약을 만드는 화학자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해충에 대한 사과의 특성 또는 사과 껍질의 화학물질 투과성에 대하여 연구하는 식물학자를 위해서인가?
논문에서 저자가 기대하는, 연구 결과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상(audience)이 명확히 정해져야 하며, 이 연구를 통해서 그 대상에게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 봐야 한다.
연구의 범위(context)를 적절하게 정의하기 위해 어떤 2. 선행연구(Background and Related Work)를 제시하였는지가 중요하다. 논문을 쓰는 입장에서도, 어떤 분야의 선행연구를 서술할지는 꽤 전략적으로 짜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적절한 context를 정의해야 “왜 이런 부분은 고려해보지 않았죠?”라는 질문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의 껍질이 얼마나 깨끗한지 연구하기 이전에, “사과 재배의 역사와 농약의 사용”, “농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사과 껍질의 영양성분”, “껍질까지 먹자는 소비자의 트렌드”, “다른 과일의 껍질에서의 잔여 농약 검출 사례” 등등 많은 관련 분야/주제가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를 적절히 골라서 논문에 서술할지, 이러한 많은 선행 연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에서의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선행연구의 한계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논문에 서술되어 있는지 찾아보자.
”껍질째 많이 먹는 포도나 복숭아 껍질에 있는 잔여 농약에 관한 연구는 있었지만 아직 사과껍질에 있는 잔여 농약에 관한 연구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다음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구체적인 접근법은 3. 연구 방법(Method)의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위에서 서술한 목적을 위해서 어떤 연구 방법을 사용하였는지, 왜 이런 방법을 택하였는지, 그리고 선정한 연구 방법을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는지를 살핀다.
사과 껍질이 깨끗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화학적인 실험을 할 수도 있고, 사과 생산협회 또는 과수원 주인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거나, 농약을 만드는 기업을 찾아간다든지, 분석 기관에 여러 가지 사과껍질 샘플을 의뢰할 수도 있고, 사과를 먹고 탈이 난 사례가 있는지 의료 기록을 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옆집 철수가 사과를 먹다가 응급실에 가는 것을 보고 난 후, 의학적인 소견과 함께 철수의 사과를 먹은 경험 및 생활 패턴을 질적 연구 방법으로 분석하는 것도 사과의 껍질이 얼마나 깨끗한가? 에 대한 고찰이 될 수도 있겠다. 이처럼 같은 주제라도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고, 각각 사용되는 연구 방법이 다르며 (설문조사, 통계학적 방법, 인터뷰, 사례 연구 등등) 이러한 결정을 논문에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전달해 주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겠다.
논문에서 핵심이 되는 주장과 그에 대한 기여도 및 영향력에 대한 근거가 타당한지는 4. 결과(Findings/Results)와 5. 논의(Discussion)에서 찾아야 한다.
4. 결과(Findings/Results)에서는, 제시한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해서 얻은 결과가 논리적으로 잘 도출되었는지, 그에 따른 데이터가 적절한지,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석하였는지, 관련이 없는 주장을 끼워 넣지는 않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읽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 논의(Discussion)에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고, 나아가 언급했던 선행연구 또는 새로운 분야와의 접점을 고찰해보고, 제시하는 서술이 들어있다면 매우 큰 가산점을 주어도 좋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평가하려는 논문을 읽고 나서 어떤 부분이 잘 쓰여졌고, 어떤 부분에서 더 보완해야 할지 대략 감이 오는 타이밍이다. 어떤 비판을 할지 미리 요약정리를 해두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비판적인 평가를 어떻게 써야 할까?
나 스스로도 실수를 많이 했던 부분이다. 평가의 초안을 쓸 때, 대부분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적게 되는데, 사실 ‘평가’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은,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며 훈수 같은 지적을 하려는 목적이 절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디까지나 동등한 입장에서 저자와 리뷰어가 서로 배우고, 특히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저자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더 완성도가 높은 논문을 쓸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이때, 저자와 리뷰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서로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의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이러한 지식의 발견으로 인해 이 분야가 더욱 발전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완성도가 높은 부분에서는 적절한 칭찬도 필요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틀렸다’라는 지적보다, 리뷰어 본인은 왜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완하면 좋은지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풀어서 쓰는 것이 좋겠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잘못됐거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관해서 쓸 때 훨씬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명확하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어째서 틀렸는지,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간략한 설명 또는 참고할만한 논문을 추천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한 격려와 감사도 들어간다면 훨씬 정중하고 예의 있는 평가가 될 것 같다.
논문에서 개선할 점을 Major & Minor revision으로 구분해서 정리해주는 것은 논문을 수정하는 저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먼저, Minor revision은 간단한 오탈자 또는 문법의 오류부터 시작해서, 더 나은 단어 선택을 추천해준다든지, 문단이 너무 길거나 복잡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세부항목으로 나누는 것이 좋겠다든지 하는 비교적 쉽게 수정이 되는 부분이다. Minor revision은 논문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논점 자체를 흔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몇 시간 안에도 충분히 수정이 가능하다.
Major revision은 접근이 조금 더 까다롭다. 바로 이전 섹션에서 언급했던 부분 (목적, 영향력, 연구 방법, 기여도 및 근거)에 논리적인 오류가 있는 경우이다. 연구 방법이 맞지 않는다거나, 데이터 분석이 잘못됐다거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거나, 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를 통해 나온 논의 및 결론이 저자가 주장하는 기여도와 일치하지 않을 때 major revision을 제시한다.
주로 이런 오류는, 참가자 한두 명을 더 인터뷰한다거나 결론에서 몇 문장을 다시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조금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만약 저자가 느끼기에 크게 틀린 부분이 없다고 생각되면, 주장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펼치는 흐름에 문제가 있는지, 또는 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건 아닌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논문 게재 과정에서 반증(Rebuttal)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다음 제출한 원고에 저자가 이러한 고민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논문을 평가하는 관점에서 글을 썼지만, 이것은 사실 “어떻게 하면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까?”에 관한 고찰이기도 하다. 평가 과정에서 이런 점을 주로 본다는 것은, 논문을 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종종 저널이나 학회에서는 반증(Rebuttal)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저자의 입장에서 평가를 받은 후, 반증을 쓸 때는 어떤 것이 중요한지 두 가지만 간단히 언급해보려고 한다.
리뷰를 받으면 시간을 들여서 평가해준 리뷰어들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동료평가를 하는 것은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리뷰어 본인이 연구로 바쁜 일정을 쪼개서 열정 페이로 소중한 의견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뷰어가 수정 요청을 한 부분을 최대한 다루는 것이 좋겠으나, 때로는 연구의 한계점을 인정하고 논문에서 이러한 부분을 명확히 언급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서로가 정중하고 예의 바른 문체로 의견을 주고받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꽤나 권위적이고 간결하게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논문을 써본 경험이 아직 많이 없는 분들이 이런 시니컬한 평가 때문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으면 한다. (본인은 처음에 마음에 상처를 조금 입었긴 했다..) 위에서 말했듯, 결국은 연구자로서 더 성장하고, 본인이 열정 있는 분야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소리를 들었다고 받아들이며 멘탈을 잡자.
가끔, 수정 요청을 한 부분이 연구의 범위를 벗어날 때가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각 장애인의 과거 회상에 관한 연구를 논문으로 써서 냈던 당시에, 리뷰어의 수정 요청 중에 “참가자 중에 절반 정도가 60대 이상이었는데, 치매(dementia) 또는 나이가 들며 기억력이 감소하는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나?”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증은 다음과 같이 썼었다.
“말씀하신 대로 치매와 기억에 대한 부분도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큰 분야이고, 나이에 따라 기억력이 감소하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경험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특정 나이대를 중점적으로 보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며, (1) 참가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도 이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따라서 60대 이상 참가자들의 치매 또는 기억력 감소와 관련한 부분은 이번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흥미로운 주제이고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는 영역이므로, (2) 후속 연구에서 참가자들과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꼭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제시해주어서 감사하다.”
반증을 제출한 후, 리뷰어는 매우 타당한 주장이라고 격한 동의를 하며 평가 점수를 올려주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반증을 쓸 때, 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등 논문에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부가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좋다. 특히, (1)처럼 데이터를 근거로 드는 반박, 그리고 (2)와 같이 후속 연구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하는 방법으로 유연하게 넘길 수 있다.
사실 논문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고, 리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은 나보다도 훨씬 경험이 많고 뛰어나신 분들이 적어둔 글이 많다. 그럼에도 이 글을 적은 이유는, 나 스스로 배움의 흐름을 기록해두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혹시라도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그리고 지난날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더 나은 연구자가 되고자 노력을 하시는 분들이 나의 경험에서 아주 작은 공감이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그저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거의 1년 만에 적는 브런치 글이지만, 배움을 틈틈이 기록해두려는 마음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남겨두려는 욕심은 항상 있었다. 앞으로도 여유가 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와 HCI의 다양한 주제들, 그리고 배움의 기쁨을 느꼈던 경험과 순간들에 대해서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적어볼 예정이다.
PS.
여담이지만.. 그 4장에 달하는 어마 무시한 첫 동료평가는 결국 우수 평가로 선정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