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느끼는 거였을까?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그 엄마의 모습에도 아우라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적어도 엄마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의 엄마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왠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자기 관리도 나름 철저하게 하는 그런 멋진 엄마로 보였다. 물론 선입견이 그다음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의 엄마는 자식을 잘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과 주위의 시선 때문에 당당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자존감이 높은 부모의 아이들이 공부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이들도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다 보니 학습적인 성취도가 높다. 실제로 내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자존감이 높은 엄마의 옆에는 늘 모범적인 아이가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까지의 아이 실력은 곧 엄마의 능력이다. 그때는 ‘엄마’라는 존재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 궁금하였다. 아이한테 어떤 식으로 공부를 가르치는지, 그 엄마의 교육 마인드는 무엇인지,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는 어떤지 등등 그 엄마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고 싶어 진다. 솔직히 같은 엄마 입장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당당한 엄마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자식 자랑만 하는 팔불출 엄마는 예외다.
반대로 학교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그러니까 무언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아이 엄마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간혹 볼 수도 있으련만 얼굴 한 번 마주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아이의 공부 능력이 그 엄마의 자존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말썽꾸러기인 데다가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는 아이 엄마의 경우, 늘 표정이 어두웠고,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엄마의 자존감이라니…….
게다가 어떤 엄마들은 부모와 아이를 서로 매치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아이도 당연히 공부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공부를 못 하면 그 아이의 부모도 당연히 뭔가 부족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실제로 많은 엄마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저기 걸어가는 아무개 아빠가 의사라면서?”
“아마 그럴 거예요.”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데?”
“**대학병원에서 근무한다고 들었어요.”
“아무개 엄마도 종종 학교에 아이 데리러 오는 것 같던데……. 매우 품위 있어 보이고, 지적으로 보이더라고. 혹시, 직장 다녀?”
“그렇다고 들었어요. 아마 대학 교수일 거예요. 무슨 대학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하! 그럼, 아무개도 공부 잘하겠네? 엄마, 아빠가 워낙 똑똑해서.”
“반에서 말썽꾸러기인 데다가 공부도 별로라고 하던데요.”
선입견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부모의 직업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능력을 평가해버리는 것. 내가 초등학교 때는 우리 가정을 소개하는 양식이 있었는데, 그 양식에다가 부모 직업은 물론 집에 있는 물건까지 체크해서 제출하였다. 그 물건의 종류에는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책상, 식탁, 냉장고, 세탁기, 전화 등도 있었지만 그 당시 웬만큼 잘 사는 집 아니면 감히 집에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던 피아노, 자가용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양식이었다. 그 당시 나도 피아노, 자가용에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으쓱함이 있긴 했지만 반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아빠 사업이 잠깐 번창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도 ‘서진 피아노’와 ‘포니 2’라는 자가용을 들여놓긴 했지만 이후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다시 되팔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여하튼 교육적인 측면에 있어서 전혀 쓸데없는 양식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후진 문화가 지금도 고스란히 잔재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참 잘했다. 시험 결과 항상 100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인 나도 항상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당당했던 모습 뒤에는 아이를 향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공부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서 매일매일 쓴소리도 많이 해야 했고, 때론 편안함에 아이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나쁜 엄마가 되어야만 했다. 참 힘들었다. 순간순간 아이에게 죄책감도 느껴질 때가 있었고, 아이들을 꾸준히 관리해 줘야 하는 압박감 그리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길을 인도해야 할지 난 늘 숨이 가빴다.
사실 초등학생 때까지 바로잡아 준 아이의 공부 습관은 중학생이 되면서 철저하게 망가져버린다. 다만 엄마인 내가 그동안 아이한테 최선을 다했던 노력은 아마도 아이의 무의식 속에 다 깔려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에게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그동안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그게 바로 아이를 향한 나의 자존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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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엄마가 잘난 체를 한다거나 반대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엄마가 기가 죽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 같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게 문제이다. 능력 있는 부모 밑에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능력이 없는 부모 밑에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은 엄마 입장에서 자식을 떠나 자신에게 당당한 그런 엄마가 정말 매력적이다.”